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국회의원 조훈현의 정석

[the300]

서정아 정치부장 l 2016.06.20 05:50

“원래 그렇다고는 해도 이해 못할 게 너무 많아요. 초선은 그냥 조용히 있기만 하는건가요”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국수(國手) 조훈현의 첫 관전평이다. 후배 바둑인들을 위해 바둑 보급등에 앞장서겠다는 마음으로 국회의원이 되기로 결심한 그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소속돼 각종 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바둑의 정석을 익히듯 국회의원으로서 법안 만들기부터 상임위원회 활동, 국회내 바둑을 좋아하는 의원모임인 기우회 모집까지 국회 정석(定石)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첫돌을 놓는 것부터 익히고 있는 그에게 국회의 모습은 혼란 그 자체다. 선수(選數)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문화부터 회의의 결정이 뒤집히는 건 다반사다.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비례의원들은 발언권도 좀체 없다.

‘국회개혁’, ‘일하는 국회’를 모든 정당이 외치지만, 국민들의 눈높이로 보면 지금 국회 모습은 여전히 실망스럽다. 관성에 익숙한 내부자의 눈으로 봐선 좀체 보기 힘든 부분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면 열등반 그 자체다.

30년 만에 국회 개원협상이 가장 빨리 성사됐다고 하지만, 상임위원회 배분 등에서 오합지졸을 다시 보여주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 의원들이 서로 일부 상임위원장직을 나눠 맡기 위해 2년으로 규정된 상임위원장 임기를 1년으로 줄이기도 했다. 이는 입법기관인 국회가 스스로 법을 위반한 것이다. 국회법에는 상임위원장의 임기를 2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문성과 일관된 정책 추진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총선 당시 전문성을 갖춘 각 분야 인재 확보에 나선 정당도 막상 원구성에 들어가자 전문가들을 내팽개쳤다. 벌써 다음 선거를 준비하면서 지역 민원 해결에 유리한 국토교통위원회 지원자가 쇄도하고, 이 과정에서 선수가 많은 의원들부터 자리를 차지했다. 국토교통부 공무원만 수십년 해온 이분야 전문가인 초선 의원은 보건복지위원회를 배정받았다. 상임위원장들도 해당 상임위 경험이 전무한 경우가 태반이다.

상시청문회법이 논란에 휩싸였을 때 청문회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 청문회랍시고 시간만 때우고 의원들 고성을 듣는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의견들이 많았다. 1년짜리 상임위원장 체제, 비전문가들만 득실한 이 상임위원회로 상시 청문회를 추진할 수나 있을까. 국회 상임위원회는 ‘배우고 공부하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들을 대신해 일을 하고,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할 자리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미국 정계에서는 나이 든 재선의원들이 너무 힘드니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한국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라고 설명했다.
여의도 국회생활을 오래 해온 관계자들은 그래도 예전보다 지금 국회가 훨씬 나아졌다고 말한다. 청와대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던 국회시절, 입법실적이라곤 전무하고 낮에는 고스톱과 사우나로 , 밤에는 폭탄주로 지냈던 고리짝 시절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그건 맞다. 그런데 국회를 벗어난 한국 사회는 그보다 몇 십 배는 더 진보했다.

조훈현 의원은 지난해 말 알파고와 유럽 바둑챔피언과의 대국을 봤을 때만 해도, ‘저 정도면 한번 해볼 만은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몇개월뒤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나타난 알파고는 상상초월의 모습이었다. 발전하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조의원이 생각한 속도의 발전은 시속 200km에서 500km, 빠르면 1000km 정도라 예상했다면 실제 나타난 모습은 2000km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국회와 우리 사회의 괴리감이 이정도로는 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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