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同意)를 되새기다..여성의 NO는 NO!

[the300][이주의법안]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 대표발의 '동의없는 간음 처벌법'

조현욱 보좌관(금태섭 의원실), 정리=우경희 기자 l 2018.04.06 04:14



1979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여성 인권에 대한 권리장전이자 국제여성헌법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는 1984년에 가입했고 현재 189개국이 당사국이다. 

유엔 여성차별위위원회(CEDAW)는 올초 한국 정부의 협약이행사항을 점검하고 ‘젠더에 기반을 둔 여성 폭력’ 분야에서 7가지 권고를 했다. 형법상 강간을 폭행, 협박이 있는 경우로만 한정하지 말고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중점에 두도록 시정하고 특히 부부 강간을 범죄화해 처벌하도록 권고했다.

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허위 고소 등 형사절차 남용 방지 및 피해자의 성적 배경이 사법절차의 증거로 사용되지 않도록 할 것을 최종견해로 내놨다.
 
현행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를 처벌한다. 하지만 실제 강간죄 처벌을 하려면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강간죄 재판은 폭행, 협박의 내용과 정도 뿐 아니라 경위, 피고인과 피고인의 관계, 사건 당시의 정황까지 판단한다.

강간 전 만나게 된 상황,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반항했는지, 구조요청이나 탈출시도를 했는지를 고려한다. 강간 후 피해자의 고소여부, 가해자에 대한 태도, 신체상 상처 여부까지 밝혀야 한다. 피해자의 행동과 태도가 강간죄 입증에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강간죄 재판이 피해자를 ‘범죄의 원인제공자’로 보거나 ‘충분히 반항을 하지 않은 방조자’로 보는 ‘피해자 재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가 피고인과 늦은 밤까지 함께 있거나 함께 술을 마신 경우, 소리는 질렀지만 신체적인 저항을 하지 않은 경우, 거부했지만 탈출이나 구조를 요청하지 않은 경우, 피해자가 강간 후 만난 경찰관에게 바로 신고하지 않은 경우 등 모두 강간죄가 인정되지 않았다.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동의 없는 간음 처벌법’이다. 현행 강간죄나 강제추행죄는 모두 폭행이나 협박이라는 엄격한 요건에 해당돼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적극적인 저항이 없더라도 상대방의 합의 또는 동의가 없으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들자는 것이다.

여성의 ‘No’는 ‘No’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천 의원의 주장이다. 

◇이 법은 반드시 필요한가? = 강간죄는 인간의 성적 자유, 즉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거부할 권리일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성생활을 결정할 권리다. 이는 헌법상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에 뿌리를 둔다.

반면 강간은 성과 폭력이 결합돼 나오는 범죄인 만큼 법 판단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폭력이나 협박을 요건에서 제외하면 강간죄가 지나지게 확대되고 무고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비동의’. ‘진지한 거부 의사표시’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도 반대 논거다. 

◇이 법은 타당한가?= 천 의원의 법안은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 백혜련 의원이 이전에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보다 강력하다.

강간죄의 구성요건에서 폭행과 협박을 삭제하고 ‘상대방의 명백한 동의가 없는 경우’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간음한 경우 강간죄로 처벌한다. 천 의원의 법안은 엄밀한 의미에서 ‘비동의(非同意) 강간죄’ 와 차이가 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도 강간죄 개정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이 법은 실행 가능한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나 조국 민정수석은 폭행·협박의 정도를 낮춰 강간죄 적용을 보다 확대하자는 입장이다. 강간죄 처벌은 ‘피해자의 진지한 거부 의사와 가해자의 협의의 폭행·협박’(박상기), ‘합리적 또는 진지한 저항을 곤란하게 하는 폭행·협박’(조국)이면 충분하다는 견해다.

피해자의 동의에 의한 관계였는지를 중심으로 강간죄 성립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여성가족부의 입장과 큰 차이가 있다. 19대 국회의 경우 ‘항거를 곤란할 정도의 폭행·협박’ 수준으로 강간죄를 확대하려는 노력도 무위에 그쳤다. 

형법상 강간죄는 ‘생명과 신체에 관한 죄’가 아니라 ‘자유에 관한 죄’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동안 강간죄의 1차 기준은 가해자의 폭행·협박 행위였고 성적 자기결정권은 부차적이었다. 동의여부로 강간죄를 확대하면 남녀사이의 소위 밀당(밀고 당기기)까지 강간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경고도 스스럼없이 나오는 현실이다. 

처음 보는 여성의 ‘No’는 ‘No’지만 가까운 관계의 여성이 말하는 ‘No’는 ‘Yes’일 수도 ‘No’일 수도 있다는 그릇된 생각, 그리고 여성은 ‘No’를 분명히 확인받을 수 있으려면 극렬히 저항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생각. 우리 아들 딸에게 그대로 물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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