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이종걸, '경제민주화 시즌2'로 네번째 도전

[the300] 이종걸 의원사용설명서

박용규 기자 l 2015.05.06 05:51

편집자주 7일 치러지는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the300은 이종걸·조정식·최재성 후보의 사용설명서를 소개합니다. 이전에 보도된 김동철·설훈 의원 사용설명서를 포함, 5인후보의 사용설명서 종합기사는 '런치리포트'로 묶어 소개합니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수도권 4선 중진이다. 경제·금융분야의 전문성도 있고 독립운동가의 손자로서 성장과정도 반듯하다. 여기에 사람까지 좋은데 '야성(野性)'이 너무 강해 주요 당직을 맡지 못한다고들 한다. 그래서 더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다.

이 의원은 4번째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지난 4일 '경제민주화 시즌2'를 제안했다. 2012년 대선과정에서 '경제민주화' 화두를 여당에 빼앗긴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정책정당의 면모를 갖춘 야당이 되기 위해 대안으로 연금개혁·조세개혁·보육개혁·청년일자리 확충·사회적 경제등 12가지의 세부과제를 내놨다. 

원내대표만 4수했던 그간의 경험이 배경이 됐을까. 이 의원의 경제민주화시즌2는 원내대표 출마용을 넘어서 진지하고 구체적이다. 이번에야 말로 당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하는 이 의원. 위기의 야당을 살릴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4선 국회의원, '존재감을 키워라']
야당 내에서 이 의원은 '선명성'이 강한 인사로 분류된다. 독립운동가의 자손, 인권변호사로의 그의 인생 전반부가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대여 강경파로 만든 배경이다.
 
수도권의 4선 국회의원이면 정치인으로서의 경쟁력을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4선 국회의원이면 상임위원장, 원내대표, 최고위원, 당대표를 포함한 당직등 웬만한 자리를 거쳤을 것 같지만 이 의원은 18대에 교육과학위원장 1년과 민주통합당 시절 최고위원을 한번 한 것 외에 뚜렷한 직책을 맡은 적이 없다.

당내에 뚜렷한 계파색이 없는 것이 이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존재감'의 첫번째 이유다. 서울 출생에 수도권 국회의원으로 정치입문도 특별한 지역적 배경을 업고 시작된게 아니었다. 

16대 총선 당시 소위 'DJP 연합공천'이 무산되면서 급하게 출마를 결정했고 할아버지 이회영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지금의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이후 내리 4선에 성공할 정도로 이 의원의 지역기반은 탄탄하다.

그러나 '4선'이 꼭 훈장만은 아니다. 또 뽑아달라고 하기에는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다. 이번 원내대표 출마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4선 국회의원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키워드 - '등록금 상한제', '장자연 리스트']
이 의원은 15년째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 웬만한 상임위는 다 섭렵했다. 그는 과거 공정거래위원회 하도급 자문위원을 한적 있다. 이 때의 경험으로 '공정거래법규집'을 출판하기도 했으며, 19대 국회 후반기에서는 정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무위에서 이 의원은 정부와 대기업에 '아픈' 법안을 주로 낸다. 최근에 낸 전자금융거래법은 금융사고발생시 금융회사에 책임을 지우는 법안이다. 작년에는 보험회사의 자본운용비율을 계산방식의 문제점을 개정하는 법안을 제출해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에서 금융당국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교육과학기술위원장 시절에는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하는 법안처리에 앞장서기도 했다. 법제사법위원장이 아닌 경우 상임위원장이 법안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이 의원은 당시 여당이 '취업후 학자금제도'를 강력하게 주장하자, 등록금 인상비율을 제한하는 '등록금상한제'를 동시에 통과시키며 대여 협상력을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장자연 리스트 폭로는 이 의원의 의정활동에서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다. 이 의원은 2009년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언론사주에 대한 연예인들의 성상납 내용을 담은 '장자연 리스트'를 폭로했다. 이후 조선일보는 이 의원에 명예훼손 등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잇달아 패소했고 2013년 2월에 4년 만에 관련 소송을 일괄 취하했다. 

[그의 과거는 - 민변간사, '우조교 사건']
1993년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일명, 우 조교 사건)은 서울대 화학과 우모 조교가 같은 교수인 신 모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최초의 성희롱 사건이다. 6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신 교수가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판결이 나왔다. 

성희롱도 명백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사건으로 당시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활동시절 이종걸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당시 이 사건의 공동변호인이었다. 이후 이 재판으로 1998년 여성운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의원의 변호사시절은 영화 '변호사'의 배우 송강호를 떠올리게 한다. 인권변호사시절의 이 의원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과 인연이 많았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건등에 변호사로 활동했었다. 

"시국사건은 힘들었다. 접견을 가면 군기잡는다고 의자부터 부수곤 했다. 당시 학생들은 고문당한 흔적이 몸에 선연했다. 영화 변호사와 똑같다. 어딘지도 몰라서 물어물어 가는데 일주일걸린다. 선임계도 당연히 없다. 옆에 배석한 경찰관에게 심리적으로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 (시국사건 피의자들의 얼굴에)화색이 든다"

이 의원은 이 시절에 대한 부채감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운동권'의 전통이 있다. 이분들에 비하면 나는 변호사로 뒤에서 지켜만 봤다"면서  "민변 시절을 생각하면 박상옥 대법관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을 몇번이고 그만두려고 했었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인권변호사의 고민이 담겨 있다.

[아! 할아버지, '우당 이회영']
이 의원은 신민회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이회영 선생은 일제시대 형제들 다섯명과 함께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났다. 6명의 형제들 중 다섯명이 독립운동중에 순국했고 대한민국 정부 초대 부통령이었던 이시영 선생만이 광복을 맞이했다.

유년시절 이 의원은 이회영 선생의 부인인 할머니 이은숙 여사와 함께 보냈다. 어려서는 할아버지였던 이회영 선생에 대해서 잘 몰랐다. 1970년 무렵 독립운동가의 아내로 살았던 삶을 기록한 '민족운동가 아내의 수기:서간도 서종기'를 집필하던 할머니의 모습만을 기억한다. 

그는 3선 국회의원이 된 후인 2010년 이회영 선생의 발자취를 쫓는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여행 다녀온 후 쓴 책 말미에 "할아버지와 우리 가문, 그리고 동료들의 삶의 흔적을 보고 나니, 이분들처럼 불의와는 타협하지 하는 칼날같은 정신을 유지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적었다. 

[그의 사람, 박원순]
이종걸 의원은 사법시험을 보고 변호사가 된 이유를 "사법개혁운동을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사법연수원에서 만난 2기수 선배인 박원순 서울시장는 1995년부터 법무법인 '나라'를 만들어 한솥밥을 먹었다. 이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박원순 변호사와 같이 노동법과 안기부법 등의 악법을 저지하기 위해 조그만 사무실에 모여 시작했는데 그 동안 갈수록 커지고 더 훌륭해졌다"고 말했다.
인권변호사 시절 그에겐 박 시장이 '큰 빽'이었다. 이 의원은 "차갑고 냉정하며 거스를수 없는 대선배, 삶의 멘토"로 박 시장을 회고했다.  이후 이 의원은 박 시장과 함께 참여연대를 만드는데도 힘을 보탰다.

[이한장의 사진]
이종걸 의원실 제공.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이자 이 이의원의 할머니인 이은숙 여사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대표법안 -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지난 2월 14일 이종걸 의원은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사고에서 금융사에 무과실 책임을 부여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외국에서는 전자금융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금융회사에 엄격하게 책임을 묻지만 우리는 특정된 기술적 유형외에는 제대로 보상을 받기 어렵다. 피해 보상도 이용자 쪽이 고의 중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전자금거래법 개정안은 금융사기 사고에 대해 금융사에 무과실 책임을 부여하고, 도난 분실에 의한 사고의 경우 법에 정해진 기일에 따라 금융사와 이용자가 합리적 범위내에서 책임을 분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의원은 "핀테크 산업 부흥을 위해 금융보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상황은 금융보안의 암흑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면서 "지금은 금융보안 분야가 '관치 보안'에서 '자율 보안'으로 전환되는 시기인데 이에 맞게 금융보안에 책임 문제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법안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요주의, '강성종걸'·'지각종걸']
이종걸 의원은 4선 국회의원이지만 당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고위원을 한번 하기는 했다. 3선때면 관례적으로 맞게되는 상임위원장도 겨우 1년 임기였다. 원내대표에도 4차례나 나섰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우윤근 현 원내대표와의 대결에서도 1차에서 승리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10여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특정 계파의 지지가 불분명한 상황에 대여 강성이미지와 협상능력에 대한 의문이 매번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강한 발언과 설화(舌禍)로 18대 국회에서 두번, 19대 국회에서도 한번 여당 의원들에 의해 징계안이 발의됐다.

이 의원이 회의 시간에 지각하는 것은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야당 관계자들은 국회의원들이 약속이 많아 회의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 의원의 지각은 좀 지나치다는 이야기다. 원내대표 출마를 앞두고 '정각 종걸'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프로필]
△서울 1종로(1957년생) △경기고-서울 법대 △사법시험 30회 △전 법무법인 나라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민주사회위를 위한 변호사 모임 기획간사 △사단법인 한국성폭력 상담소 이사 △노무현 대통령후보 시서실장차장 겸 수행실장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국회 일자리 만들기 특별위원회 위원장 △18대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장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경기 안양 만안구 4선 국회의원(16~19대)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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