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어도 괜찮아"…'식물상임위' 주역 유승희의 뚝심

[the300][의원사용설명서] 유승희 여성가족위원장

이미영 기자 l 2014.07.29 07:16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나 싫어해요! 당에서도 나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그는 당당하면서도 소탈하게 웃어넘겼다. 자신의 '비호감'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19대 전반기 국회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새정치연합 간사를 지냈던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미방위 의원들 사이에서 '여전사'로 통한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미방위에서 방송법과 관련해 새누리당과 가장 많이 부딪힌 의원이다. 새정치연합의 공영방송과 관련한 방송법이 통과되지 않자 방송법을 빌미로 100여개의 법안 통과를 막는 장본인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2014.07.23 유승희 의원 인터뷰


유 의원은 의원들 사이에서도 회의에서 가장 목소리가 가장 큰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기자들이 회의실 밖에서 회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유의원의 목소리가 유달리 크게 밖으로 새어나오곤 한다.

 

그의 이런 면은 오히려 동료 의원들의 버팀목이었다. 한 야당 의원은 "유승희 없었으면 방송법에 야당 의견이 단 한개도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새정치연합은 방송법 중 공영방송 사장 선임 시 청문회를 개최토록 하는 법안을 포함시켜 방송법을 통과시켰다.

그는 당 내 여성위원장을 하면서도 '악명'이 높아졌다. 여성 의원들이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당 내에서 종횡무진 애썼다. 기초의원 여성 공천 30% 할당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 당헌을 제정하는 성과를 얻어낸 것도 그 덕분이었다.

유 의원은 이런 그의 활약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열정적으로 임했다는 자신감도 여기서 나온다. 의정활동 우수 의원으로 선정된 것은 그런 '신념'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것이다.

2014.07.23 유승희 의원 인터뷰


[프로필]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중학생 소녀는 대학을 입한한 스무살부터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피아노 레슨을 받던 소녀는 그가 지금까지도 가장 존경한다는 본 회퍼의 '옥중서간'을 읽고 삶의 방향을 바꿨다. 나치정권에 맞서 싸우다 결국 처형당한 그의 삶처럼 사람들 속에서 함께 고민하는 사회운동가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1980년 이화여대에서 종교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유승희 의원은 입학하자마자 기독학생운동을 하면서 노동현장으로 뛰어든다. 이대에서 총 2명 뿐이었던 종교학 전공자인 만큼 당시 학장이었던 장상 전 이대총장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운동만 한다고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1985년부터 1995년까지 구로공단을 주 무대로 하는 산돌교회의 산돌노동문화원에서 활동했다. 공장에서 구두에 시약을 바르는 등 '시다'역할을 하며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며 노동권 향상을 위해 발로 뛰었다.


 광명시의원으로 출마하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후 1998년 민주당 당직자로 활동하고, 6년 뒤에는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18대 국회는 지역구를 받지 못해 여의도를 떠났다 절치부심, 2012년 19대 국회에서 성북 갑 지역구에서 당당히 당선됐다.


그는 19대 전반기 국회에서 미방위 간사와 여성가족위원으로 겸직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하반기에는 여성가족위원장을 맡아 활약할 방침이다.

이력
△1960년 서울 출생(53세) △이화여대 문리대 △한양대 행정학 박사 △산돌노동문화원 총무 △광명시 시의원 △새천년민주당 여성국장 △17·19대 국회의원 △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간사 

[대표법안]

유승희 의원의 19대 1호 법안은 친고죄 폐지법안이다.

 성범죄는 5대 강력범죄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지 못했다. 그동안 처벌도 강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성범죄에 대한 관대한 분위기가 만연했다. 피해자가 죄인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친고죄를 없애기 위해 당론으로 친고죄 전면 폐지를 위한 형법개정안을 대표발의 했고 지난해 6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지난 2월에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국민의 불안이 고조돼 사회적 혼란과 손실비용이 발생했다는 점이 지적됨에 따라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당시 유승희 의원은 개인정보는 유출되면 2차 피해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전에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이 법안을 발의했으나 아직 계류 중에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형법 체계를 개정하는 법안도 지난해 말 발의했다. 유 의원은 우리나라는 명예훼손죄를 형사 처벌하는 그런 법체계로 되어 있는데 선진국에 그런 예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는 명예훼손과 관련한 법은 민사상의 법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에서 형법으로 넘어가고, 형량도 징역형으로 되어 있어 너무 이게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관검색어-여성공천, 종로, 파란색 ]

여성공천

 

그는 여성 공천에 할말이 많았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6.4 지방선거에서 신통치 않았던 여성공천 때문에 속 앓이를 했다고 털어놨다. 여가위 전체회의도 참석하지 못할 만큼 기관지염을 심하게 앓다 겨우 회복된 시점이었다. 기초의원 30% 공천을 당헌으로 정했지만 이번 지방선거 지역구 기초의원 공천에서 여성은 겨우 16.4%에 그쳤다.


유 의원은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백혜련 후보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는 "검사 시절 미네르바, 피디수첩, 검철 무분별 기소 비판 하고 사표내고 나온 후 민주당이 나서서 영입한 후보다"며 "어려운 지역으로 공천을 해서 안타깝긴 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고 희망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은희 전 수사과장에 대한 평가도 비슷했다. 그는 "권은희 후보는 훌륭한 후보다. 타이밍은 이견 있을 수 있다 재산등록 문제는 지나치게 표적이 되고 있는게 안타깝다"며 "새누리당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혀서 도대체 누구 득이 될 건지 모르겟다. 재산 허위 신고 짙은 후보도 있다"고  말했다.


종로, 정치 1번지

그가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이유도 그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비례대표 임기가 끝난 후 다음 선거 지역으로 '종로'를 택했다. 주변에서 만류가 있었다. "여성이 정치 1번지인 종로에서 선거출마를 하는 것이 말이돼나"는 반응이었다.


유 의원은 "종로가 내 생활 근거지이기도 했지만 정치 1번지인 종로에서 여성 의원이 출마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지 않냐"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손학규 전 대표가 종로에 전략공천되면서 그는 쓴 눈물을 삼켰다. 4년 뒤 당은 그에게 성북 갑 지역을 공천했고, 당당히 당선돼 국회로 돌아왔다.


파란색..."다행히 빨간색은 안받아서"

유승희 의원 사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란색이다. 파란색 셔츠, 터틀넥, 재킷 등 파란색 옷이 유난히 많이 등장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 당이 파랑색이니까요"라고 웃으며 그가 답했다. 열린우리당일 때는 노랑색, 민주당일 땐 초록색을 즐겨입었다는 유 의원은 "다행히 빨간색은 안받는다"며 우스개 소리도 했다.


[요!주의-당내 지지도]


유승희 의원은 '진정성'있는 의원으로 통한다. 그의 정직한 모습을 친근하게 본 변영주 영화감독은 2012년 총선 당시 그를 본지 30분도 안된 자리에서 '친구같은 의원'이라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비쳐지는 그의 '전투적' 이미지 때문인지 당내 영향력에 비해 지지도는 떨어진다. 유승희 의원의 강경한 태도가 종종 당 내 의원들 사이에서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4월 방송법을 통과시킬 당시에도 당 내에서 여당과 합의하고 넘어가자는 의견과 충돌하기도 했다.


당 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할 말을 하지만 다소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종종 나오는 배경이다. 유승희 의원 관계자도 "본인이 전반기 국회에서 필요한 일을 했지만 당 내에서도 싫은 소리가 나와 많이 실망했다"고 전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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