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청와대 밥 한번 못얻어 먹어보고

[the300]

김준형 기자 l 2016.01.01 12:14

편집자주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청와대 밥 한번 못얻어 먹어보고...

정치부장 자리를 떠나 산업1부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2014년 1월20일, 정치부장 발령을 받았는데, 어~ 하다 보니 2년 가까이 정치부장을 했습니다....
20여년 기자생활 대부분을 경제분야서 보냈고 정치부 경험이라곤 1992년 대통령선거때 정치부 파견 나가서 두어달 정주영 후보 따라다닌 것 밖에 없었습니다.


"정치는 너무 중요해서, 정치부 기자들에게 쓰게 해선 안된다"

'니가, 혹은 니들(머니투데이)이 정치를 알아?'라는 표정을 읽을 때마다 저는 농담 섞어 이렇게 이야기해왔습니다. 프랑스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가 1차 대전 당시 했던 "전쟁은 너무 중요해서, 장군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는 말의 표절입니다.


수십년동안 정무적 시각에서 권력을 좇고 정치공학을 계산하고, 정치인의 말 한마디를 특종으로 여겨온 기존 정치뉴스의 시각만으로는 사회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는게 저희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동료 선후배들과 "지금 필요한 정치뉴스가 뭘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이제 정치뉴스는 정쟁이 아니라 정책,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결론내렸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해 5월15일 정책에 특화된 정책뉴스 머니투데이 the300을 내놓았습니다.



"정치는 정책이다, 내 삶을 바꾸는 정치뉴스"
출범 당시나 지금이나, the300의 정체성을 규정한 이 캐치프레이즈가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의 모습을 '꽤나' 적절히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the300 출범 1년 7월여가 지난 지금,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고 '정책뉴스'의 정체성도 미완성입니다. 하지만 the300기자들은 웹진 형식의 '런치리포트'를 매일 한개씩 생산해내고, 의원사용설명서, 상임위동향, 막전막후속기록 같은 새 형식의 정치뉴스와 기획기사를 쏟아내며 '정책뉴스'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예의상 하는 말일수도 있지만^^) "새 길을 개척했다"는 말들을 해주시고, 다른 언론사들도 뒤따라 비슷한 시도를 하는걸 보면 방향은 제대로 잡은거 같습니다.
때로는 "머니투데이가 정치권에 기웃거리는게 무슨 속셈이냐, 너희들은 누구 편이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의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정책미디어라는 평가가 자리잡는거 같아 다행입니다.


욕먹기로는 언론과 1,2위를 다투는 국회와 '국개의원'들입니다. 하지만 정치의 수준은 딱 국민의 수준인데 누가 누굴 욕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우리 삶을 바꿔줄 정책을 고민하는 정치인들도 의외로(?) 많이 만났습니다. 이분들이 살아온 이야기, 품고 있는 생각들을 듣다보면 역시 '한 칼'들이 있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물론 '헌 칼' 한자루도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언젠가 그런 이야기들 전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요)


인사를 올리려다가 뜬금없이 청와대 밥 한끼 못먹어 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갤럭시 휴대폰 득템기'를 기사로 쓴 어느 덜 떨어진 기자처럼, 이런 말이 청와대에 흘러가서 혹시라도 공짜 밥 한끼 얻어먹을수 있을까 하고 기대하는건 아닙니다).


통상 대통령은 1년에 한번 정도 언론사 간부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곤 하는데, 제가 정치부장 하는 동안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세월호에 메르스에 초대형 사건들이 많았기 때문이긴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언제 조용한 날이 있었나요. 그럴수록 이러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어야 할텐데요.


물론 '대통령 앞에서 제대로 질문도 못하는 기레기 언론들 만나봤자 뭐하냐'는게 많은 분들의 생각일겁니다.
맞습니다. 위안부 할머니, 세월호 유가족, 야당 정치인, 청년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이런 분들이 우선 초청 순위로 한참 앞이죠.


듣기 좋은 이야기로 웃음짓게 만드는 '내 사람'보다, 편치 않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게 리더의 (쉽지 않은) 자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있는 시장에서 1등 하는 걸 목표로 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습니다. 미디어 분야에서도 새로운 뉴스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the300을 앞으로도 지켜봐주시고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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