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김' 그림자 벗고, 주전 출격 준비 마친 이인영

[the300][이인영 의원사용설명서]

박광범 기자 l 2015.01.08 15:58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2011년 12월29일 부산 MBC에서 진행된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관련 TV토론회장에 참석한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김근태 전 의원이 위독하다는 연락이었다.


당시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이의원은 같은 날 오후 예정됐던 부산·경남 지역 합동연설회를 포기하고 바로 상경길에 올랐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이인영 의원은 평생을 아버지처럼 모셔온 분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맏상제라는 생각으로 큰고민을 하지 않고 상경했다"고 전했다. 다음날 새벽 김 전 의원은 타계했다. 이 의원은 당권레이스에 복귀하지 않고 장례 내내 맏상제 역할을 했다. 이듬해 1월3일 영결식과 하관식이 거행된 뒤에야 경선에 복귀했다.


이 의원은 현재까지도 '리틀 김근태'라 불린다. 김 전 의원의 젊은 시절부터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해 온 이 의원은 자타공인 김 전 의원의 정치적 후계자다. 그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도 김 전 의원의 권유 때문이었다.


학생운동-재야-민주당으로 이어진 행보는 물론, 도덕성과 진보를 앞세우는 정치성향 역시 김 전 의원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의원은 지난달 27일 김 전 의원 3주기 추도사에서 "(김 전 의원은) 정의롭지 않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고, 정직하지 않은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습니다. 멋 부리는 지도자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간직한 사람, 김근태의 길을 다시 가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리틀 김근태'란 별칭은 이 의원에겐 부담이자 짐이기도 하다. 김 전 의원의 정치적 후계자란 후광으로 이 자리까지 왔지만, 앞으로 '이인영 정치'를 하기 위해선 '김근태'란 이름은 넘어야 할 벽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가운데)이 지난 2011년 12월29일 저녁 위독한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김근태 전 의원을 면회했다. 이 의원은 김 전 의원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민주통합당 부산,경남 합동연설회를 포기하고 상경했다./사진=뉴스1제공


이런 이 의원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동안은 물주전자를 든 후보선수였지만 이제는 주전선수로 나서겠다"면서 당권도전에 나선 것. 그는 지난달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새정치연합 당 대표 경선에 나서고자 한다"며 2·8전당대회 출사표를 던졌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열린 예비경선(컷오프)에서 호남을 등에 업은 박주선, 영남 3선의 조경태 의원을 누르고, 문재인·박지원 의원과 함께 당대표 후보 최종 3인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당의 주도세력과 오래된 리더십의 교체를 추진하겠다"며 "친노와 비노를 뛰어넘어 새롭게 당을 통합하는 세력재편, 주도세력의 전면교체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프로필
이 의원은 당내 '486 그룹'의 대표 주자다. 그의 전자우편 주소는 liy1987@kuro.or.kr이다. 이름 이니셜 뒤에 붙은 1987년은 그만큼 그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1964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이 의원은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서 학생운동의 구심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으로 선출돼 1987년 6·10항쟁을 주도했다. 


이 의원은 대학 졸업 후에도 다른 학생운동 세력과 달리 재야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김근태 전 의원과 인연을 맺은 것도 1988년 '전국민주민족연합(전민련)'에서 활동을 하면서다. 이후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의 '젊은 피' 수혈 바람을 타고 정치권에 입문한다.


그의 정치행보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에서 당무위원과 청년위원장을 역임했던 그는 2002년 16대 총선 때 서울 구로갑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 이후 16대 대선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의 인터넷선거특별본부 기획위원장을 맡다 열린우리당에 합류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 속에 처음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18대 총선에서 또 다시 낙선했다.

총선 참패 후 주요 당직을 맡은 학생운동 출신 동료들과 달리 당 외곽에 머물렀다. 2010년 그의 고향인 충주에서 보궐선거가 열려 이 의원 차출론이 나왔지만, 그는 지역구인 "구로를 버릴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는 2010년 전당대회를 통해 당에 복귀했다. 2010년 전대에서 486단일후보로 부상하며 최고위원에 선출된 그는  '미래세력'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민주당에 '이인영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민주통합당 출범의 주역으로 첫 번째 통합경선에 참여, 최고위원에 당선된 그는 19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참고로 이 의원이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식혜다. 그 스스로 자기를 '식혜귀신'이라고 할 정도다. 이 의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땐 식혜 한 잔을 슬쩍 곁들이는 것은 어떨까.

△충북 충주(1964년) △충주 중·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언론학 석사 △고려대학교 20대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 △한국청년연합회(KYC) 지도위원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대위 인터넷선거특별본부 기획위원장 △17대 국회의원(서울 구로갑) △민주당 최고위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상임선거대책 본부장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19대 국회의원(서울 구로갑)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공동선거대책본부장 △19대 국회 하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2·8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사진=뉴스1제공


◇요주의!!
그 스스로 이젠 '주전선수가 되겠다'고 외치지만 '지금까지도 주전선수였다'는 주위의 평가도 있다. 486그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힘입어 정계에 입문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입문 당시 기대했던 '개혁'은 뒤로한 채 당내 정치적 지분 확장에만 골몰해왔다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486은 당 개혁 및 세대교체란 기대를 받고 정치권에 등장했다. 시대적으로 정치적 특혜를 받은 것"이라며 "그러나 이제껏 개혁적 이슈에 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당 개혁을 위해 특별히 한 일이 없다. 그들은 늘 당의 중심에서 당권파와 함께해왔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의원이 속한 486그룹 인사들은 1990년대 후반 정치권에 들어 온 후 재선 내지 3선의 경력을 쌓으며 주요 당직을 맡아왔다. 때문에 현재 당이 처한 위기에는 이들의 책임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지만 486그룹은 그동안 기존 리더십의 보조 역할만 해왔을 뿐, 주도적으로 당을 이끌어보진 못했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차범근, 박지성을 지나 손흥민이 한국 축구의 대를 이어가듯 이제 486들이 필드로 나가 몸을 사리지 않고 경기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한장의 사진

사진=이인영 의원실 제공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지만, 그해 12월 첫 직선에선 민주세력이 아닌 군부세력이 재집권한다. 당시 김대중-김영삼 후보가 힘을 합쳤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되진 않았을 것이란 후대의 평가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이 의원이 주도한 전대협은 두 후보의 단일화를 위해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한다. 하지만 결과는 전대협의 뜻과는 정반대로 흘렀다. 시간이 흘러 이 의원은 "어느 한 쪽을 지지하면 후보단일화를 앞당길 것이라 판단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사진은 전대협이 고려대학교에서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결정했던 행사의 모습이다.


◇대표법안 : 최저임금법
그는 이번 전대에서 '민생 진보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당 대표 공약으로도 '최저임금 1만원'을 제시했다.

그는 실제 최저임금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최저임금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재 이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의원은 "월급쟁이들의 실질소득을 올리고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겠다"며 "비정규직 비율을 30% 초반대로 끌어내리는 등 민생 진보로 정권탈환에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워드 : 현장
그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당초 새해를 맞아 1월 내내 민생현장투어를 떠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전대출마를 결심하면서 그 계획을 조금 뒤로 미뤘다.

이 의원은 전대 출마 일정으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서울 광화문 씨앤앰(C&M) 해고노동자들의 항의 농성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현장에는 을지로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이 같이 농성 중이기도 했다. 씨앤앰 사태는 농성 177일만인 지난달 30일 극적 타결됐다.


그의 현장행보는 지난 국감에서도 돋보였다. 환노위 국감을 준비 중이던 9월 이 의원은 연일 현장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야외로 나갔다. △하나은행-외환은행 조기통합 관련, 전국금융산업노조 외환은행지부 △부당해고 및 하청구조 문제 관련, 케이엔엘물류(KNL물류) △사내하청 및 산업재해 관련,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등을 방문했었다.



학생운동 시절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앞줄 오른쪽)과 우상호 의원(오른쪽에서 세번째)/사진=이인영 의원실 제공


◇그의 사람들 : '486'
그는 스스로 "계파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곁엔 '486'이란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특히 이 의원이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낼 때 부의장이었던 우상호 의원과 가깝다. 둘은 사학 라이벌인 고려대(이 의원)와 연세대(우 의원) 총학생회장 출신이기도 하다. 두 의원은 대학은 물론, 정계에 입문해서도 라이벌이자 동반자의 관계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두 의원은 현재 국회에서도 옆집 이웃 사이로 지내고 있다. 이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440호, 우 의원은 442호에 입주해 있다.(441호는 의원회관 구조상 옆집이 아닌 앞집이다.) 이번 전대에서도 우상호 의원실 보좌진 중 일부가 파견을 나가 이 의원의 선거를 돕고 있기도 하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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