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윤근 "원내대표, 투쟁과 타협 사이의 외로운 줄타기"

[the300][우윤근의 따뜻한 민주주의]프롤로그(2)

우윤근, 정리=유동주 기자 l 2016.01.13 06:00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the300은 정치인들의 삶에 녹아있는 정치관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이를 검증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나의 삶, 나의 정치'를 연재합니다. 두 번째 필자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윤근 의원입니다.


사진=우윤근 의원실 제공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경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작년 5월 4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와의 마지막 주례회동에서 이 구절을 빗대, 원내대표 재임 중 소회를 피력했다.

210일 동안의 원내대표 임기를 되돌아보면, 당 안팎의 작은 비난의 소리에도 자주 움츠려들었고, 협상 과정에서 철조망에 걸려 국수가닥이 된 바람처럼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진흙탕 같은 정치현실에 연연하지 않고 연꽃처럼 해보고 싶었으나, 나 역시 별 수 없는 약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한다.

당을 위해, 그리고 여·야 소통과 상생 정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는 했지만, 여러 모로 미흡했고, 그로 인한 상처도 컸다. 

이처럼 부족한 사람인데도, 그동안 믿어주고 성원해준 선배·동료 의원들께 그리고 협상파트너였던 전임 여당 대표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동안 원내대표직을 수행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임해왔다. 

첫째, 당내 소통과 단합을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선배·동료 의원 한 분 한 분이 헌법기관이기에, 어떤 현안이든지 사전에 의원들과 충분히 상의하거나 의견을 물었고, 특히 반대가 예상되는 분들에게는 사전에 충분히 의견 교환을 나누고 나서 의원총회를 통해 결정하거나 추인을 받고자 했다. 그리고 여·야 협상 결과는 지체 없이 보고했다.

둘째, 어떤 경우라도 여야 원내지도부의 대화 창구는 막힘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30여 차례의 주례회동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비공식 대화 채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셋째, 협상 파트너의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을 존중하고, 거기서부터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각자가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방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면 협상의 진전은 없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작은 합의가 쌓이고 쌓였을 때, 큰 현안도 합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주례회동을 할 때마다 가능하면 작은 합의라도 이루려고 애썼다.

작년 12월 한 언론에서 '여·야 원내대표 합의문 이행률 순위'를 발표했는데, 83.6%로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아마도 이런 작은 노력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가 아닌가 한다.

2014년 11월 7일 '4·16 세월호 참사 206일 만에 세월호특별법 통과' 그리고 2004년 12월 2일 '12년 만에 법정 기한 내 예산안 처리'라는 결과는, 이러한 나의 신념에 여·야 선배동료의원들께서 사전사후 의견 교환을 통하여 어려운 가운데서도 동의해주셨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발간된 '호세 무히카' 전(前)우루과이 대통령에 관한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2015년 3월 1일, 5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는데, 우루과이 국민은 물론 세계 언론이 극찬하고 있다. 퇴임할 때 지지율이 65%로, 취임 때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 책에 나온 한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민주주의의 강력한 이점은 사람들이 서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는, 진영 논리에 따라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집권을 하게 되면 그(대통령)는 권력을 갖게 된다.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위험해진다. 자기 자신 때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때문이다” 

진지하게 경청할 대목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현 상황과도 너무도 일치한다.
사실 이 부분이 원내대표를 하면서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정치의 근본적인 문제인 '대립과 갈등의 권력구조 문제'를 고쳐보고자 했으나, 그 첫 단추도 채우지 못했다. 

역사에는 가정(if)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나에게 한 번 더 원내대표로서의 임무가 주어진다면, 꼭 관철시키기도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정치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권력의 중심'에, '정치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004년 정치 입문 후 지난 12년 동안 원내수석부대표, 법사위 여야 간사·법사위원장, 정책위 의장, 원내대표를 하면서, 수많은 협상을 해왔다. 그러면서 확신하게 된 것이 하나 있다. 

한국정치의 근본문제는 취약한 권력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승자독식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2015년 2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강조했지만, 정치에서 '권력독점', 경제에서 '자본독점', 사회에서 '기회독점'이 고착화되어 있다. 

승자독식구조로 인해서 남·북 간에, 동·서 간에, 여·야 간에, 진보·보수 간에, 노·사 간에 갈등이 너무 크다. 갈등이 만연된 사회구조에서 국민통합이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첫째, 그 정점에 '제왕적 대통령제' 라는 '권력독점'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 개인의 생각이 결코 아니다. 정치를 오래하신 전직 국회의장 같은 원로·선배님들도 한결같이 같은 말씀을 하셨다.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이 정치개혁의 알파요 오메가"다.

우선, 경험론적으로 그렇다. 막강한 대통령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여당은 정부와 대통령의 대변인이 되어야 하고, 야당은 끊임없는 투쟁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쟁이 일상화된 나라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의 화두는 '물갈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교체하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오직 선거에 이기기 위한 정치만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구조를 바꾼다고 하지만, 눈앞에 닥친 총선이나 대선 승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세계 각국의 입법례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OECD 가입국 34개 국가 중에서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멕시코, 칠레, 한국, 프랑스 등 몇 나라뿐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치개혁은 사람교체보다는 권력구조개편에 모아져야 한다. 개헌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원내대표 재임시 여당 대표께서도 개헌에 총론적으로 동의하셨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 하의 여당 지도부의 한계 때문에, 아직까지도 국회 개헌특위조차 구성 못하고 있다.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국민의 개헌 추진 목소리도 높다. 시민사회단체, 학계,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개헌추진국민연대'가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반드시 구성하라고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이제 90여일 후면 20대 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이 치러지는데, 20대 국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국민의 요구를 받들어 국회에서 개헌을 공론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둘째, '자본독점'과 관련해, 여전히 우리 경제는 재벌·대기업 위주의 기형적인 구조다. 

2013년 기준으로, 49만 여개 상장회사 전체의 당기순이익 중 대기업 3개 법인의 이익이 무려 37.3%를 차지하고 있다. 몇몇 재벌기업만 돈을 벌어 쌓아두고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은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극히 비정상적인 자본독점 상황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 개혁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부에서 재계의 강력한 반대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자본독점구조의 해소야말로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원내대표직을 마치고,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위해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전자투표 의무화, 집중투표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한 「상법」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여ㆍ야가 머리를 맞대고 기업들과도 충분히 소통한 후, 상생과 균형 잡힌 경제성장,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상법」개정안을 서로 충분히 논의한 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셋째, '기회독점' 문제다. 

사회부문에서 기회독점 때문에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지고 있다. 또, 기회의 사다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능해야 할 교육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계층간·지역간 교육격차를 완화하고, 사회적 배려대상자들을 위한 '교육 기회의 사다리'를 만들 수 있도록 '교육복지법'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로 하여금 '국가교육복지종합계획'을 만들고, 교육격차 실태조사를 실시하며, 교육격차해소를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인데, 20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7개월 간 '투쟁과 타협 사이의 외로운 사다리'를 타는 심정으로 원내대표직을 대과(大過)없이 마치고 평의원으로 돌아온 지금, 나에게 주어진 과제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권력독점', '경제독점', '기회독점'의 승자독식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의정활동에 매진하는 것이리라.
여야 짜장면 회동/사진=우윤근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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