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판문점선언 비준 동의 놓고 여야 맞붙은 법제처 국감(종합)

[the300]법제처장 "충분히 재정에 부담…비준동의 사항"…법제처 약한 권한 지적도

백지수 기자, 안채원 인턴기자 l 2018.10.15 21:46
김외숙 법제처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제처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법제처가 현재까지 제출된 판문점 선언 비용 추계가 "국민 재정에 부담된다고 판단했다"며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15일 재확인했다. 비준 동의 여부와 관계 없이 재정을 이용한 남북 경협 사업 예산을 편성·집행할 때 국회의 별도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확인했다. 여야는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를 위해 현재 제출된 비용 추계서가 완벽한지 여부를 놓고 맞불 질의를 이어갔다.

김외숙 법제처장은 이날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제처 국정감사에서 남북 경협 사업 예산 집행에 대해 "판문점 선언은 비용 추계가 됐고 그것만으로도 국민에게 중대하다고 판단했다"며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가 있더라도 국회에서 예산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서 (향후 남북 경협 예산 집행에) 국회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에 남북 합의 이행에 필요한 내년도 예산 추계만 제시된 가운데 추후 더 많은 예산 집행이 필요하다는 우려에 대해 매해 예산 집행에 대한 국회 동의가 별도로 필요하다고 반박한 것이다.

이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판문점선언에 대해 비준 동의를 추진하기에는 비용추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정갑윤 의원은 "4712억원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103조원 플러스 알파가 소요된다는 내용을 받았다"며 "제대로 된 비용 추계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광덕 의원은 "구체적인 정부 재정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국민이 부담할 재정 규모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이에 "비준 동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중대한 재정 부담이 있을 때'만이라고 하고 있다"며 "비용추계서를 사업 기간 전체에 소요되는 비용을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협에 관한 비용 중 내년 예산에 대해 "세금으로 들어가는 4700억원 정도도 많은 금액이라고 판단했다"며 "제출된 2019년도 소요분만으로도 중대한 비용이 된다고 판단해서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국당 측의 이같은 지적에 여당 의원들이 맞불 질의를 이어갔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얼마 이상이라는 것이 있느냐"고 김 처장에게 물었다. 김 처장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박 의원은 다시 "아주 정확한 추계가 나오고 금액이 일정 이상이어야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확인을 요구했다. 김 처장은 이에 대해서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김 처장은 박 의원의 "조약에 대해 비준 동의를 했다고 해서 이후 예산이 자동적으로 편성되고 집행되느냐"는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 매번 국회 심의 의결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비해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는 법제처 판단이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과 후속 총리합의 내용에 근거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야당 의원들의 의문이 이어졌다. 한국당 의원들은 10·4 선언에는 법제처가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고 한 만큼 이를 계승한 판문점선언 역시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완영 한국당 의원은 "10·4 선언 때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고 할 때 재정 부담 여부와 규모, 추계 방법 확정이 불가하다고 했다"며 "2019년 남북경협예산이 4700억원이라는 것이 인정되면 향후 계속 사업으로 40조원 이상이 들 것이라는 것을 세상이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바른미래당에서도 반박했다. 채이배 의원은 법제처의 판단 근거인 10·4선언 후속 총리합의 내용에 더이상 추진되지 않는 남북 협력 사업이 많다고 지적하며 "흘러간 옛 노래를 담은 합의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을 놓고 비준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 의원은 "2007년 총리회담 합의서 내용이 △해주항 개발 △해주 경제특구 △해주 직항로 △베이징 올림픽 응원단 참여 △개성공단 건설 △개성-평양 고속도로·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 등"이라며 "베이징 올림픽 응원단 참여나 개성공단 건설 등은 다 지나간 일이거나 이제 추진이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김 처장은 이에 "지나간 것으로 보지 않았다"며 "판문점 선언 내용 중 '10·4선언에서 나온 사업들을 적극 추진한다'고 나와 있다"고 반박했다.

이날 국감에선 법제처가 권한이 약해 정부에 따라 입맛에 이끌려 다닌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특히 한국당은 '코드 인사' 문제를 제기하며 김 처장에게 호통쳤다.

장제원 의원은 김 처장을 향해 "평생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한 문하생"이라며 "모든 법안이 충돌될 때 판단하는 처장으로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법령해석을 해도 편향성 논란에 빠진다"고 주장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도 "비준 동의를 하지 않으면 반평화세력으로 몰아넣는 법제처 태도가 오히려 '남남(南南) 갈등을 초래한다"며 정권 편향성을 지적했다. 오 의원은 "지난 정부 때 사드 배치 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고 했는데 이번 정부 들어서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다"며 "법령을 정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법제처의 법률해석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들여다 보겠다며 자료 제출 요구를 하는 의원들과 법제처 간 실랑이도 벌어졌다. 장 의원과 한국당 간사 김도읍 의원 등이 위원회 명단을 요구했지만 김 처장은 "특정 회의에 참석한 사람을 특정하고 발언 공개하면 안 된다는 것이 판례이고 헌법재판소 결정 예도 있다"며 반대했다.

이에 여상규 법제사법위원장은 판례를 확인한 후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었다"며 법제처의 관련 자료 제출을 지시했다.

법제처의 법률해석심의위가 정권에 따라 흔들린다는 지적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도 나왔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야당 시절에도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일에 대해 법제처가 전문가 14명의 의견을 받은 일이 있다"며 "이에 대해 전문가 명단을 달라 했는데 법제처에서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춘석 의원도 "명단 공개 논란이 해마다 나온다"며 "법제처가 차관급이라 힘 없어서 막 요구하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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