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아래 여성, 그 아래 청소년…'밀레니엄 베이비'의 참정권

[the300][이주의 법안]①하태경 발의 '18세 정치참여법'…성년연령 하향 등 조치 뒤따라야

조현욱 보좌관(금태섭 의원실), 정리=김태은 기자 l 2018.04.13 05:00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17년 1월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군대 가고 세금 낼 의무는 있는데 투표할 권리는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유일하다. 우리 청년들의 정치의식은 세계 최고인데 권리는 최저라서 부끄럽고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국회에 제출된 ‘대통령 개헌안’에 담겼다.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선거권 확대의 역사다. 보통선거 원칙의 정착 여부가 민주주의의 척도다. 민주주의는 보다 많은 주권자의 의견이 국가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세금을 내는 백인 남성에게만 주어진 선거권이 1900년대에 이르러야 남성의 보통선거권으로 확대됐다. 여성의 선거권은 1920~50년에야 정착됐다.

1965년 미국 앨래바마 주에서 경찰이 흑인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쏜 ‘피의 일요일’ 사건, 1913년 영국 런던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이라고 외치며 국왕의 경주마 앞으로 뛰어들어 사망한 여성, 몸을 쇠사슬로 묶는 백악관 시위 등이 보통선거를 위한 희생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참정권도 민주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보통선거제도가 시작됐다. 당시에는 21세 이상에게만 선거권이 있다. 1960년 5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선거권자 연령이 20세로 낮아졌고 1987년 개헌에서는 선거연령 규정을 헌법에서 빼고 법률에 위임했다. 이후 2005년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현재와 같은 19세 이상 선거권이 자리잡았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18세 이상 국민의 선거권을 보장한다”라고 명시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은 ‘18세 정치참여법’이다. 현재 19세로 돼 있는 선거권을 18세로 낮추고, 25세로 되어 있는 피선거권(대통령은 40세) 또한 18세로 낮추자는 것이다. 현행 선거운동 제한 연령도 14세로 하향 조정한다. 2005년 선거 연령 조정 후 우리 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고 청소년을 포함한 국민의 정치적 의식수준이 크게 고양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중등교육을 마치는 18세부터 19세의 사람은 취업문제나 교육문제에 지대한 관심으로 갖게 되고 인터넷의 발달에 가장 친숙한 세대로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능력을 갖췄다는 판단이다.

◇“이 법은 반드시 필요한가?”= 2005년 선거연령 19세로의 개정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18세안’과 한나라당의 ‘20세 유지안’ 사이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런 연유로 18대, 19대 국회에서도 꾸준히 선거연령 18세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결국 폐기됐다. 20대 국회 개원이후 ‘18세 정치참여법’은 봇물처럼 발의됐다. 윤후덕 민주당 의원의 ‘선거권 18세, 선거운동 18세’안을 시작으로 13건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선거연령이 높으면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차단하게 되고 반대로 낮으면 미성숙한 유권자의 판단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된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교육수준의 향상 및 인터넷 등 정보교류가 활발해진 사회환경 등을 고려해 조속한 결론을 내릴 시기하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법은 타당한가?”= 찬성론의 가장 큰 논거는 청소년의 정치참여다. 18세가 새로운 유권자로 등장하면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나 취업과 같은 입법과 정책적 관심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법률과 부조화를 없애고서 권한과 책임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18세 선거권이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다. 공무원 시험 응시, 운전면허 취득, 혼인 가능, 병역과 납세 등 모든 의무가 부과되는 연령과 선거 가능 연령이 다를 이유가 없다.

반대편에선 18세 청소년의 정치적 판단능력이 미흡하다는 점을 든다. 18세는 미성년자이므로 성년연령에 따른 권리 부여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미성년자에게 우리 사회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은 모순일 뿐 아니라 선거권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18세가 고등학생이라는 점도 문제삼는다. 선거 때마다 고3 학생들이 일시적이나마 학업을 중단하고 선거에 따른 정치활동에 나서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청소년 보호 취지에 어긋난다.

한편 선거연령 하향 조정에 따른 재정투입은 극히 미미하다. 선거권자 늘어나면 투표용지 인쇄비 등 선거관리 비용과 선거보조금 등 정당 보조금이 증가하지만 대략 10년간 20억원 정도다. 투표시간 2시간 연장에 따라 늘어난 비용(130억원)이나 사전투표 시간 연장에 드는 비용(66억원)과 비교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이 법은 실행 가능한가?”= 그동안 ‘18세 정치참여법’의 경우 여당 대 야당의 정당 대결 구도가 강했다. 18세 선거안이 개헌안에 포함되면서 그 구도는 더 강화됐다. 이는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정치적 유불리나 이해타산을 계산하면 안된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킨다.

63만4501명. 2000년에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의 숫자이다. 올해 최대의 입시 경쟁을 겪을 세대이기도 하다.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선거연령 하향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들은 2년 이후 총선에서야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은 2015년에 선거연령을 기존 20세에서 18세로 하향조정했고 이에 맞춰 성년연령도 20세에서 18세로 낮추는 민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성년연령과의 불일치로 나올 수 있는 사회적 혼란과 영향력 감안한 것이다.

선거연령 조정은 첫 걸음에 불과하다. 성년연령을 선거연령과 일치하도록 개선하고, 청소년보호법, 소년법 등 관련 법률의 개정작업도 이뤄져야 한다. 고3 청소년들이 특정 정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거나 이념적 스펙트럼이 편중됐다는 생각은 ‘어른’들만 피선거권을 가져야한다는 생각만큼 ‘꼰대스러운 해석’이기도 하다. 특정 정당이 유리할 것이란 예측도 ‘근거없는 낙관론’이다.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당이 유리하다는 '환상이' 잘못됐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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