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받들겠습니다!"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01.12 04:30

영화 ‘1987’은 우리 역사의 한 순간을 보여준다. 국민 대다수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장면을 스크린에서 마주했을 때 감정은 무너진다. 픽션의 공간에서 논픽션을 접할 때 무게감은 더하다. 눈물이 흐른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슬픈 역사는 기본이다. 마음 한 켠 빚 진 마음은 눈물로 드러난다. 1987년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죽음이, 당시 상황이 모두 슬펐다”고 했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공포도 눈물을 만든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은 그 공포를 안다. 머리보다 몸이 반응한다. ‘3D’ ‘4D’ 영화가 아닌데도 최루탄의 냄새, 백골단의 몸짓이 그대로 전해진다.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아버지 얼굴도 떠올랐다. “대학가서 데모하면 안 된다.” 우린 그렇게 공포 속에서 무력감을 함께 배웠다. 그 결과가 “그런다고 세상이 변해?”라는 대사다.

 

권력은 그렇게 순종을 요구했다. 우리는 따랐다. 1987 영화의 한 대사에 가슴이 턱 막혔다. “받들겠습니다”. 고문 경찰관은 윗선의 명령에 이렇게 답한다. 그리고 실행한다. 군사독재 시절 상명하복, 복명복창하는 수준을 넘는다. 명령을 수행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능동적 행위에 나선다. 죄책감은 사라진다. 그들은 ‘국가’의 명령이라고 믿고 ‘받든다’. 권력이 내민 가족 사진 앞에 한 순간의 ‘저항’은 곧 “받들겠습니다”를 답한다. 공포가 극대화된 지점이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삼는 게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다.

 

1987의 끝은 승리로 비쳐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받들겠습니다’는 지난 30년간 그대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권력의 사실상 통치술이었다. 1987년 대학생을 고문해 죽이고 축소 은폐하려 했던 국가는 불과 4년 뒤 유서 대필 조작을 해낸다.

1991년 5월 8일 서강대학교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분신하는 사건과 관련한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이다. ‘탁하고 쳤는데 억하고 죽었다’는 1987을 뛰어넘는 1991의 국가다.

 

징역 3년을 살고 나온 강기훈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게 2015년이다. 이 사건을 논의하고 조작한 사람이 어찌했는지 안 봐도 뻔하다. 1987의 ‘받들겠습니다’는 1991로, 그 이후로 이어졌다. 정권은 그렇게 국가를 사유화했다.

 

최근 쏟아지는 뉴스를 접하다 보면 우리가 21세기를 살았는지 의문이 든다. UAE 의혹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김태영은 UAE와 군사협약 체결 사실을 인정했다. 군사 협정을 체결하는 데 비밀리에 했다. 복잡한 것 같지만 한마디로 헌법 60조 위반 가능성이 높다. 김태영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회 비준을 놓고 많이 고민했다. 실제 문제가 일어나면 국회 비준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강변했다. 권력에게 헌법, 법률, 국회 등은 보이지 않는다.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절차보다 ‘받들겠습니다’가 익숙하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령 행적을 보면 기가 찬다. 박근혜는 당연히 요구했고 국정원장은 조용히 상납했다. 조용히 준 이유를 묻자 국정원장 이병기는 “문제될 것으로 봤다”고 했다. 그래도 줬다는 거다. 국정원장, 문고리 3인방은 그저 ‘받들겠습니다’로 무장했을 뿐이다.

 

촛불 이후 ‘받들겠습니다’는 사라졌을까. ‘법치’는 법으로 통치하는 게 아니라 권력이 법에 따라 통치행위를 하라는 것이다. 1987과 촛불의 교훈은 하나다. 받들어야 하는 것은 국가 권력이 아닌 헌법, 국민이라는 것. 국민을 받들면 ‘그런다고 세상이 변해?’라는 냉소는 자연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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