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식·물·정·당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05.23 04:20
5월 18일, 천막이 사라졌다. 국회 본관 앞에 있던 자유한국당의 농성장이다. 4월 17일 설치된 후 한달 만이다. ‘드루킹 특검 도입’ 등을 내건 천막인데 모르는 국민이 더 많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9일간 ‘단식’한 장소로 그나마 기억될 뿐이다. 

오히려 천막은 봄나들이 차 국회를 찾은 국민들의 구경거리였다. 관심거리가 아닌 조롱거리에 가까웠다. 한국당도 자랑거리로 내세우지 않았다. “왜 천막인가”는 질문에 딱 떨어지는 답을 준 이는 없었다. 오히려 “천막 다음엔 뭘 해야 할지…”라며 되묻는 이들이 더 많았다.  

천막은 미래보다 과거를 찾는 한국당의 현재를 보여준다. ‘향수’로 포장하고 싶지만 실제론 ‘되새김질’이다. 천막의 추억은 2004년이다. ‘차떼기’에 이어 ‘탄핵 역풍’이 불자 당시 한나라당은 당사를 나와 천막을 쳤다. ‘천막당사’는 이벤트였지만 먹혔다. 쇼일지라도 과정이 좋으면 통한다. 역풍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국민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2018년 천막은 ‘아무도 모르는’ 쇼, ‘과정이 없는’ 쇼다. 그 자체로 실패다. 한국당의 행보가 답답한 이유다. ‘과정’을 배제한 채 ‘결과’에 몰두한다. 요새 트렌드가 ‘과정’인 것을 감안하면 퇴행적이다.  

천막에서 무엇을 했는지, 얻었는지 한국당은 말하지 못한다. 113명의 의원들은 돌아가며 당직을 섰다. 천막을 향해 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강한 의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돌아온 순번을 넘겨야겠다는 의무만 읽혔다. 애써 저녁 자리를 길게 이어갔다. 천막에 가는 시간을 조금이나 줄이고 싶은 심경이 전해졌다. 당사자조차 과정에 동참하지 못하니 공감을 기대할 수 없다. 

천막에 모여 앉아 나눈 얘기도 ‘문재인 독주 반대’가 전부다. 야당의 존재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용이 공허하다. 독주를 허용하는 한국당의 현실은 애써 외면한다. ‘보수의 몰락’을 한탄하던 목소리조차 이제 들리지 않는다. 천막을 칠 때도, 거둘 때도 그저 조용하다. 우아한 백조도 아니다. 물밑의 치열한 발길질은 과한 기대다.  

정당의 이념, 신념, 정책도 없는 ‘식물 정당’이다.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슬로건으로 내놨다가 며칠 뒤 앞에 단어 하나(‘경제를’)를 추가하는 수준이다. 국민은 보수의 안보와 경제 무능에 실망했는데 옛 노래를 계속 튼다. 야당다운 실험이나 파격은 없다.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이 내건 ‘신보수주의’는 하루살이였다. ‘서민과’ 함께 하는 보수 정당을 외친 김성태 원내대표의 행보도 그렇다. ‘근로시간 단축’은 김성태의 작품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총대를 멨지만 김성태의 결단이 아니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법이다. 그래놓고 경제계 반발이 일자 정부·여당 것으로 돌린다. ‘삶의 질’을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나의 과정’을 또 놓친다.  

한국당은 스스로 안위한다. 2015년의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보다 낫다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시 새정연의 갈등은 상상을 초월했다. 2015년 2월 문재인이 당 대표가 된 후 ‘문재인 흔들기’ 일일 막장 드라마가 펼쳐졌다. 하지만 비교 시점이 다르다. 

한국당의 드라마 시작 시점은 6·13 지방선거 후다. 총선을 20개월 앞에 둔 한국당이 어떤 ‘과정’을 보여줄지…. 한국당 인사는 “여권을 향해 참여연대, 친노조 세력, 친문 등을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 내부엔 그런 세력, 계파도 없고 부닥침도 없다”고 답답해했다. ‘

분탕질’같은 최소한의 동물적 행위가 ‘식물정당에서 존재할 지 의문이다. 게다가 지방선거를 앞둔 식물정당은 한국당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나름 보수의 정계 개편으로 포장될 ’식물정당 살아남기‘ 과정이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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