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강경파에 경고메시지…'선제적' 체제보장 촉구

[the300]김계관, 볼턴 직격 '리비아식 핵폐기' 일축…北 핵포기 과정서 내부반발 가능성도

박소연 기자 l 2018.05.16 19:03
존 볼턴 백악관 NSC 보좌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뉴스1

북한이 16일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한 것은 북미회담을 앞두고 미측에 보내는 경고메시지로 해석된다. 미 강경파들이 리비아식 핵폐기 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비핵화 허들을 높이는 데 대해 분명한 반발을 표함으로써 향후 협상에서 미측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북측이 대화의 '판'을 완전히 깨지는 않았단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은 이날 새벽 0시30분쯤 우리측의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연기한다고 통보했다. 전날(15일) 오전 9시 판문점 연락채널 개통 직후 회담 개최 의사를 밝힌 지 15시간30분 만이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맥스선더' 훈련이 판문점선언에 대한 도전이며 한반도 정세흐름에 역행하는 군사도발이라며 회담 중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맥스선더'는 명분일 뿐, 북측의 이번 조치는 미측을 겨냥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한은 이날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담화를 내고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우리는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며 다가오는 조미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이 과거 6자회담 수석으로 활약했으나 현재 2선으로 물러나 있는 김 제1부상까지 끌어들인 것은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겨냥하기 위함이란 분석이다. 김 제1부상은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였던 2000년대 중반 국무부 군축·국제안보담당 차관,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볼턴 보좌관과 수차례 맞붙었던 악연이 있다. 김 제1부상은 담화에서 볼턴 보좌관을 북미협상에 훼방을 놓는 '사이비 우국지사'라고 직격하며 "핵개발 초기단계에 있었던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다"고 비난했다.

이는 '선(先) 핵포기 후(後) 보상' 원칙의 리비아식 핵폐기 방식에 대한 분명한 선 긋기로 풀이된다. 김 제1부상은 핵 포기를 대가로 한 미국의 경제보상에도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시종일관 핵 포기의 대가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체제안전 보장을 요구해왔다. 이는 북미회담의 핵심 의제이기도 하다. 최근 볼턴 보좌관을 필두로 미국 강경파들은 이러한 의제를 뛰어넘어 생화학무기 완전 폐기 등으로 북핵 해결 원칙을 상향하고, 북한인권, 억류자 문제까지 거론해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리용호 외무상 등 북미회담의 핵심인물이 아닌 김계관 개인 명의로 입장을 밝힌 것이므로 판을 깨겠다기보단 경고성으로 보인다"며 "북미회담 중심 의제와 동떨어진 문제들을 연일 의제에 끼워넣고 있는 볼턴 보좌관에게 경고를 날리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볼턴 보좌관을 저지할 것을 간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가 맥스선더 훈련을 전년보다도 고강도로 진행한 것도 북측이 반발한 한 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올해 훈련엔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22랩터 8대가 대거 참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김정은이 예정된 한미훈련을 용인한다고 했지 전략자산 동원을 용인한다고 발표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자신들이 핵무력을 완성했기 때문에 안보와 경제를 교환할 수 없으며, 적대관계 철회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두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핵포기를 하겠단 기본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적대정책 철회는 군사훈련 중지와 맞닿아있다"며 "북측은 핵실험장 폐기 등 선행적 조치를 취했는데 미측은 예정된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최대압박이란 기존 입장을 유지하는 데 대해 불만을 표하며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북측이 우리측의 회담 제의를 수락한 후 15시간 만에 이를 갑작스레 철회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부터 전향적인 남북·북미관계 개선에 나서고 핵 포기를 천명하는 등 노선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북측 내부 반발이 있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유환 교수는 "미측에서 볼턴 등 네오콘(강경파)의 반발이 있듯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는 과정에서 북측 군부 등의 반발과 그로 인한 혼선이 있을 수 있다"며 "언젠간 겪고 가야 할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다음달 북미정상회담의 키를 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 향후 정국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누구보다 북미회담 성공이란 성과를 원하고 있는 만큼 북측의 의도를 파악하고 볼턴 보좌관의 발언 수위 등을 정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단 트럼프 행정부는 북측의 조치를 주시하면서 북미회담 준비를 계속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양무진 교수는 "북측은 남북관계는 일단 속도조절을 하겠단 입장"이라며 "미측이 북한의 체제 존엄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기 떄문에 북미회담 개최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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