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문재인 프로세스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03.14 04:40

19대 대통령 선거 막바지였던 지난해 5월초. 미국 타임지 표지 모델로 ‘문재인 후보’가 등장했을 때 의아스러웠다. ‘니고시에이터(협상가)’라는 제목부터 ‘뜬금포’로 여겼다. 협상가, 중재자는커녕 ‘코리아 패싱’을 걱정하던 게 당시 대선 유력 후보를 향한 시선이었다.


하지만 10개월뒤 그 제목은 현실이 됐다. ‘운전대나 잡을 수 있겠냐’는 비아냥은 “운전 솜씨가 제법이네”라는 칭찬에 묻혔다. 운전자의 기본은 인내와 끈기였다. 그리고 창의적 발상으로 길을 뚫었다. 신중하면서도 대담한 발걸음이었다.

김여정의 방남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한번에 이끌어냈다. 진영을 떠나 환호할 일이다. ‘전쟁설’까지 돌던 한반도 기류를 반전시킨 유려한 운전술이다. 문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아웃라인을 직접 짰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듣는 것은 민주적이었지만 결정은 비민주적이었다”고 ‘농반진반’의 말을 했다. 정의용 안보실장 등 참모진은 문 대통령의 지시를 받으면 이행하는 데 공을 들였다.

북한과 합의한 6개 항목도 문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2년, 2017년 두 번의 대선 준비 과정, 5년의 청와대 경험 모두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여정의 남북정상회담 제의에 대한 문 대통령의 대응이 좋은 예다. 문 대통령은 즉답하지 않았다. “여건이 맞으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여건은 곧 미국을 뜻했다. 참여정부 때 얻은 교훈이 작용했다. 김 의원은 이렇게 회고했다. “참여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빨리 갖고 싶었다. 하지만 한미 관계가 풀리지 않았다. 2007년에야 겨우 정상회담이 이뤄졌고 합의 사항의 추진 동력은 사라졌다.”

한미관계를 풀지 못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문 대통령이 잘 알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문 대통령 취임 초에도 일부 참모그룹이 ‘남북대화 조기 재개’을 수차례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자신만의 호흡을 유지했다. 미국을 염두에 둔 속도 조절이었다.

과정 하나하나도 놀랍다. 프로세스의 백미는 특사를 활용한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합의 직후 정의용·서훈을 미국으로 보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부각시킨다.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개인적’ 감사도 전한다.

특사가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중국행, 일본행 비행기를 태운다. 시징핀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이 ‘패싱’을 느끼기 전 ‘배려’한다. 소외된 이들이 딴소리를 내기 전 잠재우는 모양새다. “북미 대화 지지” “기적 직전의 상황” 등 긍정의 반응이 뒤따른다. 마치 치밀하게 짜인 각본처럼 연출한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유민영 A케이스 대표는 “결과만큼 중요한 게 프로세스 전략”이라고 평한다. 그러면서 “복잡한, 특수한, 복합적 상황에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고 있다”고 덧붙인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정의하면 ‘문재인 프로세스’다. 선언만 있을 뿐 실체가 없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박근혜)나 ‘비핵개방 3000’(이명박)과 차원이 다르다. 한·미, 남·북, 북·미, 중·일·러 등 과정마다 충실히 이행하고 실질적 협의를 만든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수식어 대신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의 국가’를 보여준다. 국가의 품격은 자연스레 상승한다. 돌이켜보면 역사적으로 한국 외교가 중심이 됐던 적이 있었을까.

1998년 북핵 위기의 해법이 미국 주도의 ‘페리 프로세스’였다면 2018년엔 ‘문재인 프로세스’다. 물론 향후 극적인 대전환은 ‘문재인 프로세스’로만 가능하지 않다. 초당적 협력은 기본이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트럼프·문재인·김정은 프로세스’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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