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비례 홀수 여성몫에 남성배정…선거법 위반

[the300]15번 男 16번 女로 순번 바꿔…제재 구멍 감안 당선권 배치 노린 듯

심재현 기자 l 2016.03.23 19:22


더불어민주당이 23일 난항 끝에 비례대표 후보 최종명단을 발표했지만 여성 홀수 순번을 의무로 규정한 선거법을 위반하면서 법을 만드는 국회 스스로 법을 어겼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더민주는 이날 확정 발표한 비례대표 후보 36명의 명단에서 홀수 순번인 15번에 남성인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짝수 순번인 16번에 여성인 정은혜 전 더민주 상근부대변인을 배정했다. '여성-남성-여성' 순으로 배정된 순번을 두 후보에 한해 바꿔놓은 것.

선거법상 16번에 정 전 부대변인을 배정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홀수 순번인 15번에 이 전 대표를 배정한 것은 법 위반이다.

선거법(47조 3항)에 따르면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의 홀수 순번은 여성에게 배정해야만 한다. 2005년 8월 당시 여성 국회의원 확대를 위해 '비례대표 시·도의원 선거 후보를 추천할 때 여성후보를 추천해야 한다'는 조항을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확대 적용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홀수 순번 배정을 의무조항으로 추가했다.

문제는 더민주가 이런 의무조항을 어겨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여성후보 비율과 순번을 위반할 경우 후보 등록을 무효화하는 규정(선거법 52조 1항)이 있지만 비례대표 시·도의원 선거에 한해 적용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여성 후보를 홀수 순번에 배치하지 않으면 법 위반이 맞지만 등록무효 등의 제재 규정이 없어 후보 명단을 제출하는대로 등록해주고 있다"며 "여성의 대표성을 확대하기 위한 선거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더민주도 이 점을 인정한다. 더민주 관계자는 "여성 후보는 홀수, 남성 후보는 짝수 순번에 배치하는 게 맞다"면서도 "필요에 따라 홀수 순번에 남성을 넣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국회 스스로 언제든 법을 어길 수 있는 길을 만들어놨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5년 선거법 개정 때 여야 정치권이 국회의원 비례대표 여성 순번을 의무화하면서도 정작 이를 실질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규제조항은 시·도의원 선거에만 적용하도록 범위를 축소시켰다. 당초 이 등록무효 조항은 국회의원 선거와 시·도의원 선거를 가리지 않도록 돼 있었다.

더민주가 '15번 이수혁' 배정을 강행한 것은 사실상 비례대표 당선권을 15번선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실적으로 15번 이후로는 당선 가능성이 적다고 봤기 때문에 16번이어야 할 이 전 대표의 순번을 15번으로 당긴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지난 20일 비례대표 명단이 중앙위에 전달되기 전 비상대책위원회에서 15번까지를 당선권으로 잡았다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선 가능성을 계산해 이 전 대표의 순번을 배정했다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작정하고 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제1야당이 여성과 청년, 취약계층의 대표성을 반영한 비례대표의 취지를 정면에서 뒤집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남성 후보를 홀수에 배치했다가 뒤늦게 수정한 사례가 있다. 남성인 최봉홍 당시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 15번을, 여성인 이자스민 당시 후보를 배치했다가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자 순번을 수정했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