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안희정의 '선한 의지'와 '칼'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7.02.27 05:00


‘선한 의지’와 ‘분노’가 오갈 때다. 책상 위 놓여 있던 책을 집어 중간의 페이지를 펼쳤다. 인상 깊었던 내용이어서 접어둔 터였다. “모든 것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자. 그래야 사물이 더 잘 보인다. 그래야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안희정의 책 ‘함께, 혁명’의 한 부분이다. 잠언처럼 다가오는 느낌이 좋아 담아둔 문구인데 갑작스레 ‘선의 논란’이 불거지며 되새겨봤다.

 

원래 이 글은 2015년 3월 안희정이 쓴 ‘아침단상’이라는 짧은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안희정은 페이스북 등에 올렸던 짧은 글을 모아 ‘안희정의 길, 함께 걸어요’를 냈다. 스스로 ‘자성록(自省錄)’이라 명명하며 정치인의 성찰이라고 설명했다.

 

글을 보면 ‘선한 의지’ 관련 안희정의 의식 흐름이 이렇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미움과 분노의 감정에 머무르지 말자. 편견과 선입견이 여기서 나온다. 미움과 분노에서 출발한 비판, 지적, 훈계, 충고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원수를 갚기 위해 평생 절치부심한 사람은 그 원수를 죽음으로 복수해도 결국 그 원수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버림을 어찌할 것인가”. 이 고민은 다른 글에서도 묻어난다 . “자신의 원칙을, 자신의 온 삶을 온전히 바쳤다면,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면 한없이 용서하고 한없이 안아주고…”.

 

혁명을 꿈꿨고 개혁을 외쳤던 안희정의 과거와 빗대면 너무 둥글다. 예전엔 모난 돌이 정 맞았다면 두루뭉술한 것은 별로인 게 요사이 트렌드다. ‘사이다’ ‘팩트 폭력’이 환호을 받는 시대에 ‘용서’ ‘사랑’은 새롭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철학자’ ‘종교지도자’에 가깝다는 비판도 충분히 나올 법 하다. 오죽하면 호까지 붙여 ‘선의’ 안희정 선생이라는 비꼼까지 등장했을까.

 

‘선한 의지’는 그의 말대로 소신이다. 누구보다 미움과 분노가 가득했을 그가 자성, 자기와 싸움을 거쳐 얻은 결론일 거다. 그러고 보면 높은 곳에 있다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고통과 좌절을 겪은 뒤 마음 속에서 끌어내는 게 용서, 관용이란 단어다.

 

259일간의 구속기간을 포함, 4년4개월의 법정싸움 끝 무죄를 받은 변양호는 “(하나님의 주신 은혜로) 용서가 가능했다”고 했다. MB정부 황태자로 불리다 저축은행 사건으로 구속된 후 무죄로 누명을 벗은 정두언도 “경멸과 증오가 아니라 관용과 인내의 자세로 싸울 것”이라고 했다. 매일 밤 묻고 답하고 기도하며 느꼈을 그들의 고통, 그리고 얻어낸 깨달음은 존중받을 만 하다.

 

사람에 따라 발 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진단, 앞으로 갈 미래에 대한 방향을 보는 시선은 다르다. 누구는 ‘분노의 시대’를 외치고 다른 이는 ‘분노의 시대 이후’를 말한다. 분노를 거쳐야 분노 이후를 말할 수 있고 분노 이후를 알아야 분노를 지날 수 있다. 다를 뿐 그른 것은 아니다. 다른 것 중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안희정은 ‘정치인의 일’이라는 단원 마지막에 ‘선한 의지’를 썼는데 앞부분에 그는 묻는다. “좋은 정치인은 어떤 사람일까?” 그리곤 자답한다. “권력 앞에 용기있게 설 사람이 필요한 시대는 아니다. 민주공화국 시대, 대화를 잘 나누는 사람, 협의를 잘 이끌어 내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라고…”. 이게 안희정의 생각이다. 난 동의한다. ‘위대한’ 지도자를 꿈꾸기보다 협력하며 나라를 발전시키는 지도자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외침이 욕 먹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글에 못 미치는 그의 화법이다. 대화를 잘 나누는 사람을 좋은 정치인이라고 했는데 아직 안희정의 대화는 어렵다. ‘소통’의 기본이 말인데 ‘선한 의지’조차 전달하지 못하면서 ‘좋은 대화’ ‘협치’를 할 수 있을까.


안희정이 쓴 ‘칼’이라는 글을 그에게 되돌려준다. “모든 언어 사용은 감성의 칼을 휘두르는 일이다. 나뭇가지 하나도 베어 넘길 수 없는 칼이지만 그 칼은 사람을 절단 낸다. 하지만 그 칼은 채찍 같아서 종종 제 눈알 빼가기도 한다. 함부로 휘두르지 말라”. 적잖은 사람이 상처받았다는 것을 안희정도 안다. 힘든 선거 과정, ‘선한 의지’ 못지않게 ‘칼’도 가슴에 담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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