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피의사실공표…'박근혜는 되고 조국은 안된다'?

[the300]'착한 공표' vs '나쁜 공표'…나누는 기준은 '내 편' 여부

김평화 기자 l 2019.09.16 18:10

조국 법무부 장관이 16일 오전 여의도 콘래드 서울에서 열린 '전자증권제도 시행 기념식'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피의사실공표도 정당한 언론의 자유 범위 안에 있으면 위법성이 조각(阻却, 방해하거나 물리침)돼 불벌”(2011년 5월)

“피의사실공표를 운운하며 선관위와 언론 맹공. 합법적 단속과 취재활동도 마음에 들지 않기에. 이 사건의 파장을 알기에. 공이 이미 높아졌으니, 그만 하시길”(2012년 12월)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들이다. 이를 통해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조 장관의 당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법 전문가로서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피의사실공표를 처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피의사실공표 금지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했다.

그런데 그가 수장을 맡은 법무부가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피의사실공표 금지를 추진한다. 약 7년만에 생각이 달라졌을까. 달라진 건 상황과 처지다. 최근 조 장관 배우자가 불구속 기소됐다. 

정치권에서 피의사실공표 논란은 낯설지 않다. 대형 정치인이 수사대상에 오를 때마다 나왔던 이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사대상이었을 때, 민주당은 피의사실 보도에 환호했다. 

그런 민주당이 조 장관 관련 수사내용 보도는 피의사실공표라며 검찰과 언론을 동시에 압박한다. 한국 정치가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정파적으로 악용돼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민주당계가 피의사실 공표에 문제를 제기했던 건 10년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회갑 선물로 받은 1억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내다 버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진행중인 수사 내용이 검찰에서 새나간 것. 전국민적 비난속에 조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민주당은 ‘검찰정치’를 비판하며 피의사실공표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수사대상의 ‘편’, 진영이 바뀌자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입장도 달라진다. 조 장관은 MB(이명박)정부 시절이던 2011년 5월 은진수 당시 감사원 감사위원이 로비스트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트윗을 올렸다. 공적 인물의 혐의에 대한 피의사실공표는 공익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처벌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2012년 대선 직전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보도됐다. 이정현 당시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은 선관위와 언론이 수사가 진행중인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며 날을 세웠다. 조 장관은 이때도 공적인 인물에 대한 의혹을 보도하는 것이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반박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일어나자 민주당의 태도가 또 한 번 달라진다. 민주당은 당시 연달아 보도된 검찰 수사중인 혐의들을 요긴하게 활용했다. 검찰 수사 내용은 ‘실시간’ 수준으로 보도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에서도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이 삼성 측으로부터 수십억 원의 뇌물을 추가로 받았다는 의혹이 검찰발로 기사화됐다. 이 전 대통령 변호인은 항소심에서 피의사실공표를 문제삼았다.

피의사실공표가 검찰과 경찰 간 ‘샅바싸움’으로 활용되는 모습도 보인다. 울산지검은 올해 6·13 지방선거 당시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을 수사한 울산 경찰이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렸는지를 수사중이다. 자유한국당은 이 사건과 관련,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현 대전지방경찰청장)을 피의사실공표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성태 한국당 의원 딸 관련 KT채용비리 사건도 피의사실공표 문제로 확전됐다. 장제원 한국당 의원도 아들 장용준씨(래퍼 노엘)가 최근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낸 후 운전자 바꿔치기를 했다는 의혹 등이 보도되자 “경찰이 악의적 여론조성을 위해 수사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무차별 유출했다”며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경찰을 검찰에 고발조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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