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호남·2030, '흑인'의 길 따를까

[the300]김장수 著 '하드볼 게임', 개혁보수 '중도정당' 출사표

김준형 기자 l 2015.10.01 11:16

편집자주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호남 사람들은 한국에선 흑인이나 마찬가지"
몇해 전, 경제단체장까지 역임한 호남출신의 한 원로 기업인이 동향사람들이 모인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맨 손으로 호남에서 몇 안되는 '변변한 기업'을 일구기까지 겪었던 뼈에 사무친 소외감을 토로한 것이었을 터. 그런데 앞 뒤 자르고 '호남사람=흑인'으로 말이 전해지면서 동향 사람들 사이에 오해를 샀다는 이야기를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기업인에게 전해 들었다.

 

박정희 정권 이후 정치적으로 소외돼 온 호남사람들은 (현재의)'야당' 쪽에 섰다. 김대중 정부가 정권교체를 이뤄낸 이후에도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피해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야권에서 신당 깃발을 드는 정치인들은 너나 없이 입에다 '호남 대접'을 달고 다닌다. 호남의 '야성'은 단지 지역적 경계에서만 비롯되는게 아니다. '보수, 산업화'의 형태로 나타난 독재정권에 맞서 호남은 '진보, 민주화'의 정치적 토대가 돼 왔다.

 

그런 호남이 지난해 7.30 전남 순천곡성 재보선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를 당선시켰다. 호남의 이정현을 떠올린 건, 추석 연휴 손에 잡은 책 '하드볼 게임(김장수 저)'의 한 대목에서였다(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선물로 돌린 책인데 정작 책 내용은 별로 알려지지 않고 정의원의 소개장 문구 "주류가 정권을 잡은 적이 없다"는 대목만 회자 됐었다.)

 


◇ 진보진영 '선거연합' 해체 진입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에서 '선거와 유권자의 투표행태'라는 독특한 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저자 김장수 박사는 책에서 1930년대 미국에서 흑인들이 민주당을 지지하기 시작한 것을 미국 정치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들었다.

 

지금은 '흑인=민주당'이 공식화 돼 있지만, 1930년대까지만 해도 흑인들은 1860년대 링컨이 노예들에게 '민주주의'를 '선물'한 이후 공화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세력이었다. 그랬던 흑인들이 1930년대 대공황과 뉴딜을 겪으면서 지주와 기업가들의 이해를 우선시한 공화당을 떠나 뉴딜을 주도한 민주당으로 말을 바꿔 탔다. '정치적 가치'에서 '경제적 가치'로 흑인들의 판단 기준이 바뀐 것이다.

 

양보와 타협 없이 대립과 갈등만 유발하는 '하드볼 폴리틱스'라는 개념에서 책 제목을 따 온 저자는 한국의 진보진영이 최근 패배를 거듭하며 지리멸렬하고 있는 이유도 이 대목에서 찾고 있다. 이른바 87년 체제 이후 '반민주' 깃발 아래 유지돼 온 진보진영의 선거연합이 해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진영 선거연합에 속해 있던 핵심적인 세 집단, 즉 '좌파기득권(저자에 따르면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 호남유권자, 2030세대(비정규직의 주축)  이 세 그룹의 이해관계는 더 이상 일치 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적대적일 수 있다는 게 연금개혁과 노동시장 개혁과정에서 단적으로 부각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얼마전 만난 문재인 대표는 "젊은 층이 보수화하고 있어 야당 지지기반이 무너지는것 아니냐"는 질문에 "젊은 층이 보수화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못하기 때문에 지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들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한 그들에게 진보는 의미가 없는 것이고, 젊은 층은 진보의 텃밭이 될 수 없는 것이다.

 

◇ 한국 대통령선거, '스윙보터'들의 정권 심판

 

문제는 유권자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늘 '양자대결'이라는 점이다.

각종 선거 경험이나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나라 유권자의 보수 중도 진보 비중을 40대 25대 35정도로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중도'라고 여기는 유권자도 선거에서는 늘 영호남 패권주의와 결합한 '진보냐 보수냐'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이다(영호남 유권자들조차도 영호남 패권주의의 희생자이다. 다른 당을 선택할 자유가 없어진 유권자들은 정치영향력과 표의 등가성에서 차별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들 중도층은 한국의 대통령선거를 좌우하는 '스윙보터(Swing Voter)'의 핵심이다. 선거 직전까지 어느쪽을 찍을지 고민하는 '부동층'과 달리, 스윙보터는 이념을 떠나 기존 정부에 대한 심판과 이를 토대로 한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이다.

 

유권자 투표행태 분석을 전공한 저자는 2002년 대선에서는 진보를 지지했다가 노무현 정부에 실망해 보수로 돌아서거나 기권한 스윙보터 651만명이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켰다고 '계산'해 낸다. 거꾸로 2007년 대선에서 보수였다가 이명박 정부에 실망해 2012년 대선에서 진보로 돌아선 스윙보터는 485만명으로 추산한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진보세력에서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고,  선거마다 이전 정권을 심판하는 스윙보터들에 의해 지형이 급변하는 '디스코 팡팡'이라는 게 저자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토끼'를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보수 진보 내의 진영론자들은 이들을 '종속변수'로 보고 타협을 모르는 극단의 정책으로 사회를 갈등과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 누가 대통령되든 '진영논리' 정치는 갈등과 분열 초래

 

저자는 '의외로' 다음 대선에선 진보진영이 승리할 걸로 전망 한다. 고령층 유권자가 더 많이 사라지고 2017년 340만명 정도의 유권자가 새로 진입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실적으로 현재 야권 대선주자의 지지율 합계가 50%에 육박하는 반면, 여권주자들은 모두 합쳐도 20%가 되지 않는 다는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금과 같은 진영논리에 입각한 양당체제에서는 '집토끼'를 지키기 위한 극단적 목소리에 휘둘리게 되고, 독단적 국정운영에 빠질 수 밖에 없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노무현 이명박정부는 물론 박근혜 정부도 이같은 진영논리의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정치가 이처럼 자기 진영에 속한 '기득권' 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하면서 기득권 세력에 속하지 못한 국민들은 대변할 정당을 찾지 못해 표류해 왔다. 이같은 정치의 실종은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는 재앙이다.
정치가 실종된 시장경제는 도박의 법칙이 지배하게 되고, 판돈(자본) 많은 자가 자기 배만 불리는 독점과 불공정 거래가 판치는 시장의 실패가 나타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양당정치 바꾸자" 개혁보수 출사표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지낸 이력이 보여주듯, 그는 '보수'쪽에 서 있다.  하지만 공정한 시장경제를 유지시키는 것이 정치 본연의 임무라고 보며, 기득권층의 부당한 '지대(rent)' 수탈을 막아야 한다는 관점은 진보세력과의 경계를 찾기 힘들다.

지금의 단임 대통령중심제와 양당체제는 보수와 진보 양극단의 '기득권'세력을 대변할뿐 정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중도층, 스윙보터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제3의 정당'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대통령중심제를 바꾸지 못한다면 양당체제라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가 유권자의 지형을 그대로 반영해 어느 정당도 단독 과반수를 넘지 못하는 40대 25대 35의 의석 배분으로 나타나면 제1당은 '중도정당'의 동의를 얻어야 원활한 국정운영을 할 수 있게 된다.

 

저자가 꿈꾸는 중도정당이 대변해야 할 계층은 이른바 '20·30'세대이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핵심적 세대이자, 자원 배분이 집중돼야 할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비정규직 등으로 표현되는 우리사회의 가장 힘든 세대인 이들이 지속적으로 양산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제3정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활동영역은 '연구'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 보인다. '하드볼 게임'의 내용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 공감대를 넓혀 가고 있는 개혁보수 세력과의 '싱크로율'이 거의 100%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당내 개혁보수 세력의 '출사표'를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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