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19대 국회, 이 법만은"⑫-사용후핵연료 관리 특별법

[the300](종합)

우경희 임상연 박용규 기자,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 l 2016.02.17 09:15

편집자주 19대 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머니투데이 더300과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는 우리의 실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법안임에도 우선순위에 밀리거나 이해충돌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법안들을 선정 '19대국회, 이 법만은' 시리즈를 런치리포트로 기획합니다.

둘 곳 없는 폐핵연료, "머리에 이고 있을 판"

【도쿄=로이터/뉴시스】교도통신이 지난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1주년을 맞아 항공 촬영한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 원전. 당시 일본 동북부 해안에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해 약 1만6000명이 사망하고 약 3300명이 실종됐다. 일본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인도주의적, 경제적, 정치적 비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싼 연료' 수십년간 원자력을 수식했던 말이다. 하지만 원전 사용 38년만에 한국은 아주 비싼 대가를 비싸게 치르게 됐다.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처리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로 지난해 말까지 운영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중간저장시설을 지을 장소를 늦어도 2020년에 선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초고농축 방사능 폐기물인만큼 운반과 저장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법의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회기를 넘겨 20대 개원과 함께 논의에 들어가야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자칫 하면 폐연료봉을 머리에 이고 있어야 할 판이다. 

◇둘 곳 없는 핵연탄재, 2019년부터 포화=폐연료봉은 말하자면 타고 남은 연탄재다. 문제는 이 연탄재가 엄청난 방사능을 내뿜는다는 거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때 냉각수가 새나가면서 폐연료봉이 공기중에 드러나자 동아시아 일대가 패닉에 빠졌던 것은 사용후핵연료 보관이 얼마나 엄중한 문제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이 폐연료봉을 원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가뜩이나 원전에도 세모눈을 뜨는 국민들이 연료봉이 들락거리는 꼴을 두고 볼리가 없다. 자연스럽게 원전 내부 수조에 폐연료봉이 쌓였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포화시점은 어느새 왔다. 고리원전의 경우 올해가 포화시점이었다. 

정부는 조밀화(간격좁히기)로 가까스로 빈 자리를 냈다. 하지만 중수로는 2019년, 경수로는 2024년(한빛)부터 더 이상 보관할 곳이 없다. 밖으로 빼내거나 원전 안에 다른 수조를 파야 한다. 공론화위가 중간저장시설 설치를 제안하면서 특별법 제정을 요청한 배경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이동이나 보관에 있어 현행 원안법이나 방폐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일단 포화를 면한 후 따로 중간저장소를 만들어 폐연료봉을 옮긴다는 거다. 



◇저준위 장소선정에만 19년, 고준위 선정은?=문제는 중간저장소 건설이 희망사항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주에 최근 문을 연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은 방사능을 활용한 실험도구 등 위험도가 낮은 폐기물 처리장임에도 불구하고 장소를 고르는데만 19년이 걸렸다. 방사능 덩어리인 폐연료봉 처리장 장소 선정이 만만할리 없다. 

공론화위가 제안한 부지선정작업 개시 시점인 2020년도 너무 어중간하다는 지적이다. 현 정부에서 적극성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집권 후반부로 접어드는 박근혜정부가 폭발력이 큰 사안을 굳이 떠안으려 하겠냐는 거다. 

장소 선정작업에 들어가면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 다시 고조될 수밖에 없다. 지층 등에 대한 정밀한 검사를 통해 최적의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만약 단수의 장소가 최적지로 판단될 경우에는 대안도 없는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한 원전 전문가는 "지반 안정성이 높은 곳에는 이미 원전이 다 들어서 있다고 봐야 한다"며 "여기다 저장소까지 지으려 들면 '또 우리동네냐'는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급한대로 기존 원전에 수조를 더 파서 보관량을 늘려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공론화위도 이 내용을 아울러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지역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에너지정의행동 관계자는 "만약 정부가 원전 내 저장소를 늘리려 든다면 '또 국민과의 약속을 깼다'는 실망과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별법 제정도 산넘어 산=이 모든 작업의 전제인 특별법 제정에도 어려움이 산적했다. 정부도, 국회도 적극성을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채찍질을 해야 할 공론화위의 제안에도 고삐를 죌 수 있는 내용이 없다. 권고보고서에서 특별법을 언급한 내용도 대부분이 '용어를 명확화해야 한다'는 내용에 할애하는 등 절박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주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공론화위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특별법 제정에 소극적이다. 전임 장관의 총선출마로 인한 개각, 국회 회기 변경 등을 핑계로 차일피일 작업을 미뤘다. 

결국 19대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 정부의 법 제정 작업 기간을 감안하면 20대 회기에서도 내년이나 돼야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공론화위가 2020년을 시한으로 정한 중간저장소의 장소선정 작업이 병행돼야 함을 감안하면 빠듯한 시간이다. 




폐아스팔트에도 패닉, 고준위 처리 어쩌나

방사능 아스팔트 철거작업/사진=뉴스1


#2011년 11월. 노원구 월계동 주택가 도로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발견됐다. 구청은 아스팔트를 긁어내 구청 뒤 공영주차장에 임시 보관했다. 서울시와 노원구는 물론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지자체 선거에 영향을 줬으며, 지자체-정부 간 소송으로까지 번진 '방사능도로' 사건의 시작이었다. 

16일 노원구청에 따르면 문제가 됐던 아스팔트는 도로공사에 쓰인 철근 등 일부 수입 자재를 통해 방사능에 오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생되는 방사능 양은 적었지만 노원구는 일대 패닉에 빠졌다. 오염 아스팔트를 옮기라는 주민들의 강한 요구에 인근 한전연수원으로 옮기려던 노원구는 다시 연수원 인근 주민들의 반발에 계획을 취소해야 했다. 주민 간 갈등도 고조됐다. 

이 아스팔트는 결국 2014년 7월까지 무려 3년여를 노원구청 뒷마당에 머문 후에야 경주 방폐장으로 모두 이전됐다. 특별 제작된 10톤짜리 철제 케이스에 아스팔트를 담아 15대의 덤프트럭에 나눠 경주로 향했다. 노원구는 본진이 출발하기 전에 미리 트럭에 빈 케이스를 싣고 경주를 오가는 예행연습을 했을 정도로 운반에 신중을 기했다. 

당시 운반작업을 진행했던 한 노원구청 관계자는 "폐아스팔트에서 나온 방사능은 엑스레이 한번 찍는 것보다도 낮은 수준이었지만 주민이 후두암에 걸렸다는 루머가 퍼지는 등 불안감이 대단했다"며 "가임기의 기혼 구청 여직원들이 불안에 떨며 구청 외 지역으로 발령을 요구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노원구민 1000여명이 암검진을 받았다. 방폐장으로 옮기는 방법도 수차례 주민 공청회를 거쳐 의견을 수렴해 정했다. 방사능 물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는 원전 내 보관소가 포화상태에 다다른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처리 작업이 얼마나 큰 폭발력을 지닌 사안인지도 잘 보여준다. 방사능 아스팔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준위의 방사성 물질을 옮기고, 저장해야 하는 문제다. 

원전 내 보관소가 가득찼음에도 불구하고 폐연료봉을 원전 밖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문제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상 고준위 폐기물 운반이 금지돼 있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심리적 거부감이다. 방폐장 인근은 물론 폐기물이 이동하는 도로 인근 주민들도 모두 극렬 반대한다. 경주방폐장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폐기물을 해상으로 운송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2년간의 한시적 운영기간을 마치고 해선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관계자는 "결국 정부의 원전정책 자체에 대한 신뢰 회복이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의 원활한 처리를 위한 선결조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지선정만 19년, 경주 방폐장…'사회적 합의·신뢰' 우선

경주방폐장 인수저장건물


혐오시설, 특히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큰 원자력 관련시설은 지역주민의 동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간의 방폐장 건립 역사를 살펴보면 지역주민들의 사전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부지선정 무산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방폐장 건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첫 원전인 고리원전이 상업운전을 시작한 1978년에서 6년이 지난 1984년이었다. 제211차 원자력위원회에서 '방사상폐기물관리 기본원칙을 정했고 정부는 경북의 울진·영덕·영일 등 3개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했지만 사전조사 중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중단됐다.

1990년 정부는 '서해 과학연구단지'란 이름으로 안면도에 방폐장을 건설을 시도했다. 방폐장을 연구소로 위장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안면도 인근주민들은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등 크게 반발했고 그 결과 당시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이 사퇴하기도 했다.

이후 1993년 전남 장흥과 경남 고성, 1994년 경북 울진 등에도 방폐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모두 주민 반대로 좌절됐다. 결국 정부는 같은 해 말 거주자가 9명에 불과해 주민갈등 소지가 적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소재의 굴업도를 낙점하고 방폐장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굴업도는 지질조사 결과 방폐장 건설이 불가능한 '활성단층' 지역임이 밝혀져 이 계획마저도 취소된다.

가장 격렬한 갈등이 있었던 곳은 2003년 전라북도 부안이었다. 같은 해 부안지역의 위도 주민들이 80%의 주민 동의를 받아서 유치신청을 했다. 그러나 부안군의회가 이를 부결시켰고 부안군수가 의회 결정에 반하여 유치신청을 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이후 6개월간 찬반세력으로 나눠져 격한 갈등이 있었고 결국 부안 방폐장 건립도 이뤄지지 않았다.

부안사태 이후 정부는 2004년도에 중저준위 폐기물과 고준위폐기물(사용후 핵연료)를 처분장을 구분해서 건립하는 것으로 정책방향을 틀었다. 이듬해인 2005년 3월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방폐장 건립에 속도가 났고 최종적으로 경주가 선정됐다.

현재 경주에 건립돼 운영중인 방폐장은 방사능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저준위 폐기물만을 처분할 수 있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원전내 작업자가 사용한 장갑이나 피복 등이 대부분이다. 원전에서 발전을 위해서 사용되고 난 사용후 핵연료는 경주 방폐장에서는 처분할 수 없는 고준위 폐기물이다.

남은 과제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중저준위 폐기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성이 크다. 정부는 전면적인 '공론화' 방식을 택해 처분방식 및 유치지역 선정을 추진했다. 일방적인 정책추진으로 오랜기간 공전했던 중저준위 방폐장 건립 역사로 인한 학습효과였다.  

2013년 10월부터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발족시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관리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 결과 작년 6월 공론화위원회는 최종권고안을 마련했다. 2051년 처분장 운영을 목표로 2020년까지는 처분시설 부지 또는 이와 유사한 지역에 지하연구소를 건립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방폐장 입지 선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에 원자력발전소를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삼척과 영덕 등지에서도 여전히 지역주민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은 까닭이다. 

38년 가까이 상업운전의 경험이 있는 원전에 대해서도 불안감이 커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적잖은 상황에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건설에 정부가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기피시설된 원전 해외에선? "지역경제 활성화 수단"



현재 국내 25기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에서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는 연간 700만톤 가량에 달한다. 하지만 이를 저장할 수 있는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은 크게 부족한 상태로 올해부터 단계별로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을 늘리거나 새로운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재산권 침해 우려 등 지방자치단체와 국민들의 극심한 거부감 때문이다. 

여기엔 정부에 대한 불신도 한 몫 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핵폐기물 저장소를 지으려다 사단이 난 '안면도 사태'가 대표적이다. 국민은 정부를 불신하고, 정부는 주민 반대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면서 논의가 한발짝도 진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 프랑스, 핀란드등 주요 원전 선진국들도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을 놓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원전이 있는 한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아무도 외면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정부 주도하에 이해관계자들이 소통하고 이를 공론화하면서 중간저장, 재처리, 영구처분 등의 해법을 마련했고, 지금도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공론화를 이어가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기피·혐오시설로만 바라보지 않고 일자리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고민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이 같은 신뢰가 밑바탕이 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실례로 원전 58기를 운영하고 있는 프랑스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 마련에 대한 공론화 성공사례로 뽑힌다. 프랑스는 1980년대 후반 처분장 용지조사를 시작했지만 지역주민과 국민들의 반대로 좌절됐다. 

이에 프랑스 의회는 1991년 방사성폐기물관리연구법을 제정했다. 15년간 방사성폐기물 관리방안에 대한 연구결과를 지켜본 후 관련 정책을 결정키로 한 것.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가 2005년부터 공론화를 수행했고 이듬해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을 제정, 본격적인 처분장 건설에 나섰다. 국민합의와 신뢰구축을 위해 15년간 공을 들인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식은 국가마다 다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원전을 운영하는 나라는 31개국에 달하는데 이중 22개국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설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 또는 최종처분하기 전까지 일정기간(40~80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 22개국 중 미국과 캐나다 스웨덴 핀란드 독일 스페인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8개 나라는 최종처분 방식을, 프랑스와 일본, 러시아, 인도, 중국, 영국 6개 나라는 재처리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외에 우크라이나, 벨기에 등 8개국은 관망 상태로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만 파키스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네덜란드 이란 슬로베니아 9개 나라는 임시저장만 하고 있다. 국내외 사정 탓에 중간저장시설도 짓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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