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10주기]공수처·부동산… 盧의 정책, 그가 남긴 흔적

[the300]'실패'로 여겨졌던 정책, 10여년 뒤 재평가

김평화 기자 l 2019.05.22 05:23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 지 10년. 그의 잔상은 곳곳에 남아있다. 그 당시, 관철되지 않았기에 '실패'로 치부됐던 일부 정책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숨을 얻고 있다.

◇2004년 발의된 공수처법, 15년後=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검찰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그 방안으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을 적극 추진했다. 공수처는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과 청와대 고위직, 국회의원, 장·차관,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 권력형 비리를 감시하는 별도 수사기관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등으로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04년 11월 정부안으로 '공직 부패 수사처' 설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당시 국회는 이 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1월27일 삼성비자금 의혹 특검법안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를 지적했다. 그는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기 어려운 사건도 있을 수 있으므로 공수처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대선 때 각 당이 모두 공약했다"며 "법무부와 검찰의 이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을 거쳐서 정식으로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검이 국회가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끄집어내서 쓸 수 있는, 정치적 남용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며 "공수처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국회가 진정으로 투명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면, 그리고 공정한 수사를 바란다면 공수처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이 최대의석을 확보, 여소야대 국면이던 국회는 끝내 공수처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정권이 교체된 후 공수처 도입 논의는 한동안 잠잠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 정부는 같은해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공수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법무부는 10월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전담할 독립기구인 공수처 설치를 위한 자체 방안을 발표했다.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은 이번에도 공수처법 통과를 반대했다. 육탄전을 벌이며 저항했지만 결국 공수처 설치법안은 선거제 개혁과 함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난달 지정됐다.

◇"서민생활의 가장 큰 적, 부동산 가격 폭등"=노 전 대통령 집권 전후로 국내 부동산 시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노 전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서민생활의 가장 큰 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만큼 부동산 정책을 만드는 데 많은 공을 드렸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은 쉽게 잡히진 않았다. 당시 정책이 '실패'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다. 임기를 절반쯤 보낸 2005년 8월25일 노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 나섰다. 이날 그가 받은 첫 질문도 부동산 정책에 관련된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가장 근본적인 것은 내성"이라며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내성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부동산 정책이 어렵다며 "역대 정부가 계속해서 실패했다는데, (국민들의) 저항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시장에서 실패한 것은 국가가 정책으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해 줘야 한다"며 "부동산이야말로 시장이 완전히 실패한 영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양극화나 빈부격차 완화를 위한 가장 첫 번째 정책이 부동산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처방전은 △시장투명화 △토지소유현황 공개 △부동산대출 관리 △개발이익환수 장치 도입 등이다.

신고가와 실거래가가 다른 '다운계약서'가 일반적이던 시기다. 노무현 정부는 실거래가 신고와 등기부 기재를 의무화했다. 부동산 과세 형평성을 위해서다. 2006년엔 토지소유 현황을 공개했다. 그 결과 상위 1%가 개인소유 토지 57%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LTV(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을 도입한 것도 노무현 정부 때다. 과도한 부채를 얻어 부동산 투기에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 직후부터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집권 2년 새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2억원 올라 8억원을 넘겼다.

사실상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는 서울 모든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묶었다. 국가정책으로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강도높은 조치들을 연달아 취했다. 노 전 대통령이 강조한 그대로다. 

2008년 4월 조정지역에서 양도소득세를 중과하기로 했다. LTV·DTI 비율도 낮춰 대출을 조였다. 지난해 10월24일엔 '가계부채종합대책'을 내놨다. 새로운 규제 지표들이 나왔다. 신(新)DTI와 DSR(총체적상환능력비율), RTI(임대업이자상환비율), LTI(소득대비대출비율) 등이다.

노무현 정부는 보유세 카드를 꺼내면서 역풍에 직면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세율 인상을 단행했다. 그 결과 부동산 광풍은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밖에도 참여정부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 진상규명법 제정, 언론관계법 개정, 사립학교법 개정을 4대 개혁입법 과제로 정하고 힘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다수 여당과 기득권의 저항으로 성과를 얻진 못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4대 개혁입법의 성과는 미미하다. 대부분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 과거사법 제개정 촉구 움직임만 감지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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