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면 죽는다"…'악바리' 김용태의 생존법

[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김용태 새누리당 의원

김성휘 기자 l 2015.05.27 05:57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매달 둘째, 넷째주 토요일.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 농협사거리 강서농협 양천지점 건물이 들썩인다. 지역주민 누구나 말 못할 사연을 들고 오면 해결해주거나, 해결되지 않아도 가능한 데까지 노력하겠다는 모토를 내걸고 열리는 '민원의 날'이다.

2010년 7월, 19대 총선을 2년 앞두고 시작할 때만 해도 '선거용' 행사가 얼마나 가겠느냐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난 26일까지 무려 113회가 이어지면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접수된 민원은 총 5000건, 다녀간 민원인은 1만 명에 육박한다.
 
김의원의 사무실 벽에는 '될 때까지 한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와 가까웠던 고 김용태 전 의원(5선), 김영삼 대통령(YS) 비서실장·내무부장관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4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대는 흘러갔다. 김의원은 '새로운 김용태'의 시대를 꿈꾼다.

[그는…대한민국 미래 고민하는 대입 5수생]
1968년 대전에서 태어나 고교까지 대전을 떠나지 않았다. 대입 3수에 실패, 방위 복무 뒤 햇수로 따져 5수만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합격했다. 대학 시절 재야지도자 장기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 김성식 차명진 전 의원 등과 가까워졌다. 이들의 공통 키워드는 '민중당'이다.

졸업 후 디지털방송 솔루션업체 알티캐스트의 이사로 일했다. 이 경험은 정보기술(IT)과 제조업 현장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 기획위원,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귀국 후 중앙일보 기획위원으로 언론사에도 몸담았다. 2004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MB)이 대권을 모색할 무렵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추천으로 MB캠프에 합류했다. 정무기획, 연설문 작성에 참여했고 200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최연소 전문위원이 된다.

18대 총선출마를 꿈꾸던 그는 "나이가 어리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먼저 일하는 게 좋다"는 주변 권유를 물리친다. 자의반 타의반 그가 도전한 지역구는 서울의 야권 텃밭으로 꼽히는 양천구 을(신월동, 신정동 일대).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총선 기간 골목을 누비며 자전거 유세를 하고 있다./사진=김용태 의원실

'독하게' 뛰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에서 11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천을 받은 그는 현역의원인 김낙순 민주당 의원을 꺾고 당선된다. 양천에 연고가 없는 후보였지만 정권 초 'MB직계'라는 마케팅, 서울에 분 뉴타운 바람 등이 겹치면서 주민들의 기대를 받았다.

물론 그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선 뒤에도 악착같이 예산을 따내고 '민원의 날'을 정례화해 주민들과의 접촉을 넓혀갔다.


재선에 성공한 19대 총선 득표율은 49.4%. 2008년 18대 총선의 50.5%보다 득표율은 낮지만 득표수는 3만8000표에서 4만8800표로 1만표 늘었다.


19대 국회에선 4년간 정무위원회 소속이다.
요즘엔 국책연구소를 빠짐없이 만나는 데 열심이다. KDI(한국개발연구원), 조세연구원, 수학능력시험을 관리하는 교육과정평가원 등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관할하는 국책연구소 26곳을 모두 돌아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들이 총리실 금융위 공정위 권익위 보훈처 등 5대 소관기관에 금융감독원까지 들여다보는 데도 일이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1년에 한번 국정감사 때만 국책연구기관에 관심 갖는다는건 심하다.  연구기관들 만나면서 이들이 연구하는 주제들이 우리나라 현재와 미래에 얼마나 중심적 이슈인지 실감했다. 그 안에 대한민국이 들어있다."

그는 "해결방안까지는 더 고민해야겠다"면서도 △노동구조 이중화(양극화) △학교밖 청소년 △대학구조조정 △지역의료보험과 직장의료보험,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복지) 등을 한국의 당면과제로 제시했다. 그의 의원회관 사무실 화이트보드엔 '싸드'(THAAD)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 정무위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국제 현안 메모들을 볼 수 있다.
마라톤을 좋아한다. 족저근막염이 생겼는데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취미로 '농삿일'을 적는다. 국회 경내 한 켠에 텃밭 부지를 확보한 '국회 생생텃밭 모임'의 간사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사무실에서 100번째로 열린 '민원의 날' 행사에서 민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런 면이?…암 극복과 숨은 선행]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그렇다면 왼쪽 어깨도 (MRI) 찍어보자고 했다.…5일 지나 통보가 왔는데 이상했다. '팔꿈치 위쪽 팔뚝뼈 안에서 길이 7cm 정도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뼈에 구멍을 뚫고 종양조직을 꺼냈다. 악성 종양, 암이었다."('팩트', 2013)

2011년 6월의 일이다. 그해 7월, 지역구의 장마 침수현장에서 미끄러진 탓에 채 아물지 않은 수술부위가 부러졌다. 다시 찾아간 의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고. 암 발견도, 치료도 극적이어서 정치인생에 가장 드라마틱한 일로 꼽는다.

마침 당시 부산의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인 김지수씨(당시 부산외고 3학년) 어머니가 중국집을 하며 마련한 학자금을 날린 사연이 보도됐다. 김 의원은 "못난 에미가 너무 미안하다"는 어머니 말이 마음에 걸렸다. 부산으로 간 김 의원은 암진단 보험금으로 갖고 있던 돈을 이 가족에게 줬다. 그는 "암수술이 잘돼 완치되고 보니 보험금은 공돈이 됐다. 뜻 깊은 곳에 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수씨는 올해 대학 2학년이다.

[키워드① 민원의 날]
2010년 여름부터 2주에 한 차례 '민원의 날'을 열고 있다. 김 의원도 인정하듯 시작은 총선을 겨냥한 고육지책이었다.

그가 초선의원이던 2010년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김 의원은 전통적인 야당 텃밭에서 2008년 총선에 기적적으로 당선됐는데 수도권 민심이 여당에 안 좋으니 2012년 총선도 막막했다.

김 의원은 지인들과 주민을 두루 만나 대책을 고심했다. 그는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한가지라고 하죠. 총선 앞두고 그냥 앉아서 죽으나 민원 해결 못해 욕먹고 죽으나 한가지라는 생각이었다"고 돌이켰다.

그렇게 시작한 민원의 날은 재선 디딤돌이 된 것은 물론, 여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100회를 채운 지난해 11월10일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나란히 참석했다. (관련기사 ☞ 4년간 8천명…100번째 '민원의 날' 지킨 국회의원)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10월23일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오늘 국감 쉬는 날. 이제 빠마하는 것도 익숙해졌어요. 아침에 머리 만지는 것 쉬우니까 편하죠."라고 썼다./사진=김용태 의원

[키워드② "졸면 죽는다" 예산전쟁]
주민 애로를 해결하자면 예산이 든다. 국비든 지방비든 예산을 따내기 위한 노력을 연중 내내 전방위로 편다. 특히 연말 국회 예결특위 소위원회 때는 본인이 아니면 보좌관이라도 늘 회의장 안팎을 지킨다. 특히 예산철이면 그는 입버릇처럼 "졸면 죽는다"고 말한다.

서민경제와 양극화 문제가 그의 화두다. 그의 지역구도 서울의 대표적 '서민' 지역이다. 그렇게 서민경제를 중시하면서 경제정책에선 기업 입장만 대변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김 의원은 이렇게 반박한다.

"경제는 좋아지면 잘 사는 사람부터 잘살게 되고 경제가 나빠지면 서민부터 죽어나간다. 경제가 조금씩이라도 좋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게 전제되지 않고는 경제민주화건 분배정의건 다 무의미해진다."

[대표법안= 섀도보팅법]
상장회사 주주총회의 '섀도보팅'을 일괄 폐지하는 데 따른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조건부 유예를 적용한 법안.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그동안 소액주주 참석률이 저조해 주총에서 안건을 원활히 처리하지 못하는 문제의 대안으로 의결권 대리행사, 이른바 섀도보팅이 있었다. 그러나 섀도보팅 부작용이 제기되면서 2013년 이를 폐지하기로 법을 고쳤지만 상장기업 다수가 주총 성립을 위한 정족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 의원은 주주가 전자투표 등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조치한 기업에 대해 한시적으로 섀도보팅을 허용하는 내용의 재개정안 통과를 주도했다.

개인신용정보 유출방지법도 있다. 2014년 초 KB카드, 농협카드, 롯데카드 등에서 1억 명 넘는 고객의 개인신용정보가 유출됐다. 불법적인 개인신용정보 유출과 이용을 막기 위한 제도가 요구됐다. 김 의원이 제출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금융회사 등이 개인신용정보 이용시 대출상품 중개 모집인이 그 정보를 불법이용하는지 확인해야 하고 △불법신용정보로 얻은 이익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내용이다.

이밖에 민원의 날을 통해 주민 의견을 청취한 결과 보이스피싱 처벌, 보험 과장광고 규제, 국가유공자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사실과 현장에 기반한 정치, 이른바 '팩트(fact) 정치'다.

[연관검색어= 김영란법]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은 정부부처 중 국민권익위, 국회에선 정무위 소관이다. 김 의원은 법안 제출 당시부터 정무위 소속으로, 지난해부턴 여당 간사 겸 법안소위원장을 맡아 이 법을 직접 다뤘다. 김 의원은 논의 초기부터 법안에 허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원안통과를 바라는 여론이 강해 그의 신중론은 부각되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 국면에 들어서서야 그 내용을 꼼꼼히 뜯어보자는 기류가 생겼고 그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운데),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오른쪽)이 1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김용태 의원(왼쪽) 사무실에서 100번째로 열린 '민원의 날' 행사에 참석해 민원인들의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사람들= 김문수]
김 의원은 새누리당 내 흔치않은 '친(親)김문수'로 통한다.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92년 서울 동작갑 국회의원에 출마한 장기표 민중당 정책위의장의 선거를 도왔는데 그때 장 후보 캠프 사무장이 김문수 전 지사였다.

정치적 멘토로는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꼽는다. "두려워할 것도 믿을 것도 국민 뿐"이란 이 전 수석의 말을 좌우명 삼았다고 한다. 강만수 전 장관,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도 있다. 이들은 2004년 정치권에서 무명이던 그를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소개했다.

[이 한 장의 사진]
중학교 1학년 딸과 친해지기 어려워 말 못할(?) 고민 중. 김 의원은 "그동안 이 녀석한테 쏟은 애정과 물량공세는 셀 수 없을 정도이고 엄마에게 꾸중들을 때면 바로 방어막을 쳐준다"면서도 "하지만 나하고는 잘 안 놀아주고 말도 잘 안하려 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의 딸을 지게에 지고 웃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내밀었다. "사춘기 딸과 친해지는 방법 컨설팅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과 딸/사진=김용태 의원실


[요 주의!]
복잡한 사안도 간단하게 핵심을 짚어내는 화술이 강점. 지역주민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 반면 소신이 강한 편이고 각종 난관을 스스로 돌파해온 '자수성가형'이다보니 고집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김용태식 민원 정치는 악조건 가운데 지역구 의원으로 살아남기 수단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역주민의 '민원 해결사'로 남을 것인지는 숙제다. 국회의원이 지역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자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이에 "국민이 어디에 있나. 여의도? 바다 건너? 우리 동네에 있지 않은가"라며 "민원을 해결하려고 사방으로 뛰다보면 정치와 정책문제에 실력도 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을 보는 국민들 불신을 걷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정말로 국민들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프로필]
△충남 대전(47세) △18·19대 국회의원(서울 양천을) △대전 중앙초·한밭중·대전고 △서울대 정치학과 △美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객원연구원 △알티캐스트 이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기획위원 △중앙일보 전략기획실 기획위원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 △새누리당 국민소통위원회 위원장 △국회 정무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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