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5·9 대선'이 아닌 '5·10 취임'을 준비하자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7.04.28 04:28
D-11. 열흘하고 하루 더 남았다. 5월 9일까지다. 막바지 젖 먹던 힘까지 짜낸다. 선거전에 나선 이들은 안다. 절박한 쪽이 이긴다는 것을. 승리는 간절한 쪽으로 미소 짓는다는 것을. 그래서 더 치열하게 붙는다. ‘내일’은 없다는 식이다. ‘전쟁’에 나선 이들에게 ‘관용’은 사치다. 찰나의 방심은 패배를 부른다. 결승전을 마친 선수가 힘이 남아 있다면 최선을 다한 게 아니다.

승리했다면 ‘여유’로 포장되지만 패한다면 ‘교만’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한다. 서 있을 기력조차 없을 만큼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선거의 간판인 후보는 더 그렇다. 대선 후보는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 가기 싫은 곳도 가야 한다. 비를 맞으면서도 거리를 누빈다. TV토론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몇 번이건 들어야 한다.

대선 후보의 ‘모드’다. 조기 대선이라지만 후보들은 알게 모르게 6개월 이상 뛰었다. 제법 지칠 만도 하다. 후보건, 캠프건, 정당이건 속으론 되뇌인다. “5월 9일 선거만 끝나면…”.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한명에겐 자유가, 휴식이 허락되지 않는다. 바로 승자다. 선거에 온 힘을 쏟아부은 그는 5월10일부터 5년을 달려야 한다.

‘대선 후보’ 모드에서 ‘대통령’ 모드로 곧바로 전환해야 한다. 이 ‘전환’은 역사상 누구도 해 보지 못한 시도다. 그래서 아무도 모른다.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 ‘대선 후보’는 사실 행복하다. 가는 곳 마다 환호다. 잠을 못 자도 피곤하지 않다. 곳곳에서 들리는 환호에 오히려 엔돌핀이 솟는다.

조직된 캠프는 일사분란하다. 수행팀, 비서실, 대변인, 메시지 담당, 정책단위, 조직단위, 외부자문단…. 필요할 때 전화하면 항시 대기중이다. 회의도 소집하면 곧바로 열린다. 하지만 5월10일의 ‘대통령’은 다르다. 옆에 아무도 없다. 당선 직후 임명할 비서실장 정도가 그와 대화할 수 있을 뿐이다. 캠프 관계자를 활용하면 자칫 논란이 될 수 있다. 캠프와 측근은 5월10일 이후 비선일 뿐이다.

예측 가능한 그림을 그려보자. 차기 대통령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축하 전화를 건다. 외교적 행위는 사전 조율과 의전에 따른다. 그렇다면 누가 백악관과 연락할까. 외교부엔 누가 어떻게 지시할까.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 내용은 어느 정도 수위에서 할까. 이런 ‘정무적’이고 ‘외교적’이면서 ‘전략적’인 판단은 어떤 단위에서 할까. 불과 열흘 뒤 닥칠 하나의 사례인데 막막하다. 총리 지명, 내각 임명도 마찬가지다. 누가 검증할까. 검증 주체는 또 누가 어떻게 검증할까. 상상이라고 치부하지 말자. 불과 열흘 뒤 우리가 맞이할 현실이다.

이 뿐 아니다. 대통령은 TV토론 때 얼굴을 붉혔던 이들과 곧 만나야 한다. 과거엔 60일 남짓의 시간이 존재했다. 피로를 털고 쌓인 감정을 치유할 수 현실적 시간이었다. 모드 전환의 중간지인 ‘당선인’이란 자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60일 남짓의 시간도, 당선인이란 위치도 없다. 푸념해봤자 소용없다. 2017년 대한민국에 주어진 여건이다. 이 상황을 돌파해야 하는 게 19대 대통령이다.

남은 11일, 대선 D-11의 자세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취임 D-12의 모드가 돼야 한다. ‘대통령 후보’에서 ‘대통령’으로 스스로 변신하는 거다. 자세와 태도, 메시지의 변화를 확인시켜줘야 한다. 남은 열흘은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통합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 주체는 ‘대통령이 될 사람’이다.

물론 유력 대선후보는 조심스럽다. “마치 대통령 당선된 것처럼…” “벌써 집권한 것처럼…” 등의 말이 도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안다. 겸손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선거’에만 주력한 채 ‘포스트 대선’을 외면하는 게 맞는 걸까. 비판이 두려워 취임 이후 준비를 포기한다면 직무유기다. ‘대선 이후’를 준비하는 것은 샴페인을 먼저 터트리는 게 아니라 무거운 짐을 먼저 지는 거다. 안타깝지만 당선된 뒤 샴페인을 터뜨릴 시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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