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후사' 의원, '운칠복삼' 청년

[the300]

김준형 정치부장(부국장) l 2015.12.02 05:45



1일 머니투데이 편집국에 새 식구들이 들어왔다. 21기 신입 기자들이다. 대략 100대1의 경쟁을 뚫었다. 1000명이 넘는 지원자들은 이들과 길이 갈렸다. 면접까지 올라왔던 지원자들이 제출한 서류들을 폐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넘겨봤다. '이 친군 참 괜찮았는데, 이 친구는 어디 가든 좋은 기자 되겠지…'

 

면접관 노릇도 ‘감정노동’이다.

올해 면접 공통질문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이야기해달라”는 문항이 있었다. 괜한 질문이었다. 아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 응시자들 눈을 맞추는게 힘들었다. 올해 대학 들어가는 딸녀석이 몇 년 뒤면 저 맞은편에서 가슴졸이며, 죄지은 것도 없이 주눅들어 앉아 있을 생각이 자꾸 났다.

정희경 편집국장은 “혹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본인의 실력때문이 아니라 단지 인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입사시험 합격 여부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아니라 '運七福三'이 돼 버린지 오래다.

 

우리 아이들을 운칠복삼 세대로 만든 자책감 속에, 탈락한 이들과의 인연을 파쇄기로 밀어넣고, 밥벌이를 위해 머니투데이 더300 사무실이 있는 여의도로 향한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선거가 임박하면 자주 등장하는 말이 '선공후사(先公後私)' '선당후사(先黨後私)'이다. (샐러리맨에게는 "먼저 공 치고 회사일 생각하자, 당구 한게임 치고 회사 들어가자"로 통하기도 하지만) 여의도 화법으론 대개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명분을 부여하는데 동원되는 말이다. 

공천에 운명이 걸린 요즘 정치인들의 처지를 빗대자면 '일단 공천부터 받고, 당선이나 되고 나서 사리분별 따지자'로 해석하는게 제격이다. '선공후사'앞에 정치적 신념이나 명분,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은 설 자리가 없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제 목소리를 그나마 내던 의원들도 대부분 줄서기에 나서며 목소리를 거두어 담고 변조하기에 바쁘다. “정치란게 말이죠, 공천받아 당선되고 봐야겠더라고요” 술한잔 힘을 빌어 멋쩍게 웃는 한 초선의원의 말은 솔직하다 못해 애처롭다.

 

노인들에 비해 수도 적고, 투표율도 떨어져서 평소에도 정책우선순위에서는 뒷전이 되는 청년층. 우리 사회 모든 불합리의 최종 종착지인 청년들은 선거때면 더구나 정치인들의 안중에 놓일 여지가 없다.

 

"우선 내가 공천받고, 우리 식구들 챙겨야 하는데 '청년 비례대표' 나이는 35세가 아니라 45세가 될 수 밖에. 청년 취업 대책에 쓸돈은 없고, 젊은이들이 낳은 아이들 돌봐 줄 예산도 없지만, 종교인에게 세금 걷는 거는 선거 이후로 미뤄야지. 노인 1인당 복지예산이 130만원으로 청년 예산의 5배에 달한다지만, 이걸 어떻게 손대나.오르는 전월세 따라가느라 빚더미에 깔리는 젊은이들보다는, 집주인 노년층의 노후가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게 중요하고. 조직화되지 않은 비정규직보단 대기업·공무원 노조가 우선이지"

 

시급 6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딸은 “아빠가 존경스럽다”고 한다. 자기는 대학 졸업해도 제대로 월급 받는 일자리를 갖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이다.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식한테 존경스럽다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가 그저 '월급받는 것'이라니. 우리는 월급 받는 것만으로도 부모를 위대하게 봐 주는 경로(敬老)사회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가 만든 '5성운동'이 "모든 청년에 태블릿PC 제공"같은 황당한 공약으로 청년층의 지지를 얻어 2013년 2월 총선에서 제3당이 됐다.

코미디같은 포퓰리즘의 전형이지만 뒤집어 보면 방치되고 좌절한 청년세대가 '정치의 블루오션'이라는걸 먼저 간파한 셈이다.

우리라고 청년들이 '생계형 정치'를 단죄하고, 사회에 대한  '빅 엿'을 먹이지 말라는 법이 없다. 멀리 보는 진정한 생계형 정치인이라면, 정치의 위기도 가능성도 청년들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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