[광화문]서른살 헌법의 푸념 "작년엔 뭐했슈?"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7.02.15 04:30

내 소개를 할게. 내 생일은 1987년 10월29일, 올해로 서른 살이지. 형제들은 다 돌림자로 ‘법’을 써. 나는 제일 맏형으로 이름이 ‘헌법’이야. 교과서에서 배웠겠지만 ‘최고 기본법’이자 ‘성문법’이고 ‘경성헌법’이지. 경성은 말 그대로 고치기 어렵다는 의미야. 원래 내가 처음 만들어진 때는 1948년 7월 17일인데 그 동안 9번 고쳤어. 마지막으로 손 댄 게 30년 전이야. 내 별칭은 ‘6공 헌법’ ‘87년 헌법’이지.

사실 내가 좀 오래 되긴 했어.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지. 나도 이해해. 현실과 안 맞으면 고쳐야지. 시대 변화를 반영해야 하구. 애매한 것도 많아. 그래도 솔직히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할 때면 속상하긴 해. 내가 만악의 근원이고 나만 고치면 만사가 형통할 것처럼 비판할 때는 더 그래.

내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원흉인 것처럼 비난하는데 정말 그럴까. 내가 태어난 배경부터 따져 봐. 군부독재를 마무리하면서 만들어진 게 나야. 직선제, 단임제 등 대통령 임기와 선출 방식만 규정한 게 아니야. 순서를 보면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정리한 뒤 ‘국회’를 배치했어. 정부(대통령, 행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등 보다 앞에 뒀지. 권력 분립도 신경 썼어. 유신 군부 독재에 당할 만큼 당한 선수들이 만든 것이니 견제에 힘을 더 실은 것은 당연한 결과지.

국회가 갖는 견제 기능만 읊어볼게. △탄핵소추권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건의권 △국무총리 임명동의권 △계엄해제 요구권 △일반사면 동의권 △국무총리‧국무위원 국회 출석‧답변 요구 및 질문권 △국정조사권 △조약 체결‧비준 동의권 △선전포고‧국군 해외 파견 등 동의권 △예산안 심의‧확정권 등이야. 반대로 행정부(대통령)가 갖는 견제권한은 △법률안 제출권 △대통령 거부권 △명령 제정권 △예산안 편성‧제출권 △정당 해산 제소권 △임시국회 소집 요구권 등이지.

역대 대통령의 끝이 좋지 못했다는 것을 모두 알아. 하지만 그게 운영의 문제인지, 대통령 개인기에 의존한 때문인지, 나(헌법) 때문인지 솔직히 모르겠어. 무엇을 더 추가하면 제왕적 대통령을 막을 수 있을까. 권력 구조만 바꾸면 새 시대가 열릴까.

옷이 안 맞아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 알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권한 분산’ ‘권력 분점’ 이런 게 아니야. 난 ‘권한과 책임의 일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권한 분산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믿음이 잘 안 가. 진정성이 있다면 ‘책임’을 나눠지겠다고 해야 해. 그런 뒤 권한 분산을 말해야 해.

비슷한 말 같지만 큰 차이가 있어. 권한만 나눠 챙기고 책임을 안지면 또다른 ‘제왕적 운영’이 되는 거야. 어떻게 권한을 나눌지 보다 책임을 얼마큼 나눠질 것인지 얘기하다보면 더 신중해질 거야. ‘몇 개월 만에 끝낼 수 있다’ ‘대선 전에 끝내자’ 등의 말도 쉽게 던질 수 없지. 국민의 열망을 담아 만들어진 나도 30년전 넉 달 걸렸어. 차제에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수정해나가는 것도 방법이야. 예측 가능하게 말이지.

아참 개헌이 시급하다고, 대선 전에 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만 할게. 충청도에 이런 얘기가 있어. 충청도 사람이 여유있게 운전하고 있었어. 뒤따르던 차는 마음이 급했지만 1차선이어서 추월할 수 없었지. 경적을 울리기도 했지만 앞차는 속도를 내지 않았어. 뒤차가 계속 경적을 울리자 앞차 운전사가 차를 세운 뒤 문을 열고 내려 뒤차로 다가왔지. 그리곤 한마디 했어.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 나를 고치는 게 그렇게 급했으면 작년, 재작년엔 뭐했냐고.
박재범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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