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레터]왜 '조재범법'이 아니고 '심석희법'일까

[the300]피해자 중심 법안 명명 관행…성폭력 2차 피해 예방 신중해야

백지수 기자 l 2019.01.09 15:30
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의원실이 보낸 공지 문자. /사진=스마트폰 화면 캡처


"체육계 성폭행·폭행 OUT ! '심석희법' 발의"

9일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 이같은 공지 문자 메시지가 전송됐다.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오는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육계 성폭행과 폭행을 근절할 국민생활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알리는 공지문이었다.

안 위원장이 발의할 법안은 국민생활체육진흥법 개정안이다. 체육계 폭력·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고, 가해자로 밝혀질 경우 체육관련 단체·협회 등에서 영구제명하는 게 골자다. 

안 위원장은 이 법안을 '심석희법'이라고 명명했다. 안 위원장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심 선수 본인이 자기 이름을 걸고 스스로 피해 사실을 밝혀서 '심석희법'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말했다.

심 선수의 폭행·성폭행 피해는 조재범 코치를 가해자로 지목하고 고소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지난해 심 선수의 선수촌 이탈과 폭행에 대한 법정 공방에 이어 심 선수는 전날 성폭행 피해를 당한 사실도 밝히고 조 코치를 추가 고소했다.

사실 정치권에서 대부분 사건과 관련된 법안을 명명할 때 피해자 명칭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말 본회의를 통과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나 '윤창호법(도로교통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 등도 고인이 된 사고 피해자들 이름을 땄다.

다만 이같은 명명법이 불편하다는 시각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한 법안 발의나 언론 보도에서는 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의 이름을 딴 '조재범법'이 아니라 피해자 이름을 딴 '심석희법'이 됐냐는 문제 제기다. 가해자 이름보다 피해자 이름이 더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이 담겼다.

이미 여론이 이같은 명명법에 불편함을 느낀지 오래다. '조두순법'이 대표적이다. 이는 2008년 12월 일어난 '조두순 사건' 이후 만들어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별칭이다.

8세 여아를 강간 상해한 가해자 조두순 이름을 딴 이 법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을 때는 '나영이법'으로 불렸다. 피해자의 가명 '나영이'를 딴 명칭이었다. 처벌이 필요한 가해자가 아닌 보호될 피해자를 자꾸 노출시키는 명칭이라는 여론이 일었다. 언론 보도에서도 차츰 '조두순법', '조두순 사건' 등의 명칭이 보편화됐다.

이에 비해 성범죄 사건의 명명법은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성폭행 피해와 불법 촬영물 유포 피해를 당했다고 밝힌 유튜버 양예원씨 사건도 '양예원 사건'으로 불린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고려한다 해도 피해자들 이름이 더 자주 노출되면서 2차 피해를 당하기도 하는 경우가 생긴다. 가해자는 가려진다.

이번 사건 여론의 양상도 비슷하다. 심 선수의 '미투(#MeToo·성폭행 피해 사실 폭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심 선수가 아닌 조 코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목이 '조재범 코치를 강력 처벌해 주세요'다.

"본인이 이름을 걸고 밝혀서"라며 발의할 법안에 '심석희법'이라고 이름 붙인 안 위원장에게 이같은 여론을 설명했다. 안 위원장은 "좋은 지적"이라며 "오후 중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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