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고리1호기 멈춘 날, 38년근무 '고리맨'이 말했다

[the300]'산 증인' 원전본부장 "운영자는 알리고, 시민사회는 충고를"

우경희 기자 l 2017.06.19 16:37
【부산=뉴시스】전진환 기자 = 19일 오전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이 열린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제1발전소에서 노기경(왼쪽) 고리원자력본부장과 시민운동가 하선규씨가 소회 발표를 하고 있다. 2017.06.19. amin2@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회사생활을 고리에서 시작해 올해로 38년입니다."

노기경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장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19일 열린 고리1호기 가동중단 기념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와서도, 산업부 장관과 한수원 사장이 와있어서도 아니었다. 회사생활 38년. 청춘을 다 바친 고리원전이 이날 새벽 0시를 기해 영구 가동 중단됐다. 고리1호기는 지난 40년간 가동됐다. 노 본부장의 청춘이 온전히 한국의 원전사(史)가 되는 순간이었다.

단상에 오른 노 본부장은 "처음엔 원자력이 실제 어떻게 가동되는지도 잘 몰랐고, 몰라서 외국인에게 물어보기도 했다"며 "2차 오일쇼크 기간 동안 양질의 값싼 전기를 풍부하게 공급하는데 자부심을 느꼈고, 정전 사건으로 원전 주민들이 놀랐던 일도 기억이 난다"고 돌이켰다.

초로의 원전맨이 38년을 거치며 깨우친 정수는 간단했다. 그는 "원전의 운영자는 운영정보를 시민사회에 정확하게 알려주고, 또 시민사회는 원전에 대한 충고를 멈추지 않는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영구정지를 계기로 원전운영자와 시민사회가 관계를 더 좁혀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구정지 운동을 전개해 온 하선규 전 부산 YWCA 회장도 함께 단상에 섰다. 그는 "노후원전 고리1호기를 영구정지하도록 해주신 시민과 도민, 탈핵운동가와 활동가들 덕분에 국민과 함께 감격을 누리게 됐다"며 "우리의 뜻을 화끈하게 받아들이고 원전 제로시대 열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고리1호기는 과거 한국의 개발형 원전산업과 미래 탈원전산업을 잇는 말 그대로 고리가 될 전망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논의된 바 있지만 실제로 가동 중이던 원전을 세우고 후처리하는 것은 국내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많은 원전의 단계적 폐로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 폐로산업은 새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이를 기념하듯 한국형원전 산업의 어제와 내일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모두 참석했다. 노 본부장과 하 전 회장을 비롯해 고리1호기에 37년 근무한 이지용씨, 25년 근무한 협력사 직원 김진갑씨, 해체 실무를 담당할 입사 7년차 한수원 직원 김혜미씨가 참석했다. 영구정지 서명운동을 한 주부 장윤정씨, 환경운동가 정수희씨도 자리를 함께했다.

원전은 특성상 가동중지가 끝이 아니다. 소위 핵폐기물이라고 불리는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한 각종 폐기물 처리부터 시작해서 원자로의 해체, 완벽한 부지복원까지 15년 이상이 걸린다. 과정이 워낙 복잡하다보니 오히려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폐로산업에 대한 연구가 본격 시작됐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투명하게 해체 정보를 공개하고, 고리1호기 해체 경험을 살려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설계수명이 다한 노후원전 가동 중단과 신규 준비 중인 원전 착공계획의 백지화"를 선언했다. 고리원전과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인 월내초교 3학년 어린이 8명과 단상에서 정지 버튼을 함께 눌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017.6.1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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