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2017 정치 大賞 '팬덤'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01.01 04:30

2017년을 돌이킨다. 탄핵, 장미 대선, 문재인…. 키워드는 모아진다. 세월이 지나도 역사는 2017년을 이렇게 기억할 거다. 개인적으로 덧붙이고 싶은 키워드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팬덤(fandom)’이다. 2016년 대상(大賞)이 ‘촛불’이었다면 2017년 대상은 ‘팬덤’이라고 감히 말한다. 특정 인물(연예인 등)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팬클럽은 새로운 게 아니다. 과거에도 팬덤은 존재했다.

 

하지만 2017년 팬덤은 차별화된다.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ARMY)’가 대표적이다.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팬클럽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내 스타는 내가 키운다’는 의식을 공유한다. 전적으로 능동적이다. 직접 ‘짤’을 만들고 홍보한다. 그리고 소통한다. 대형기획사가 할 일을 팬덤이 ‘직접’ 해낸다. 이들은 수요자이자 공급자다.

 

‘프로듀스 101’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워너원’도 팬덤의 산물이다. 진부할 수 있는 서바이벌 방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팬덤의 힘 덕에 국민 프로그램이 됐다. 각자 스토리, 드라마를 가진 참가자들에 시청자는 몰입했다. 그들이 좌절하면 어찌될까 전전긍긍했다. TV에 출연할 정도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스토리에 그들의 감성이 더해졌다.

 

출연자의 감성이 아닌 시청자의 감성이다. 특히 30~40대 주부들이 열광했다. 자식, 조카 등을 떠올리고 감정 이입을 했다. 직접 투표하고 밤을 새웠다. ‘아이돌’은 중고생의 전유물이라는 공식이 깨졌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은 허황된 수식어가 아니었다. 1등을 한 강 다니엘이 얻는 표만 157만표가 넘는다. 워너원 멤버가 된 11명이 얻는 표의 총합은 1100만표를 웃돈다. 19대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얻은 표가 1300만표, 홍준표 후보의 득표수가 785만표인 것을 감안하면 팬덤의 힘을 확인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게 성공했다. 기획사가 만들고 그 가수에 열광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팬덤이 만들고 팬덤이 지키는 새로운 형태의 탄생이었다.

 

정치권의 키워드도 팬덤이었다. 속칭 ‘문빠’로 불리는 팬덤이다. ‘문재인 팬덤’은 여느 정치인의 팬클럽과 다르다. 시작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첫 정치인 팬클럽이 질적 변화를 이뤄낸 게 문재인 팬덤이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 노무현 정신, 조직화된 시민의 힘으로 무장했다. 그들은 누군가를 추종하기보다 누군가를 택했다. 스토리를 갖고 있고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았다. 그 사람이 문재인이다. 팬덤이 시작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다. 문재인이 흔들릴수록 팬덤의 보호 본능은 강해졌다. 그 과정 속 ‘문재인 팬덤’은 대선의 주인공이 됐다.

 

그 팬덤은 공고하고 단단하다. 계속 진화한다. 속도도 빠르다. 쉽게 ‘문빠’로 치부해 버리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같은 행태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렇게 논평한다고 해서 박사모와 2017년 팬덤이 같아지진 않는다. BTS의 팬덤, 워너원의 팬덤을 보고 조용필의 오빠부대와 같다고 비교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팬덤의 본질은 ‘능동’과 ‘직접’이다. 이는 거간꾼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대의 민주주의’를 토대로 하는 정치권, 정보를 간접적으로 전달해주는 언론 등과 팬덤의 부닥침은 어찌보면 필연적일 수 있다. 능동적인 것을 원하는 이들과 수동 방식을 즐기는 정치와 언론의 부조화다. 그 언론의 한 구성원으로 2017년을 돌아보고 새해를 맞는다.

 

물론 팬덤에 대한 우려는 분명 존재한다. 공격성과 배타성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이다. 팬덤은 직접 소통하며 ‘확장’해 왔다는 점을 잊지 말자. 소통이 아닌 공격, 확장이 아닌 배격으로 흐는 순간, 팬덤은 그저 ‘빠’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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