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사용설명서

[the300]종합

이재원 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l 2018.02.22 10:42
치안에서 선거까지…민주주의 뒷받침하는 '보이지 않는 손'


민주주의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꼭 필요한 상임위가 바로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소방 관련 법안을 들여다본다.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인 선거와 관련된 법안도 행안위에서 다듬는다. 나라의 기둥이 되는 만큼 국회에서 역사가 가장 긴 상임위 중 하나다. 1948년 내무치안위원회로 출범한 행안위는, 60년의 세월 동안 국회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국민들의 생활을 챙겨왔다.

행안위에서 담당하는 정부부처는 행정안전부이다. 당장 우리 삶과 큰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행안부의 외청인 경찰청, 소방청을 포함 공무원연금공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24곳에 달하는 기관이 딸려온다. 국정감사 기간엔 지자체에 대한 국정감사까지 도맡는다. 자연스럽게 다루는 법률도 150가지가 넘는다. 그래서 행안위는 국회에서 가장 바쁜 상임위가 됐다.

20대 국회 전반기가 마무리 돼가는 시점에 행안위에는 1000건이 넘는 법안이 쌓였다. 이 법안들을 김부년 행안위 수석전문위원(사진) 등 20여명의 인원들이 검토하고 의견을 낸다. 김 전문위원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지난 19일에도, 책상에 관련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가장 발 넓은 상임위"=행안위는 국회에서 발이 넓은 상임위 중 하나다. 원래도 규모가 컸지만, 문재인 정부의 조직개편 과정에서 더 바빠졌다. 국민안전처가 행안부로 흡수통합 되는 등 행안부의 규모가 더 커졌다는게 김 수석전문위원의 설명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구획정으로 갈등 중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실무 역시 행안위에서 맡는다.


여기에 지방자치분권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법안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연이은 화재 사고로 안전관련 법안도 쏟아졌다. 2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행안위 소관 법률은 1307건이다. 국회의 16개 상임위 가운데 1000건이 넘는 법률이 접수된 곳은 행안위, 복지위, 환노위, 국토위 딱 4곳이다. 이 중에서도 행안위가 압도적이다. 

김 수석전문위원은 "정부조직법을 보면 어느 부처의 소관도 아닌 법률은 자연스럽게 행안부에서 맡도록 규정돼 있다"며 "행안부 규모가 커진데다, 담당하는 영역이 넓다 보니 자연스레 행안위의 업무량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악' 소리나게 많은 법안의 홍수다. 막상 법안들이 통과된다고 해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행안위 공무원들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 김 수석전문위원은 "정부운영과 국민생활 모두의 인프라를 우리가 담당한다는 마음으로 법안들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아슬아슬 줄타기 속 느끼는 보람=법안의 수 만큼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법안도 많다. 특히 국가 행정이나 국민 생활 전반에 걸친 법안을 다루다 보니, 타 부처 법안과 엮이는 경우가 많다. 타 부처 법안을 임의로 변경할 수도 없다. 이럴 때마다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슬기로운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김 수석전문위원과 행안위 식구들의 일이다.

예를 들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소방기본법 개정안이다. 지난해 12월 있었던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이후 발의된 법안에는 공동주택에 소방자동차(소방차) 전용 주차구역을 의무화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소방 관련 법안이니 행안위 소관이지만, 막상 공동주택의 범위를 규정하는 법안은 국토위 소관의 법안인 건축법이다. 

건축법에 따르면 연립주택, 다세대주택까지 모두 공동주택에 포함된다. 이런 곳까지 주차구역을 설치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실효성 논란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토부 법안을 행안위에서 개정할 수도 없는 노릇. 이에 김 수석전문위원이 묘안을 냈다. 공동주택의 범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해 우선 아파트라도 소방차 주차구역 의무 설치화하고, 추후 연립주택 등으로 확대하는 안이었다.

결국 국토부와 소방청 모두 이 안을 수용했고, 법은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빛을 보게 됐다. 김 수석전문위원은 "아무리 정부라고 해도 법안을 강제해 민간의 영역이나 타 부서의 법안을 뜯어고칠 수는 없다"며 "충분히 얘기를 듣고 조화를 이뤄 타협점을 찾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문성 앞세워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부족한 인력에 밀려드는 법안 사이에서도 행안위는 효율적인 정부 운영과 국민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00건이 넘는 법안이 접수됐지만, 빠른 처리를 자신한다. 의원들도 전문성을 갖춘 덕이다. 의원들 중 다수가 행정고시를 통과한 관료 출신이거나, 경찰 등 행안위 소관부처에서 경험을 쌓고 온 이들이다. 

김 수석전문위원도 자신의 전문성을 살린다. 국회 경력 26년(입법고시 11회)인 그는 지난해 7월 행안위 수석전문위원으로 부임했다. 이전에는 국회 미방위(現 과기정위)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국회 내에서 IT 분야에서 김 수석전문위원만큼 전문성을 가진 이를 찾기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자정부 관련 법안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전자정부를 더 활성화하면 효율적인 정부 운영과, 국민과의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사안이다. 과기정위 등에서는 데이터 공개 등 규제 완화와 이용 활성화를 주장하지만, 행안위 입장에서는 개인정보보호 등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수석전문위원은 "빅 데이터의 관점에서 볼 때도 전자정부는 매우 중요한 이슈"라며 "여러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사안인 만큼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해 국회와 정부의 효율성 발휘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몰카 금지법'에서 '물관리 일원화'까지…줄타기 연속인 행안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접수된 1300여건의 법안 가운데 허투루 볼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대한민국 정부조직이나 국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법안들이다. 국민들의 체감도가 높고, 한 번 바꾸면 또다시 개정하기가 쉽지 않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 가운데서도 우선순위는 있다. 특히 넉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대비한 공직선거법 개정, 연이어 벌어진 화재 참사로 국민적 요구가 높아진 소방관련 법안 등이 이들이다. 

◇언제 끝날까, 공직선거법 개정=
행안위에 계류돼 있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200건이 넘는다. 여야의 정쟁에 발목잡혀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이 어서 개정돼야 하는 이유는 선거구 획정 때문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국회는 지방의원 총 정수표를 확정하고, 이를 반영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 본래 선거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13일까지는 전국 시도지사에게 제출하게 돼 있었지만, 국회 논의가 늦어지고 있다.

오는 28일 본회의에서조차 개정안이 통과하지 못한다면 다음달 2일로 예정된 지방선거 광역의원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돼도, 후보들은 자신의 선거구도 모른 채 등록하게 된다. 

◇취지는 좋지만…'불법촬영 금지법'=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의한 '개인영상정보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도 올해 행안위에서 주의깊게 들여다 보는 법안이다. 정부는 불법촬영·유포 등으로 발생하는 사생활 침해와 디지털 성범죄 등을 막기 위해 이같은 법을 제정했다. 

행안위 측에서는 취지와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에 개인영상정보와 관련된 특례조항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국회에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김부년 행안위 수석전문위원은 "이 법안이 그대로 제정될 경우 영상과 관련한 개인정보를 오히려 침해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더 모으고 법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방법' 공감대 형성했지만, 높은 예산의 벽=지난해 제천, 지난달 밀양 화재를 거치며 발의된 각종 소방관련 법안들도 올해 행안위가 중점적으로 살펴야 할 이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9일 발의된 임종성 의원의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소방시설법)이다. 의료시설이라면 규모에 상관없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 하는 법안이다.

이 외에도 소방시설을 의무화하거나, 소방차 전용구역 확보 등 다양한 법안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문제는 예산이다. 대부분의 법안이 검토 단계에서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좌절된다. 건축법(국토부) 등 타 부처 법안과 상충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불씨 남은 '정부조직법'=지난해 7월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하며 중소벤처기업부 신설을 확정했던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여전히 살아있는 불씨다. 아직 정부조직법과 관련된 사안들이 여럿 남았다.

대표적인 것이 물관리 일원화다. 당초 환경부에 설치한 '물관리 일원화 TF'에서 결정할 사안이었지만, 여야 갈등으로 논의가 좌초됐다. 이에 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여야 의원 142명의 서명을 받아 물관리 업무를 환경부로 일원화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아직 소위에 상정만 됐을 뿐,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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