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9.5단' 박지원, '새정치'에서 올드보이가 사는 법

[대한민국 국회의원 사용설명서][the300]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하세린 기자 l 2015.01.09 14:16

편집자주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싸울 때는 제대로 싸우고, 양보할 때는 감동적으로 양보할 수 있는 강한 야당을 이끌 대표가 되겠습니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7일 새정치연합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컷오프)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컷오프를 통과해 2·8전국대의원대회 당 대표 경선에 도전하는 박 의원은 "분열을 막을 대표, 투쟁도 협상도 잘 하는 대표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재인 의원을 겨냥해 "친노·비노를 떠나서 당이 잘되는 길이 무엇인지 마음을 열고 상생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며 "전당대회는 당대표를 뽑는 거지 대선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18대 민주당 원내대표(2010)·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2011)에서 19대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2012)까지. 박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어지는 '민주당'의 살아 있는 역사다. 민주당의 '올드보이'(OB), 박지원.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역사를 쓸 수 있을까.

<그는 → '국딩' 때부터 꿈이 '야당총무'>

그의 꿈은 국민학교 때부터 국회의원이었다. 7년을 연애한 여인에게 "결혼하고 나면 아내를 팔아서라도 국회의원을 꼭 하겠다"고 말하던 이 남자. 이 말에 아내는 딴 남자에게 시집갈 뻔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박 의원의 별명은 '야당 총무'였다.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그렇게 답한 것이 별명이 돼버렸다. 왜 하필 야당 총무를 하겠다고 했을까. 그는 "그냥 언론에 이름이 많이 나오니, 그저 멋있게 느껴져서 그랬을 것 같다"고 했다(96년 자서전 '넥타이를 잘 매는 남자' 중).

꿈은 이뤄졌다. 2010년 이명박 정권 때 민주당의 '야당 총무'를, 2012년엔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를 맡았다. 그러나 그는 야당 대변인으로서 이름을 더 날렸다. DJ 시절, 4년간 최장수 대변인을 지냈다. 매일 아침 6시10분이 동교동에 도착했다. DJ가 눈을 뜨면 부인 이희호 여사보다도 먼저 보는 사람이 박지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그는 딱 이틀, 총재와의 새벽 대면식에 빠졌다. 전날 밤 기자들과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다.

대변인 시절 그에게 가장 욕을 많이 얻어 먹은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김종필, 이춘구, 김윤환 대표도 마찬가지. 그는 김덕룡 의원에게 '백두흑심', '민주주의의 목을 비트는 하수인'이라는 표현도 썼다. 훗날 그렇게까지 표현한 것은 아무래도 지나쳤다며 반성했다. 

<이런 면이? → 유영철과 '학교 동기'>

고소고발도 많이 당하고, 감옥생활도 꽤 오래한 박의원은 여러 일화가 있다. 2004년 대북송금 사건으로 서울 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할때는 '시대의 살인마'라고 불린 유영철과 '감방'을 같이 썼다. 그때 박 의원은 유영철이 탁월한 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그는 지난해 법사위 국감에서도 '재벌 총수들의 화려한 독방 생활'에 대해 야당 의원들이 질타할 때 "나한테 물어봐라. 내가 제일 잘 안다"며 국감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공사다망한 그이지만, 국회 출석률은 으뜸이다. "성적은 안좋아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게 박 의원의 지론. 참여연대가 지난 19대 국회 상임위 출석률을 분석한 결과 박 의원은 법사위 116회 가운데 102번 출석, 14번 무단결근으로 출석률 88%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뽑은 2014년 국정감사 우수 의원 28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키워드 → 트위터, 정보통>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가 끝난 지난해 10월28일 새벽 12시18분. 박 의원의 트위터엔 어김 없이 글이 올라왔다. 
"어젯밤 11시 21일간 국감 끝. 사이버 사찰, 감사원 청와 부실감사 등 실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정보위 겸임으로 오늘 국정원 감사를 시작으로 11월7일까지 (국감을 계속 합니다)." 울상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이모티콘 'ㅠㅠ'도 빠지지 않았다.



올해 그의 나이 만 72세. 그는 트위터 광이다. 하루에 적게는 6개, 많게는 열개가 넘는 트윗을 올린다. 일상의 소회도 올리지만 '정보통'답게 그의 트윗이 속보에서 가장 앞서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도 있다. 

박 의원의 보좌관은 박 의원의 트위터 사랑에 대해 말한다. "굳이 안 올리셔도 되는데 올리신다고." '금귀월래'(매주 금요일에 지역구인 목포에 내려갔다가 월요일 서울로 올라온다는 뜻, 지역구를 그만큼 잘 챙긴다는 박지원의 트레이드 마크) 할 때도 꼭 트위터에 올린다. 그는 금귀월래 트윗을 국민들한테 하는 보고로 생각한다. 인생의 멘토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항상 지역구 사람들을 만나라고 그랬다"며 7년간 금귀월래를 실천하고 있다.

그의 트위터 사랑은 메모광의 연장선상이다. 모 보좌관에 따르면 박 의원은 항상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그러나 일정을 적을 때는 여전히 수첩을 사용한다. 펜은 20년 전부터 검·빨·파(검정 빨강 파랑) '빠이롯' 니들펜만 쓴다.

'대한민국 정보통'이라는 별명은 이러한 메모 습관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정보통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하나.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 방미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 사건'에 관해서다.박 의원은 첫째 딸의 상견례가 있어 뉴욕에 가야 했다. 우연찮게 박 대통령의 방미 기간과 시기가 겹쳤다. 야당 의원의 방문이 구설수가 될 것을 염려해 그는 조용히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보통'인 박 의원에게 한 교민이 제보를 해왔다. 윤 대변인이 주미 한국대사관 여성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것. 박 의원이 고민하던 사이, 국내에서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은 박 의원은 미국 시간으로 오후 2시쯤 트위터에 "미국은 여성 인권이 최고인 나라인데, 윤창중을 도피하게 한 건 큰 잘못이다. 미국에서 수사받게 했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연관 검색어 → DJ>

김.대.중.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세글자다. 박 의원은 83년 5월, DJ와의 만남을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83년부터 10년 이상 총재를 모셨다. 처음부터 가까이서 모신 건 아니었다. 92년 대선을 앞두고부터는 늘 총재 곁에 있었다. 그렇게 총재를 가까이서 모시면서 느낀 점 역시 한마디로 '존경스럽다'는 말뿐이었다."('넥타이를 잘 매는 남자' 중)

박 의원은 DJ의 최측근으로 지금도 이희호 여사를 깍듯이 모신다. 이 여사는 지난해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35주기를 추도식을 맞아 첫 추모 화한을 보낼 때도 박 의원과 먼저 상의를 했다. 

<이 한장의 사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 시절(1998-1999) DJ와 함께. 어김없이 '빠이롯' 니들펜을 들고 있다. /사진=박지원 의원실



<그의 사람들 → 박영선, 김무성>

박영선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박 의원은 '박 남매'라고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다. 이들은 18대 국회에서부터 법사위에서 줄곧 함께 활동해왔다. 박 의원은 19대 국회 첫 원내대표를 역임할 당시 상임위원장 배정과 관련, 선수와 나이순이라는 관례를 깨고 박영선의원을 최초의 여성 법사위원장에 앉히기도 했다.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 당시에도 박 위원장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원내대표 당선을 도왔다.

이밖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영록 전 원내수석부대표, 이윤석 의원 등이 '박지원계'로 꼽힌다.

여야를 뛰어넘는 인사파워는 박 의원을 따라갈 수 없다. 그는 여권의 실세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도 '행님' '아우'하는 사이. 두 사람은 2010년 여야 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김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난항을 겪던 지난해 8월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새정치연합 내 강경파들을 잘 설득해달라"며 '아이스버킷 챌린지 캠페인'의 대상자로 박 의원을 지목하기도 했다.

난해 새누리당 7·14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와 치열하게 겨뤘던 서청원 최고위원과도 친하다. 박 의원은 당시 '둘 중 누가 당대표가 될 것 같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둘 중에 하나는 되지 않겠느냐"며 "누가 됐으면 하는 건 (왼쪽 가슴에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여기에 있고"라고 했다.

'그럼 누가 되면 새정치연합과 호흡이 잘 맞겠느냐'는 질문엔 "새누리는 새누리고 새정치는 새정치다. 김무성이 되면 우리한테 잘해줄 거 같나? 서청원이 된다고 우리한테 잘해줄까? 누가 되든 똑같다"며 '정치 9.5단'다운 답을 내놨다.

<대표법안 → 아동복지법 일부개정안>

지난해 3월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 최근 부모의 사망·이혼·수감 등으로 가족의 해체가 빈번해지면서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보호대상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 개정안이다. 이른바 '그룹홈' 운영의 지원에 관한 개정안이다.
우리나라는 주로 대규모 시설보호를 통하여 보호대상아동을 지원 해왔다. 그러나 최근 최선의 양육법은 가정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자라나게 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확산되면서 공동생활가정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소규모 아동보호의 지원체계를 강화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행법은 공동생활가정을 다른 보호조치와 병렬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공동생활가정 보호조치가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있고, 공동생활가정 지원 수준도 시설보호 아동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실정. 박 의원은 이에 공동생활가정 보호조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공동생활가정 보호조치의 절차를 명확히 함으로써 집단적 시설보호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고, 보호대상 아동에 대한 가정적인 보살핌과 전문적인 개입이 가능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요 주의!>

'정치 9.5단.' 박지원 의원을 한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은 그가 '능숙한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란한 말솜씨, 탁원한 유머감각, 상대를 '들었다 놨다'하는 긴장감까지 어김없는 '정치인'이다. 그러다 보니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스스로 지역감정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지역감정을 또한 가장 잘 이용하는 정치인이라는 평도 듣는다. DJ의 미국 망명시절, 그는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당시 최신 유행 스타일을 파악해 한국에서 맞춘 가발을 미국에 수출해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5공 정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물론 김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심각한 인간적 고뇌에 빠졌고, 이후 경환씨와는 자연스럽게 연을 끊었다.

일각에선 OB의 역할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면서 새 인재를 양성하는 게 OB의 역할인데 박 의원이 20년 넘게 정치권에 있으면서 제대로 키운 YB가 없다는 것.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차기 당 대표를 거머쥐려면 당내 확실한 박지원 세력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분석.

<프로필>

△전라남도 진도(72) △목포 문태고-단국대 상학 학사 △14·18·19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1995) △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1997)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1998-1999) △문화관광부 장관(1999-2000) △대통령 비서실장(2002) △18대 민주당 원내대표(2010)·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2011)·최고위원 △19대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2012)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법사위원, 정보, 운영위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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