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궁금해 만든 '1987' 사용설명서

[the300][대한민국 1987-2018]⑦'남영동의 진실'부터 '지랄탄'과 '받들겠습니다'까지…'1987' 속 궁금증 총정리

이건희 기자, 조준영 김지수 이수빈 인턴기자 l 2018.01.13 04:31

편집자주 14일은 '6월 항쟁'의 불씨를 당긴 고(故) 박종철 열사 사망 31년이 되는 날이다. 머니투데이는 '영화 1987' 신드롬을 통해 대한민국의 31년전과 오늘을 짚어 봤다.



1987년. 지금 20대가 태어나기 전이다. 이들에게 영화 ‘1987’ 분위기는 낮설다.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단어, 활동하는 장소가 영화 속 설정처럼 느껴진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의 20대 기자들은 1987을 보고 비슷한 궁금증을 가졌을 이들을 위해 ‘1987 사용설명서’를 만들었다. 생소한 용어들을 비롯해 당시의 상황이 현재로 이어진 모습을 함께 정리했다.

#‘아픈 기억’ 서린 남영동
영화 시작과 함께 나오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갈월동에 있다. 하지만 근처에 남영역이 있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렸다. 건축가 김수근씨가 만든 이 건물은 ‘검은 벽돌’로 둘러싸였다. 취조실엔 물고문을 위한 샤워기와 욕조가 있다. 창문은 세로형의 좁은 형태다. 창문을 깨고 도망치기도 어렵고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구조다.

그곳은 현재 ‘경찰청 인권센터’로 사용중이다. 고 박종철 열사가 숨진 취조실은 그대로 있다. 2005년 홍영기 당시 경찰청 경무국장은 시설 전환을 발표하면서 “반인권의 상징 장소를 경찰 인권기념관으로 바꿔 인권 경찰로 새 출발한다는 의지”라고 밝혔다.

#권력기관과 실존 인물
영화 속 ‘안기부’는 국가안전기획부의 약칭이다. 현 국가정보원의 과거 명칭이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이 해당 기관의 수장인 안기부장 장세동 역을 맡았다.

또 ‘치안본부’는 지금의 경찰청이라고 보면 된다. 배우 우현이 연기한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은 실존 인물이다. 강 본부장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말을 실제로 한 인물로 알려졌다. 영화 속에선 이 대사를 대공수사처의 ‘박 처장’(김윤석 분)이 소화했다. 박 처장 역시 박처원 당시 치안감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 박 치안감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고문하거나 수사 결과를 조작하는 등의 행위를 지휘한 인물로 전해진다.

고 박종철 열사의 부검을 지시한 최 검사(하정우 분)의 등장 배경이 된 ‘공안부’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업무를 맡은 검찰청 내 부서였다. 최 검사 역시 실제 인물이다. 현재 변호사인 최환 당시 검사는 1987년 6.10 민주항쟁(이하 6월항쟁) 이후 서울지검장을 맡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받아쓰기’나 잘해?
제5공화국 시절 정부는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사를 통제했다. 정부기관이 보도의 방향·내용·형식을 구체적으로 결정해 실질적인 언론의 역할을 했다. 당시 기자들은 보도지침에 맞춰 ‘받아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신성호 중앙일보 기자의 첫 보도는 기자들의 통상적 활동인 ‘마와리’(まわり)를 통해 나왔다. 마와리란 기자가 출입처를 돌아다니며 기삿거리를 찾는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다. 신 기자는 대검찰청 마와리를 돌다 이홍규 공안4과장으로부터 남영동에서 죽은 대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최초 보도를 했다.

이후 보도의 범위를 확대하는 역할을 한 윤상삼 동아일보 기자는 중앙대병원 오연상 의사를 취재해 물고문에 대한 정보를 얻어냈다. 영화 속에서 윤 기자는 몰래 화장실에서 종일 ‘뻗치기’를 해 관련 내용을 취재했다. 뻗치기란 정보를 얻기 위해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을 뜻하는 기자들의 은어다.

#시위 아니고 데모?
‘데모’는 영어 ‘Demonstration’(데몬스트레이션)의 준말이다. 반대·항의 뜻을 전하는 집단행동을 의미한다. 최근엔 데모라는 말보다 시위 또는 집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시위 현장에 던져진 속칭 ‘지랄탄’도 있다. 지랄탄은 시위진압을 목적으로 경찰이 사용한 ‘최루탄’의 다른 이름이다. 지랄탄은 시위 진압용 차량에서 발사하면 사방으로 튀어 최루 가스를 분출했다. 간질병 환자가 게거품을 토해내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라 지랄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시위 현장마다 전경들과 함께 나타나는 무명의 인물들도 있다. 이들은 ‘백골단’이다. 당시 시위를 진압하고 체포하기 위해 구성된 사복경찰관이다. 흰색 헬멧에 청색 재킷 복장 때문에 ‘백골단’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1980~1990년대 백골단은 대부분 무술 유단자와 특전사 출신으로 구성됐다.

#‘피난처’였던 종교시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조작이 폭로된 곳은 서울 명동성당이었다. 1987년 5.18 7주기 추모미사에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명동성당은 당시 민주화를 열망하는 목소리가 모이는 장이었다. 또 경찰의 폭력으로부터 농성하는 학생들이 은신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영화에서 ‘김정남’(설경구 분)은 향림교회과 불교계 종교시설에서 은신한다. 하지만 그의 실제 은신처는 지인의 집이었다고 한다. 영화 속 향림교회의 실제 모델은 ‘향린교회’로 이곳은 6월 항쟁의 주요 거점이 됐다. 1987년 5월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이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약칭 ‘국본’으로 6월항쟁을 주도했다.

#1987년 ‘그때 그광장’은 2017년에도
영화 속에서 시청광장 등 곳곳에서의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최루탄 연기를 피하기 위해 두건과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에는 직접 만든 현수막이나 고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초상이 들려 있었다. 오후 6시에는 승용차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려 힘을 보탰다. 한편으로 광장 근처 상인들이 시위대에게 공짜 음식이나 물 등을 제공하는 풍경이 나타났다.

2016~2017년 촛불집회에는 매주 100만여명 안팎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시위는 평화로웠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촛불 아이템’을 들고 있었다. 촛대에 종이컵을 꽂아 만든 ‘기본템’부터 촛불 모양 전구 머리띠까지 다양했다. 광장 곳곳에서 음식을 판매하는 상인들, 공연을 펼치는 예술인 등 29년 뒤 집회는 비장함보단 활기참이 주를 이뤘다.

#‘독재타도’는 ‘퇴진하라’로
영화 엔딩에서 열렬히 외쳐진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다. ‘호헌철폐’라는 구호는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을 거부한 ‘4·13 호헌’(헌법을 지킴)에 대한 반대 의미를 담았다. 독재를 몰아내자는 구호와 함께 시민들은 ‘애국가’와 ‘아침이슬’, ‘그날이 오면’을 열창했다.

촛불 혁명의 구호는 더 단순해졌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참석자는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쳤다. 이와 함께 집회에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로 이어지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윤민석씨가 작사·작곡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였다.

#번외(사실은…)
대공수사처 형사들이 상관을 향해 말하는 “받들겠습니다”란 대사는 시나리오를 쓴 김경찬 작가의 아이디어다. 장준환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폭압적인 문화를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속 연희(김태리 분)가 즐겨듣는 곡 ‘가리워진 길’은 실제 6월항쟁 당시와 시기가 맞지 않다. 해당 곡은 가수 고 유재하의 1집 음반 ‘사랑하기 때문에’에 수록된 곡이다. 음반의 실제 발매일은 6월 항쟁이 끝난 뒤인 1987년 8월20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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