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대변인' 국회에 '공정함'은 어디로

[the300][4·15 21대 총선 D-1년]<2회>"채용비리가 일상이 된 정치권"…돌아선 민심, '공정함'으로 돌려라

이재원 기자, 한지연 기자 l 2019.04.15 18:32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을 메웠던 촛불은 '불공정'에 대한 분노였다. 비선실세 최순실과 문고리 권력을 휘두른 이들에 대한 분노. 대학 입시부터 국정운영, 군생활 특혜, 각종 사업 특혜 등 공정해야 했고, 공정하다고 믿었던 모든 절차와 상식들이 무너졌다. 시민들은 공정에 대한 배신감에 광장으로 뛰어나왔다. 

분노는 탄핵으로, 조기대선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공정한 사회를 기대했다. 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며 공정 사회를 약속했다. 그만큼 공정은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 다음 총선에서도 이 시대정신은 유효하다.

20대 청년들이 정치에 기대하는 키워드 중 하나도 '공정'이다. 혁신도, 성장도 좋지만 그 시작은 공정이어야 한다. 세상은 "어차피 해도 안 되니 대충 살자"며 좌절하는 20대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정치권 만큼은 누구보다도 더 공정해야 한다는 주문을 넣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는 20대 국회는 얼마나 공정했을까. 정치권은 여전히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크고 작은 채용비리부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재산증식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국회의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권성동·염동렬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연루된 강원랜드 채용비리다. 최흥집 2012년 당시 강원랜드 사장은 재판 과정에서 두 의원으로부터 직접 대면 청탁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최 전 사장에 따르면 두 의원은 각각 10여명에서 수십명에 달하는 청탁 명단을 건넸다. 

김성태 한국당 전 원내대표의 딸 KT 취업 특혜 의혹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딸의 계약직 계약서를 회사 관계자에게 직접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카의 KT 계열사 취업 의혹 역시 해명해야 한다. 그의 '내로남불'에 청년들은 더 분노한다. 김 전 원내대표가 서울교통공사 등에 대한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요구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사돈을 보좌관으로 채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홍문표 한국당 의원 등 수많은 국회발 채용비리가 난무한다.

체감 청년 실업률이 20%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같은 소식은 청년 취준생(취업준비생)들에게 절망만 안긴다. 20대 취준생 김모씨는 "채용비리에 관한 문제가 기업 상식 시험이나 면접 주제로 나올 정도로 이제는 일상화 했다"며 "그 중심에 믿고 뽑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사실에 한숨만 난다"고 말했다.

부적절한 재산 증식도 정치권의 공정함에 흠집을 낸다. 최근 논란 끝에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투자다. 김 전 대변인은 지난해 7월 10억원이 넘는 돈을 대출받아 동작구 흑석동 재개발 구역의 건물을 25억7000만원에 매입해 논란이 됐다. 특히 건물을 구입한 시기가 정부와 청와대가 집값 상승 억제를 위해 강력한 대출 규제정책을 내놓기 직전이라 투기 의혹이 증폭됐다.

최근엔 장관 후보자들도 공정성 논란에 연이어 낙마했다. 최정호 국토부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와 편법 증여 의혹으로 자진 사퇴했고, 조동호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 '황제 유학'과 인턴 채용 특혜, 외유성 출장 의혹 등으로 청와대가 지명철회했다. 청문회를 통과한 후보들도 위장전입 등 의혹을 안고 갔다. 7대 인사기준을 마련하는 등 공정성을 앞세웠던 문 정부 입장에선 씁쓸한 대목이다. 




지역구에는 전세집조차 없으면서 강남 3구에 집을 보유한 일부 의원들도 눈총을 받는다. 강남에 집이 있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지역구의 민심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들이 지역구에 머물 곳 하나 없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하는 의문이다. 

지역구에 '전셋집' 하나 마련해놓고 강남에 집을 보유한 의원들도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강남에 집을 보유한 국회의원만 77명이다. 해당 지역 민심을 대변해야 하지만 자신의 재산이 몰려있는 강남 지역의 이익만 과도하게 대변하는 '강남 대변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남 여수시갑이 지역구인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재산변동 신고 내역에 따르면 이 의원은 11개의 원룸을 포함한 다세대주택 하나, 아파트 세 채, 연립 주택 두 채로 국회의원 다주택자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는 지역구엔 어느 주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신 강남 3구에만 원룸 11개의 다세대주택 하나, 아파트 두 채를 소유했다.

부산진구을의 이헌승 한국당 의원은 부산엔 집이 없지만 서울 서초구에만 아파트를 두 채 갖고 있다. 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을 지역구로 둔 같은 당 여상규 의원 역시 지역구가 아닌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에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각각 한 채씩 소유했다.

광주 동구남구을을 지역구로 가진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은 광주엔 거처할 곳이 없다. 대신 박 의원은 강남구 일원동에 아파트 한 채를, 경기 분당구 정자동에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있다. 윤영일 평화당 의원은 지역구인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엔 집이나 사무실이 없었지만,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아파트 한 채를, 동작구 본동에 전세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도 강석진·윤상직 한국당 의원, 손금주 무소속 의원이 강남 3구엔 집이 있었지만 지역구엔 집이 없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 전병헌 전 민주당 의원, 이군현·노철래 전 한국당 등 전현직 국회의원 4명이 사법농단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실망감을 안긴다. 당사자들은 청탁이 아닌 설명 수준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유권자들은 "죄의 경중을 떠나 일반인들은 시도조차 못해볼 일 아니냐"고 분노했다.

민주당은 이같은 분위기에 맞춰 이번 총선에서는 어느때 보다 더 '공정한 공천'을 약속했다. 이를 통해 참신하고 경쟁력 있는 인물들을 발굴한다는 전략이다. 후보자 심사 과정에서 음주운전과 성범죄에 관해선 무관용 원칙을 강조했다. 여기에 전략공천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졌던 일방적인 '톱-다운'식 공천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번 총선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한국당도 객관적인 공천룰 마련을 계획중이다. 더이상 '줄서기' 식 공천으로는 젊은 보수층에 어필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그간 있었던 공천 파동의 핵심은 줄서기"라며 "이런 방식으로는 점점 얕아지는 보수의 인력풀이 말라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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