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짜리 헌재소장'?...김이수 부결 후 거세지는 임기논란

[the300][런치리포트-헌재소장 임기 논란-1] 정치권 입김에 흔들리는 헌재 위상

김태은 기자 l 2017.09.13 06:26



헌법재판소장 공백이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최장 기간의 공백 사태다. 지난 11일엔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헌장 사상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헌재소장을 정쟁 수단으로 삼는 정치권을 향한 비판이 쏟아진다. 이와함께 헌재소장 관련 제도적 허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고무줄 임기’, 잦아진 권한대행 체제 등 전임 정부 때부터 헌재소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법에는 없는 헌재소장 임기…대통령에 휘둘릴 소지= 문재인 대통령이 김이수 후보자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했을 때 야당이 반발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임기였다. 헌법재판관 임기(6년)를 고작 1년 남겨놓은 인사를 헌재소장으로 임명할 경우 1년 후 또다시 문 대통령이 헌재소장을 임명하게 된다는 점을 걸고 넘어진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이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염두에 두고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재판관 임기를 대통령의 임기보다 긴 6년으로 함으로써 어떤 눈치도 보지 말고 헌법과 양심에 따르라는 헌법 정신에 어긋난,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의 독립성 침해 소지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앞으로 헌재소장 지명에 있어 대통령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 중 임기 6년인 후보자를 추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 헌법재판관 중 헌재소장을 임명하도록 한 법 규정에 따르면 헌재소장 임기에 따른 독립성 침해 논란은 반복될 소지가 크다. 현재 김 후보자를 제외한 7명의 헌법재판관 중 4명이 김 후보자처럼 잔여 임기가 1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른 2명의 퇴임 시기도 1년 7개월 후인 2019년 4월로 문 대통령 임기 도중이다. 산술적으로는 문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헌재소장을 세번 이상 갈아치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헌재소장 임기가 임명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데 따른 제도적 허점인 셈이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6년이다.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도 6년이다. 헌법재판관중 헌재 소장을 뽑도록 돼 있는데 헌법재판관 재임 후 헌재소장 발탁됐을 때 임기 등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다. 그러다보니 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해 헌법재판관 재직 중 헌재소장에 임명될 경우 헌재소장의 임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관 잔여 임기 동안만 헌재소장을 맡는 것으로 보고 있는 실정이다.


전임 헌재소장인 박한철 전 소장도 헌법재판관 임명 2년여만인 2013년 4월 헌재소장으로 지명되면서 3년 10개월 만에 헌재소장에서 물러났다. 당시에도 박 전 소장 임기를 놓고 정치적 논란이 한 차례 일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없이 올해 12월까지 임기를 마쳤다면 헌재소장을 또한번 임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헌재소장 임기가 정치적 논란 한가운데로= 헌재소장의 임기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못하고 대통령 의지에 따라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를 안고 있다보니 헌재가 민감한 정치 현안이 관련된 판결을 내릴 때마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논란 한가운데 서게 된다.


올 초 대통령 탄핵심판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 박 전 소장의 임기 만료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정치권의 입장이 갈라지자 헌재소장 임기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헌법재판관의 연임 규정에 의거해 박 전 소장이 계속 헌재소장을 맡을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한 것이다. 박 전 소장 스스로가 정치권 주장과 선을 그어 논란이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헌재소장 임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한 비슷한 문제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헌재소장의 ‘고무줄 임기’는 헌재 운영의 연속성 저하로도 이어진다. 지난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지명 당시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 헌법재판관 사퇴 후 헌법재판관 및 헌재소장 지명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전효숙 후보자의 잔여 임기를 3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여서 6년 임기를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야당은 ‘코드인사’의 임기를 늘리기 위한 꼼수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국회 인준도 번번이 무산됐다.


결국 노 대통령은 전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한 후 이강국 대법관을 새로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한 후 동시에 헌재소장으로 지명해 논란을 피해갔다.


김 후보자 인준 실패 후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 역시 신임 헌법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지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임기 논란을 일으키지 않을 뿐더러 삼권분립에 의거한 헌법재판관 구성 요건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현재 총 9명으로 구성되는 헌법재판관 중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는 한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새로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그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하면 국회와의 마찰도 피하고 임기 논란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