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법꼭]"55세가 고령자?"…'만년 계약직' 굴레 쓴 '5060'

[the300]기간제법 개정안, '55세 이상'도 2년 고용 시 무기계약직 전환…이원욱 "초고령사회 대안 고심"

이원광 기자 l 2019.12.04 08:24

편집자주 [편집자주] 30%를 밑도는 역대 최저 수준의 법안처리율, 정당도 조장하는 보여주기식 법안 건수 경쟁. 내년 총선까지 약 5개월 임기를 남긴 20대 국회가 법안을 대하는 현실이다. 대통령이 수없이 호소하고, 기업인들이 사정을 해도 중요 경제·산업·민생·혁신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다. 20대 국회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 법안만은 꼭 처리하길 바라며 우리 국민들 삶에 당장 필요한 법안들을 머니투데이 더300(the)이 다시 소환했다. 이 법안만은 꼭!



‘고령자는 55세 이상인 사람으로 한다.’(고령자고용촉진법 시행령)

55세 회사 선배가 있다면 ‘고령자’라고 불러보시라. 싸늘한 눈초리를 받으며 불필요한 말싸움에 연루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다른 이들의 한심스러운 시선도 피하기 어렵다. 60세도 청춘인 시대인데 55세가 고령자라니.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법령의 여파는 노동 시장에서 발생한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55세 이상 계약직(기간제) 근로자들이 그 대상이다.

#“계약직을 보호하라…55세 이상은 빼고”

기간제법은 ‘만년 계약직’의 굴레를 벗게 해주는 법으로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12월 제정돼 2007년 7월 시행됐다. 계약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한 경우 자동으로 무기계약직(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하는 기간제법 4조가 핵심이다. 시장 충격을 고려해 해당 조항은 2년 후인 2009년 7월부터 발효됐다.

문제는 예외 조항이다. 기간제법 4조는 고령자와 계약하는 경우를 예외로 뒀다. 55세 이상을 고령자로 규정하는 다른 법령(고령자고용촉진법 시행령)과 얽히며 ‘고령자’들이 상대적 피해를 보게 됐다. 55세 이상 계약직 근로자는 고용된 지 2년이 지나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에 55세 이상 근로자가 기간제법의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해당 조항은 55세 이상 계약직 근로자의 무기계약직 전환 기회를 박탈하는 한편 일부 사업자가 계약직으로 계속 고용이 가능한 55세 이상 근로자만 뽑으면서 질 나쁜 일자리가 이들에게 집중되는 문제가 동시에 발생했다.

실제 2014년 한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출자한 비영리 공공법인이 환경미화원과 경비원, 주차관리원 등을 직접 고용하면서 응시자격을 55세 이상으로 제한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계약직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고령자를 이용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외 규정은 곧 ‘연령 차별’”

기간제법 개정안은 고령자에 대한 예외 조항을 제거함으로써 55세 이상 근로자에게도 무기계약직 전환 기회를 제공한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12월 대표 발의했다.

명분은 ‘차별 금지’다. 55세 이상이라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연령 차별’이라는 문제 의식이다. 기간제법상 다른 예외 대상과 비교하면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현행 기간제법은 고령자 외에도 △사업의 완료나 특정한 업무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휴직·파견 등으로 결원이 발생해 당해 근로자가 복귀할 때까지 대리 업무하는 경우 △근로자가 학업·직업훈련 등을 이수하면서 그 기간을 정한 경우 등을 예외로 둔다.

기간제법 개정안을 다루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전문위원실은 “고령자에 대한 예외 규정이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보고 이를 삭제하려는 것으로 타당하다”고 평했다. 이어 “특히 종사하는 근로자의 연령에 따라 업무 특성이 바뀌는 것이 아님에도 고령자를 예외로 두는 조항은 상시 업무에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하기 위한 편법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원욱 “현행 기간제법, 초고령사회 대안될 수 없어”

한국 사회가 초고령 사회로 본격 진입하면서 고령자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변화하는 점도 고려했다. 국민의 보편적 인식에 비춰 55세 이상을 고령자로 규정한 고령자고용촉진법을 기간제법이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기간제법이 제정되기 직전인 2005년 기대수명은 78.2세였으나 14년이 지난 올해는 83세로 늘었다. 2040년 기대수명은 86.8세로 전망된다. 65세 이상 초고령 인구도 급증한다. 

올해 65세 이상 인구는 768만4919명으로 전체 14.9%이나 2040년에는 1722만3537명으로 전체 33.9%가 된다. 55세는 ‘아직 젊다’가 아닌 ‘매우 젊다’로 불릴 상황이다. 

기초연금·국민연금과 형평성도 살펴봐야 한다.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일반 수급자와 소득 하위 20%의 저소득 수급자에 차등 지급되는 기초연금은 65세부터 수령 가능하다. 국민연금 수령 나이 역시 2034년 65세로 증가한다. 기존 60세에서 출생연도 기준으로 1953년생부터 4년마다 1세씩 증가시킨 결과다.

이원욱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the)300과 통화에서 “우리 사회가 ‘팽창사회’에서 ‘수축사회’로 전환되면서 나이와 노동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며 “노동과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이 수립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노인 빈곤 문제를 깊이 들여다 보면서 55세 이상을 기간제법의 예외로 하는 것은 초고령사회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좋은 법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회전문 효과’ 우려…치열한 논쟁·보완 필요

국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기간제법 예외조항이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55세 이상 근로자들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관점이다. 55세 이상 근로자들을 무기계약직 전환대상에 포함시키면  사업자가 이들을 채용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1년 ‘기간제법상 사용기간 제한규정의 입법영향분석 보고서’를 통해 기간제법이 무기계약직 전환 촉진 등의 입법 목적을 달성했다면서도 이른바 ‘회전문 효과’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계약직 근로자를 2년 이내 범위에서 사용하고 다른 계약직 근로자를 채용하는 문제다. 

헌법재판소도 2013년 기간제법상 계약직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에 대한 위헌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해당 규정을 합헌으로 보면서도 ‘회전문 효과’ 등이 현실화된다고 인식했다. 

#국회 무관심…20대 국회 처리 불투명

무엇보다 문제는 국회 무관심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상정된 후 2년 가까이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환노위는 올들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안 등 굵직한 쟁점 법안들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일부 법안들은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비쟁점 법안이라도 논의해 처리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남은 국회 일정을 고려하면 향후 법안 처리 전망은 더욱 어둡다. 오는 1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종료되는데, 여야는 한 치 양보 없는 대결 국면을 예고한다. 한국당은 이 기간 ‘민식이법’ 등을 제외한 본회의 안건들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반면, 민주당은 다른 야당들과 ‘4+1’ 공조를 기반으로 법안과 예산안 처리를 준비한다.

향후 임시회를 통한 처리 가능성도 희박하다. ‘총선 국면’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21대 총선’을 노리는 의원들은 선거일 전 120일인 오는 17일부터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자 등록을 신청한다. 이 때부터 상당수 의원들이 지역구 일정을 소화하면서 법안 논의는 사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371회 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 개의 예정시간 1시간이 지나도록 본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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