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사형제 폐지에 개헌특위 자문위도 답했다

[the300][내 삶을 바꾸는 개헌]개헌특위 자문위 "헌법에 생명권 신설. 사형제 폐지" 의견…20년 논쟁 끝내나?

김민우 기자 l 2018.01.04 04:00

1997년 12월30일을 끝으로 마지막 사형이 집행된 지 20년이 지났다. 그러나 사형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폐지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29일 한국천주교회 등 국내 주요 7대종단 대표들은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한국의 사형집행 중단 20년을 맞아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위한 강복 메시지를 전했다. 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사형제 부활 청원이 꾸준히 올라오는 등 반대 목소리도 적잖다.

 

이처럼 찬반이 명백하게 갈리는 사형 제도에 대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자문위원회는 '폐지' 답을 내놨다. 총 5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는 지난해 2월2일부터 11개월간 기본권 및 총강, 정부형태, 정당·선거, 경제·재정, 지방분권, 사법부 분과 등 6개 분과별로 활동한 결과를 압축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중 기본권 및 총강 분과에서 작성한 헌법 개정안에 '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가진다'(11조 1항) '사형은 폐지된다'(11조2항)의 내용을 담았다. 자문위의 개헌안은 참고사항일 뿐 개헌 논의 과정에서 강제력은 없다. 그러나 국회 개헌특위가 개헌안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참고자료로 사용된다.

 

생명권은 이미 1996년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규정한 바 있어 개헌안에 담는데 논란이 없다. 하지만 생명권이 '사형제'와 결부될 경우 달라진다. 헌법재판소가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에 대한 '합헌'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물론 국회 개헌특위내에서도 각 위원마다 의견이 다르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한편 보수정당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형성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과의 오찬에서 "사형제 폐지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같은 사안의 경우 국제 인권원칙에 따른 기준과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자문위는 "사형 폐지는 생명권 보장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국제적 인권수준에 발맞추기 위해 (사형제 폐지를)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단, "헌법 제정권자의 결단으로"라는 단서를 달았다. 국민이 결정해야 할 몫이라는 얘기다. 자문위는 또 '생명권 신설과 사형제 폐지 여부는 반드시 결부되는 것은 아니므로 분리해서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고 2안으로 부대의견을 달았다.

 

여론은 사형제 유지하자는 의견이 더 높다. 지난해 11월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전국 성인 5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3%포인트)에 따르면 '사형을 실제로 집행하는 데 찬성한다'는 의견이 52.8%로 '사형제를 유지하되 집행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32.6%)이나 '사형제를 폐지해야한다'(9.6%)는 의견보다 많았다.

 

특히 자유한국당 지지층(사형집행 찬성 68.9%)과 국민의당 지지층(62.7%), 무당층(57.9%)에서는 '사형집행 찬성' 응답이 다수다. 반면 정의당 지지층에선 '사형집행 반대와 사형제 폐지' 응답이 62.4%로 대다수였다. 민주당 지지층은 사형집행 찬성이 47.9%, 사형집행 반대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50.3%로 팽팽하게 맞섰다.

 




자문위는 생명권 신설을 논의하면서 낙태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생명권이 신설될 경우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할 것인지, 임산부의 자기 결정권과 생명권을 더 우선시 해야 하는지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낙태 문제는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도입이 필요하다'는 청원이 한달도 되지 않아 23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사안이다.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를 금지하는 현행 모자보건법의 위헌여부를 두고 합헌과 위헌이 4대 4로 팽팽하게 맞서기도 했다.

 

자문위에서도 역시 '전면금지'와 '전면허용' '예외적허용'의 의견이 갈렸다. '전면적 금지'를 주장하는 위원들은 "헌법에 생명권을 신설하게 될 경우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로서 인정되고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면적 허용'을 주장하는 위원들은 "태아의 생명권과 마찬가지로 임산부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자기결정권 및 생명권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자문위는 헌법조항에 낙태문제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대신 "낙태문제, 배아를 이용한 학문연구 등은 정책결정 차원의 문제이므로 생명권 신설과 별개로 인정될 수 있다"며 "생명권을 명시할 경우 생명윤리 확립을 통해 과학기술정책 및 사회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낙태 금지와 허용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헌법조항에 생명권이 신설될 경우 이를 토대로한 사회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놓은 셈이다.

 

결국 낙태문제는 개헌특위보다는 정부와 청와대로 다시 공이 넘어갈 공산이 커졌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임신중절 실태 조사를 실시,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겠다"며 사회 의견수렴에 나설 의사를 밝혔다.

 

조 수석은 "실태조사 재개와 헌재 위헌 심판 진행으로 사회적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이라며 "자연유산 유도약의 합법화 여부도 이런 사회적, 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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