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 통화 유출' 일파만파…망연자실한 외교부

[the300] 의전 실수 논란 이어 '3급 기밀' 유출 초대형 악재...조세영 차관 "범법행위 엄중문책·재발방지"

오상헌 기자, 최태범 기자 l 2019.05.24 14:20

잇단 외교 의전·결례 논란으로 조직 혁신을 추진하던 외교부가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현직 고위 외교관의 한미 정상 통화 내용 유출이란 초대형 악재로 벼랑끝에 몰렸다. 외교부 내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망연자실해 하는 분위기다.

조세영 신임 외교부 1차관은 24일 취임식에서 "국가기밀을 다루는 고위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기강해이와 범법행위가 적발됐다"며 "국민 여러분들의 기대를 저버린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외교부는 지금 비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신속하고 엄중한 문책조치와 재발방지 노력을 통해 하루빨리 외교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차관 취임 일성을 국가 기밀 유출 사건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조직쇄신 약속으로 갈음한 셈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례 각료이사회에 참석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귀국 후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내에선 이번 사건이 가져 올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외교부는 고교 선배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3급 기밀'인 한미 정상의 통화 내용을 유출한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K씨에 대한 감찰 조사를 워싱턴에서 진행 중이다. 

K씨가 카카오톡과 보이스톡 등을 통해 강 의원에게 유출한 '3급 기밀'은 외교부가 조윤제 주미대사에게 보낸 문건에 담긴 내용이다. K씨 외에 주미 대사관 직원 여럿이 기밀 내용을 열람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외교부 감찰팀이 주미 대사관 업무 체계와 보안시스템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는 배경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전체 해외 공관과 본부로 보안시스템 감찰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우려하는 건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다. 강 의원은 K씨에게 기밀 정보를 입수한 후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 정상의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5월 하순 일본을 방문한 후 잠깐이라도 한국을 방문해 달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한 뒤 미국에 돌아가는 귀로에 잠깐 들르는 방식이면 충분할 것 같다. 주한미군 앞에서 만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답변했다"는 내용 등이다.

주미 대사관 고위 외교관이 주재국 정상인 트럼프 대통령의 세세한 발언을 여과없이 유출한 셈이어서 외교적 문제로 번질 소지가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해 한미가 굳건한 동맹과 공조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이 한미 신뢰 관계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물론 과거 보수 정권의 핵심 외교참모까지 나서 강 의원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런 염려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외교부 2차관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번 사건을 "강 의원의 한미 정상 통화 내용 공개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상종하지 말아야 할 국가로 만드는 행위로서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천 이사장은 특히 강 의원의 기밀 공개를 "국익을 해치는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자유한국당에 출당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앞서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의 최우선 가치는 국익"이라며 "당파적 이익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라고 강 의원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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