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셔서 기억이…" 한마디면 경찰 때려도 감옥 안 간다?

[the300]"음주 폭력 엄벌하는 방향 법개정 필요…상습음주범죄 처벌 강화도"

이슈팀 이원광 기자 l 2014.06.09 08:20
(서울=뉴스1) 정회성 기자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편의점에서 점원이 냉장고에 주류를 진열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한국슈퍼마켓연합회와 협력해 "SSM·편의점 주류 접근 최소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달부터 홍보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5월부터 계산대 등 출입구 근처에 주류


#. 30대 여성 프로골퍼 A씨는 술에 취한 채 차를 몰다 음주측정을 요구한 경찰관을 밀치며 주먹질을 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A씨는 파출소에서도 경찰에게 욕설을 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등 소란을 피웠다.

재판부는 "반성태도도 미흡하고 공권력을 경시하는 정도가 심각하다"면서도 "다만 만취상태에서 범행에 이른 점을 감안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해 감옥행을 면하게 해줬다. 음주에 의한 '심신미약'이라는 논리가 받아들여진 것. 

2008년 8살 여자아이를 납치해 성폭행한 조두순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항소 끝에 징역 12년형으로 감형됐다.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 소위 '심신미약'상태였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의 여파로 성범죄에 대해서는 음주 또는 약물에 의한 심신미약 상태를 감형사유에서 제외하도록 지난해 6월 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폭행 등 다른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음주 감형'이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법무법인 한길의 문정구 변호사는 "주취 폭력자가 100명이면 100명 모두 '만취해 그랬으니 선처해 달라'며 음주에 의한 감형을 주장한다"며 "법적으로만 따지면 살인을 하더라도 심신상실 상태에서는 그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발적 음주와 비자발적 음주를 구분하는 등 음주범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심신미약자에 대한 고려는 필요하지만 '음주'를 내세워 감형을 받는 등 법을 악용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아직도 술을 마시고 실수해도 용서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주취자들은 여전히 관용을 베풀어줄 것으로 생각한다"며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거나 원치 않은 술자리였다거나 하는 경우에만 법적으로 고려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 변호사는 "음주 감형을 최소화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폭력적 성향을 알면서도 음주 후 폭행한 피의자는 더욱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며 "앞으로 술에 의한 폭력은 엄벌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ADL의 홍지숙 변호사도 "주취자는 형법상 심신미약자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다른 심신미약자들은 감형되는 게 맞다"면서도 "음주 후 습관적으로 성추행이나 욕을 하거나 동종전과가 있는 등 폭력 성향이 있는 사람은 심신미약으로 고려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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