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문재인 프로세스2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8.10.01 04:00
“미국과 북한 양쪽으로 대표하는 ‘수석 협상가(chief negotiator)’역할을 해 달라.” 9월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요청이다. 대북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전해주는 전화 통화에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 ‘메신저’역할이 기본이다. 

시점도 절묘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연기되는 등 북미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때다. 북미간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답답해진 두 사람이 모두 문 대통령을 찾은 셈이다. 다툰 아이들을 향해‘사이좋게 지내자’라고 악수를 시켰는데 엄마 등 뒤에서 또 티격태격하다 다시 엄마를 외치는 그림이랄까. 

그만큼 각자가 믿는다는 방증이다. 책임은 커졌는데 결과는 성공적이다. 단순 ‘중재자’‘메신저’역할은 성에 안 찬다. ‘북미 양쪽의 수석 협상가’역할을 부여받은 문 대통령은 차원이 다른 행보를 취한다. 평양·뉴욕을 오가는 열흘의 일정은 색다르다. 치밀하고 철저하고 계획적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 중재는 이미 했던, 익숙한 역할이다. 4·27 판문점 회담을 성사시키고 6·12 북미정상회담까지 만들어낸 게 ‘문재인 프로세스’의 1차 성과물이다. ‘문재인 프로세스’는 한미동맹을 최우선에 둔다.그 전제 하에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기, 상상력이 더해진다. 과하지 않게 트럼프와 김정은을 앞세워 역사적 장면을 만들었다. 

이번엔 정상간 1차원적 만남을 넘어 중층적 접근을 취했다. 진화된 ‘문재인 프로세스’다. 이제 익숙해진, 일상이 된 ‘남북정상 만남’에서 한발 더 나가 북한 주민을 직접 만났다. 평양 5·1 경기장에서 15만명을 향해 연설하고 함께 호흡했다. 문 대통령의 자세와 태도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십개의 합의와 선언을 뛰어넘는 종합 메시지다.

뉴욕 행보 역시 문재인 프로세스 2단계를 보여준다. 한미정상회담은 기본 메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을 절대 믿지 않는 이들을 직접 만났다. 

미국외교협회(CFR)·코리아소사이어티(KS)·아시아소사이어티(AS)가 문 대통령의 강연을 요청한 모양새였다. 문 대통령을 회의적으로 봤던 이들은 협상가의 목소리를 듣고자 불렀다. 폭스 TV와 인터뷰는 ‘묘수’다. 미국민, 특히 보수 진영을 향한 수석 협상가의 보고였다. 

평양에서 돌아온 뒤 서울에서 대국민을 보고를 한 것과 겹쳐진다. 서울 동대문 DDP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서 “(트럼프 대통령 등에게) 전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띄우며 미국민에게 ‘진단과 처방’을 함께 전했다. ‘수석 협상가’지위에 걸맞게 ‘중재’에 머물지 않고 ‘주도’의 역할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제시 잭슨 목사와 만남도 숨은 열쇠다. 잭슨 목사는 민주당의 어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싫어 대북 관련 강경론을 펴는 민주당을 향해 진심을 담은 몸짓을 취했다.

문재인 프로세스는 이렇게 진화한다. 무기는 그의 경험이다. 참모들은 참여정부 트라우마가 아니라 레슨(학습 효과)이라고 말한다. 

문 대통령도 대선 전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이렇게 답했다. “경험보다 앞서는 지혜는 없다. 남북 대화에 적극적이어야 대화하고 주도할 때 정보 양이 많아지고 정보 가치도 올라간다.”경험과 정보, 태도와 상상력이 모여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 시작은 공포를 없애는 것이고 최종 목표는 평화다. 

어찌보면 북한 리스크, 북핵 공포를 외면했을 뿐 아니라 트럼프 공포의 존재조차 몰랐던 우리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이 쓴 책 ‘공포: 백악관 안의 트럼프’를 보면 한국이 트럼프의 타깃이 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처지다. ‘수석 협상가’ 지위는 기막힌 반전이다. 

평화는커녕 전쟁과 공포를 두려워했던 한반도가 변화의 중심에 섰다. 70년 분단의 과정, 대한민국은 전쟁과 가난을 딛고 산업화를 이뤘다. 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해냈다. 산업화, 민주화를 이은 다음은 평화다. 그 과정은 ‘문재인 프로세스’의 진화다.
박재범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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