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소정이]"나이 한살씩 빼드립니다" 정치권이 나선 이유

[the300][소소한 정치 이야기]'전세계 유일' 한국식 나이 개정 나서

김평화 기자 l 2019.01.05 07:30
 

2018년 12월31일 오후 11시59분59초. 그리고 1초 후, 대한민국 전국민의 프로필이 동시에 업데이트됐다. 일제히 한 살을 더 먹었다.

한국에선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된다. 2018년 12월31일 오후 11시59분에 태어난 아이는 1분만에 두 살이 됐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식의 나이 계산법을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하며 나이를 밝힐 때는 '한국식 나이(Korean age)'라는 주석을 붙여야 했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엔 책임이 담겨 있다. 스무살엔 독립을, 서른살엔 결혼을, 마흔살엔 자수성가를 기대하는 식이다. 때문에 나이먹음을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살이라도 적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다.

요즘같은 연초, 하릴없이 한 살을 '강제로' 먹은 국민들은 한국식 나이에 불만을 터뜨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한국식 나이를 없애고 만 나이로 바꿔달라는 청원글이 눈에 띈다. 한 청원글 참여인원은 3000명을 넘겼다.

해가 바뀐지 사흘 째 되는 날. '기가 막힌' 타이밍에 새 법안이 나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인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은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공문서에 만 나이 기재를 의무화하고, 일상생활에서도 만 나이로 연령을 계산·표시하도록 권장하는 내용이다.

출생일부터 연령을 계산하는 '만 나이',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연 나이'가 한국식 나이와 혼용되고 있다. 여기에 1~2월 출생자들이 전년도 출생자들과 함께 입학하며 생긴 '사회적 나이'까지 더해진다.

황 의원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낭비와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가 일으키는 갈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령 관련 정보 전달의 혼선, 특정 월 출산기피 현상 등 부작용도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설명이다.

제정안은 연령을 표시할 때 출생한 날부터 계산한 연수(年數)로 연령을 표시토록 했다. 1년을 채우지 못한 잔여일이 있으면 개월 수를 함께 표시한다.

황 의원은 "전통적으로 세는 나이를 사용해온 한국, 중국, 일본, 북한 등 아시아권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아직까지 세는 나이를 사용하고 있으며 상이한 4가지의 연령 계산 방식이 혼용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로 인한 각종 불편과 혼선을 방지하고,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일원화된 방식으로 연령을 계산하고 표시하는 방안에 대해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말 그대로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곧바로 긁어준 법안이다. 국회가 연령 계산을 바꾸자는 법안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철저한 사전조사끝에 '시의성'을 살려 법안을 냈다는 설명이다. 황 의원실 관계자는 "청와대 청원을 보고 발의한 법안은 아니"라며 "매년 초마다 같은 논란이 있어 의원실에서 국내외로 조사를 실시했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식 나이는 법률상 문제라기보단 관습과 문화적 측면이 크다"며 "법률로 문화를 바꿀 수는 없지만 차근차근 바꿔나가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년에 비해 만 나이를 쓰자는 여론이 커진 게 사실"이라며 "탄력을 받는다면 법안 심사도 의외로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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