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법꼭]국회가 손놓은 '몰카 방지' 변형카메라법

[the300]정부종합대책 불구 과방위 법안소위서 1년간 잠자…"관련 산업 위축 우려 보완하고, 국민 우려 해소해야"

이지윤 기자 l 2019.11.19 06:00

편집자주 30%를 밑도는 역대 최저 수준의 법안처리율, 정당도 조장하는 보여주기식 법안 건수 경쟁. 내년 총선까지 약 5개월 임기를 남긴 20대 국회가 법안을 대하는 현실이다. 대통령이 수없이 호소하고, 기업인들이 사정을 해도 중요 경제·산업·민생·혁신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다. 20대 국회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 법안만은 꼭 처리하길 바라며 우리 국민들 삶에 당장 필요한 법안들을 머니투데이 더300(the)이 다시 소환했다. 이 법안만은 꼭!



안경, 시계, 모자, 열쇠, 볼펜 등에 숨은 '또 다른 눈'. 

생활필수품으로 위장한 몰래카메라에 대한 국민의 공포는 여전하다. 언제 어디서든 불법 촬영에 노출될 수 있는 현실은 그대로다. 인터넷에 부유하는 수많은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에 대한 불안감도 줄지 않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으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위반해 수사받은 건수는 5925건으로 2011년 1535건에 비해 4배 가량 증가했다. 경찰의 수사조차 받지 않은 수많은 불법 촬영을 감안하면 수치를 추산하는 것 자체가 공포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2017년 9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몰래카메라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종합대책에서 디지털 성범죄 전 과정에 걸쳐 총 22개의 개선과제를 마련했다. 특히 몰래 카메라로 악용되기 쉬운 변형카메라의 수입과 판매 등에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변형카메라 수입·판매업 등록제 도입 및 이력정보시스템 구축 방안'을 내세웠다. 

그러나 정작 입법으로 답해야 할 국회가 머뭇거리면서 정부가 마련한 종합 대책에도 제동이 걸렸다. 관련 내용을 담은 '변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변형카메라법)'에 대한 논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심사소위 단계에 1년 동안 묶여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정기국회 기간 중 '이 법안만은 꼭'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똑똑똑'…세차례 국회문 두드린 '변형 카메라법'= '변형 카메라법'의 역사는 19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병완 대안신당 의원은 지난 2015년 '변형 카메라법'을 처음으로 발의했다.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디지털 성범죄로 악용되는 변형카메라를 사전에 규제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당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가 보지도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 들어온 장 의원은 지난 2017년 '변형 카메라법'을 다시 발의했다. '장병완 안'은 변형 카메라 허가제를 핵심으로 한다. 공익 목적이 명확하고 악용 우려가 없는 변형카메라만 허가한다는 내용이다. 또 변형카메라 이력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변형카메라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했다. 

지난해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변형 카메라법'을 발의했다. '진선미 안'은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사전 규제의 수준을 한 단계 낮췄다. 변형카메라 현황 파악을 위한 이력정보시스템을 구축 내용도 역시 포함됐다.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에 발묶인 이유는? = '장병완 안'과 '진선미 안'은 지난해 11월 과방위 법안심사소위 안건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적 '갑질 폭행'이 밝혀진 직후다. 웹하드 카르텔 구성을 통한 불법 촬영물 유포 문제가 마침 수면 위로 떠올랐고 여성단체가 연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정도로 당시의 사회적 요구가 거셌다.  

여야는 그러나 형식적인 짧은 논의를 진행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법안은 소위에서 더 다뤄지지 못했다. 제정법안이 거쳐야할 별도의 공청회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소위원장이었던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금 굉장히 사회적 관심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국회법이 정한 절차를 준수해 공청회를 거쳐 논의하도록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국회는 이마저도 챙기지 않고 사실상 법안을 방치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형카메라법에 대한 별도의 공청회는 열리지 않았다. 과방위의 많은 현안들에 밀렸다. 지난 19대 국회 때와 마찬가지로 20대 국회에서도 임기 만료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산업계 "비현실적 법안" 우려도 = 표면적으론 공청회가 문제였지만 '변형 카메라법' 논의가 더딘 배경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 과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대부분 법안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실효성에 적잖은 의문을 가졌다. 변형카메라에 대한 허가·등록제가 자칫 산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실제 적용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이같은 인식은 과방위 법안심사소위 당시 속기록에서도 확인된다.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법적 규제로 변형카메라를 이용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인데 마치 변형카메라 자체를 처벌하기 위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드론도 전부 허가·등록제로 해야 한다"며 "아무 것도 못하게 될 수 있어 우리가 법을 만들 때는 무엇을 규제 대상으로 삼을지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공청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완 안'에 대한 과방위 검토보고서 역시 "생활 주변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실용 카메라와 규제 대상이 되는 변형 카메라를 구분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선미 안' 검토보고서도 "규제를 통한 개인 사생활 보호 측면과 기술발전 및 산업육성 측면을 균형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과기부 "변형카메라법 취지 공감" 수용='변형 카메라법'의 소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법안 취지에 공감한다. 산업계 우려는 이해하지만 법안에서 규정하는 변형 카메라의 범위와 처벌 강도 등의 규제 내용은 향후 국회 논의를 통해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기부는 지난 2017년 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인 만큼 입법이 필요하며 불가능하다면 우선 공청회라도 개최해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기부는 '진선미 안'에 대해 "몰래카메라로 인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불법촬영 범죄에 악용되고 있는 변형카메라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법률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며 "변형카메라의 수입‧판매업자 등 취급자와 소지자에 대한 등록제 도입을 통해 무분별한 변형카메라의 시중 유통을 방지하고 불법촬영 위법성에 대한 국민 인식 확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수용 의견을 냈다. 

장 의원과 진 의원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진 의원은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디지털 성범죄는 인터넷을 통해 빠른 속보로 전파되고 완전한 삭제가 어렵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처벌하는 규제만으로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며 "사전적으로 변형카메라에 대한 규제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가 국민들의 이런 불안감에 대해 입법으로 응답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도 "국회에서 큰 사건이 터질 때만 반응하고 이후에는 논의를 하지 않아 안타깝다"며 "몰래카메라 범죄에 있어 특히 여성의 피해가 심각하지만 이를 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문화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변형카메라법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