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달콤한 유혹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8.06.26 04:30
“솔직히 무섭다. 그리고 두렵다.” 

6·13 지방선거 성적표를 받아든 여권의 속내다. ‘압승’인데 편치 않다. 책임감이나 부담감 정도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정도의 두려움”이다. 

여권 인사들의 얼굴도 마냥 밝지 않다. “두렵다”는 말을 몇 번씩 되풀이한다. 겸양이 아닌 게 느껴진다. 진짜 무서운 거다. 1년 전과 사뭇 다른 기류다. 촛불 정국과 대선을 거치면서 민주당과 문재인 캠프가 두려움을 말하긴 했다. 하지만 약간의 초조함과 염려를 과하게 표현한 정도였다. 

‘적폐 청산 vs 통합’의 대립이 존재하는 듯 했지만 실제론 청산 노선이 압도적이었다. 속도 조절, 방향 재설정 등 내부적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캠프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통합을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여론조사 등을 해보면 적폐 청산이 80~90%다. 압도적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다.” 

기조는 그렇게 유지됐다. 적폐청산이 국정과제 1호가 된 것은 당연했다. ‘연정’은 없었다. ‘민주당 정부’를 전면에 내세웠다. 정책은 청와대가 주도했다. 1년 뒤 성적표는 최상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70%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여당 지지율은 역대 최고치다. 외교안보적 성과는 상당하다. 열매 수확도 진행형이다. 걱정을 키울 정책이 적잖았지만 운 좋게 넘겼다. 

게다가 선거도 이겼다. 정치권에선 선거가 전부다. 지면 온갖 책임이, 이기면 모든 찬사가 쏟아진다. ‘예견된’ 패배를 당한 제1야당이 좌초 위기에 직면한 것만 봐도 확인된다. 반대 지점에서 여권은 공포를 느낀다. 압승과 참패를 보는 인식 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기조, 전략의 변화 여부다. 

표면적으로 보면 분명 현 기조의 승리다. 야권을 심판했고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줬다. ‘발목 잡기’는 또한번 심판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논리도 뒤따른다. ‘중앙권력 교체(2017년)→지방권력 교체(2018년)→의회 권력 교체(2020년)’의 일정표까지 나온다. 장밋빛 환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그림이다.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단체장, 광역·기초 의원까지 싹쓸이한 상황을 감안하면 ‘당연한’ 미래다. 달콤하다. 

공포는 여기서 생긴다. 한 초선의원은 “너무 달콤하기에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과 여당의 높은 지지율, 압승을 토대로 밀어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난 1년 성공했기에 그대로 가고 싶다. 유혹은 이렇게 다가온다. 달콤함을 혼자 맛보라는 유혹의 손짓이다. 

현 여권은 경험이 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뒤 ‘4대 개혁입법’에 신나게 나섰다가 참사를 겪었다. ‘달콤한 유혹’이 빚은 결과였다. 

물론 지방선거 승리로 여소야대의 국회 구도가 바뀐 것은 아니다. 여당 의석은 130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눈높이는 2주전에 비할 바 아니다. 야당의 ‘딴지 걸기’ 못지않게 여당의 독주도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압승한 여당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해법은 확장이다. 정책 연대는 기본이다. ‘당정청’이 모여 최저임금·근로시간 단축·자영업자 등 대책을 내놓는다 해도 협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한발 더 나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때 함께 했던 현 야권 인사를 내각에 발탁할 수 있다. 

‘연정’까지 아니더라도 ‘개혁 연대’는 가능하지 않을까. 여권이 확장을 택하는 순간 자유한국당은 구석으로 더 내몰린다. 그렇게 여권의 영역은 넓어진다. 손을 잡고 달콤함을 공유하면 유혹에서 벗어난다. 대선, 지방선거를 이긴 여권이 ‘달콤한 유혹’마저 이겨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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