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윤근 "개헌≠민생이라고? 시장도 권력도 독점이 문제"

[the300][머투초대석]

대담=서정아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리=심재현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l 2016.08.01 05:40

"시장경제만 독점폐해가 있는 게 아니다. 권력도 똑같다."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개헌론자다. 개헌을 주제로 한 책만 2권을 썼다. "오지랖이 넓다"”는 주변의 지적에도 20대 국회에서 가장 활발히 개헌론을 제기하는 이도 그다.

우 사무총장이 개헌에 매달리는 것은 12년에 걸친 의정활동의 산물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시절 '독점형 권력구조'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난 7월25일 국회에서 만난 그는 1시간여 동안 개헌에 대한 소회를 격정적으로 풀어냈다.

- 국회 사무총장이 되신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 얼마 전 '의회 민주주의 정신과 헌법정신'이란 특강을 했습니다. 다른 것보다 87년 체제가 어떤 의미를 갖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합니다. 우리 정치의 구조적 원인이 여당이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야당은 투쟁하는 데 있습니다. 국회가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데 늘 고기만 들어냅니다. 지금 같은 물에선 어떤 고기도 썩어요. 친구들 만나면 "네가 해봐, 너는 더 앞잡이 하고 싸우게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실제로 밖에서 국회를 비판한 사람들이 국회에 오면 똑같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이른바 개헌론인데 한참 불타다 잠시 수그러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찬성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개헌논의, 어떤 의미가 있나요.
▶ 대통령이 결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나라, 이것 때문에 더 개헌이 필요합니다. 물론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비중이 가장 큽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모든 걸 좌지우지해선 안됩니다. 일도양단식으로 된다, 안된다, 이렇게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고, 된다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게 다 토론이 필요합니다. 국회가, 특히 여당이 토론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 프랑스는 헌법을 50번도 더 바꿨습니다. 헌법 개정 자체가 아주 쉽습니다. 우리는 9번의 개헌사가 권력싸움 때문에 빚어진 비정상적인 때가 많았습니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개헌을 아주 어렵게 해놨습니다. 개헌이 너무 어려워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헌법이 아니라 '헌 법'입니다.

- 어떤 게 문제인가요.
▶ 기본권 조항만 해도 너무 낡았습니다. 우리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돼 있습니다.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는데 인간의 권리로 다 바꿔야 합니다. 기본권은 국가가 시혜적으로 주는 권리가 아니잖나요. 국민학교도 왜 이름을 바꿨나요. 독일헌법 1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불가침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권력제도, 지방분권 등도 다뤄야 합니다. 지방자치는 헌법에 조항 하나 두고 나머지를 하위법령에 맡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이 시대 개헌의 핵심은 뭔가요.
▶ 쉽게 말하면 승자독식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한 표라도 많으면 국회의원이 되고 한 표라도 많으면 대통령이 돼서 마음대로 독점해 버립니다. 이런 독점구조가 치명적이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경제도 독점이 주는 폐해가 크지 않습니까. 선거는 민주주의로 하지만 선거결과가 독점을 초래합니다. 과점이라도 돼야 소통하지 권력을 잡았는데 소통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치명적인 구조입니다.


- 미국도 비슷하지 않나요.
▶ 오해입니다. 이런 입법례가 거의 없습니다. 많은 분이 미국 대통령제를 말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피상적인 관찰입니다. 미국은 연방 분권국가입니다. 주마다 법이 달라요. 미국의 대통령제를 수입했지만 미국과 베이스가 다른 겁니다. OECD 34개국 중 우리 같은 권력구조는 멕시코 정도입니다. 프랑스는 이원집정제라고 하지만 거의 내각제 형태입니다. 87년 이후 적어도 국민들이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국민의 절반은 반대한 대통령들이었습니다.

- 국민들은 개헌에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요.
▶ 개헌은 사실 민생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왜 국회가 이렇게 싸우는지, 그 원인을 치유해야 합니다. 사람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부족해서, 국회의원이 부족해서라는데 30년 동안 해보지 않았습니까.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이게 우리 삶에 직결된 겁니다.

- 그걸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 87년 체제를 보죠. 권력독점, 자본독점, 기회독점체제입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지 않나요. 권력을 쥔 자들 마음대로, 돈을 가진 자들 마음대로입니다. 이 사람들이 기회까지도 독점합니다. 우리 삶에 치명적인 폐해입니다. 근본적인 장애요소입니다. 이 체제로 가면 아무리 국회의원을 갈아본들, 대통령을 갈아본들 본질적으로는 변하기 어렵습니다.

- 개헌 시점을 내년 4월 재·보궐선거로 얘기하셨는데요.
▶ 내년에 대선후보들이 나타나서 레이스를 시작하면 말릴 수 없습니다. 호랑이 등에 탄 사람이 돼서 탈환전, 또 방어전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 최근 새누리당 공천 논란 등을 보면 정당정치의 문제에는 또다른 해법이 필요할 것같습니다.
▶ 공천제도도 바꿔야 합니다. 우리 같은 만성후유증은 선진국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공천 때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이건 반드시 손을 봐야 합니다. 안 되면 법으로라도 해야 합니다.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 새민련 원내대표 시절 여야 합의로 '김영란법' 처리를 이끄셨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이후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요.
▶ 우리나라가 그동안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게 있으니까 제대로 해보자는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서 만들어낸 법입니다. 부작용이 예상돼서 1년6개월 준비기간을 뒀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시행은 해야 합니다. 시행해보고 문제가 많으면 개정을 검토해야지 시행도 안 하고 개정부터 하는 것은 안 됩니다.

-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 불체포특권은 그동안 여러 부작용이 있지 않았습니까.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72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데 그 시간만 때우면 넘어가는 문제는 고쳐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의원들의 세비가 많다거나 지원이 많다면 그런 부분도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 합니다.

- 보좌관 채용은 아예 기준이 없지 않나요.
▶ 미국은 4촌 이내 친인척 채용이 금지사항입니다. 일본은 친인척이면 급여를 안줍니다. 우리는 그런 규정 자체가 없습니다.

- 구체안이 나왔나요.
▶ 보좌관 채용 관련안은 8월 초에 발표합니다. 국회 내부 규칙으로 만들어서 실질적으로 제재할 겁니다.

- 여소야대 3당체제 국회가 되면서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 여야가 입장이 바뀌면 기존 생각이 바뀐다는 게 우리 정치의 문제입니다. 선진화법 이전에는 소위 직권상정(국회의장의 심사기일 지정)을 둘러싸고 육탄전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시간이 걸리지만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했다고 봅니다. 원내대표를 할 때도 선진화법이 있어서 좀더 원만히 타협하고 협상하는 데 유리했습니다.

- 그런 협상 때문에 19대 국회 때 법안 주고받기가 유독 많았습니다.
▶ 그게 운용의 묘입니다. 만일 과거로 돌아가면 또 육탄전입니다. 법을 조금 손 볼 필요는 있습니다. 예산안이 기한만 차면 넘어간다든가 법률안은 너무 시간이 걸리는 부분은 손을 봐야 합니다.

-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국회법 개정안으로 임기 마지막까지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습니다.
▶ '정의화안'은 상당히 합리적인 안이었습니다. 상시청문회를 여야 합의로 여는 건데 정부가 너무 과장해서 대응한 게 아닌가 합니다. 상임위 청문회를 언제든 열 수 있다는 거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 상임위 요일제 등 국회 개혁안은 어떤가요.
▶ 충분히 검토할 만합니다. 20대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도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봅니다.

- 국회의 세종시 이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국민 의사를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 이전이 안되면 국회 분원이라도 고려할 만합니다.

- 어떤 지도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가 누군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똑똑하니까'는 이제 통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대통령도 그래야 할 때고 정당의 지도자도, 국회 지도자도 그래야 할 때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발전하지 않는 느낌이 있습니다.
▶ 우리 정치가 왜 격렬한가, 승자와 패자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없으면 격렬하지 않습니다. 여당과 야당의 차이가 크고 선거에서 이긴 자와 진 자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지지 않으려고 온갖 몸부림을 치는 겁니다. 독점현상입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습니다. 선거에선 이겨야 하고 대입에선 좋은 대학에 합격해야 합니다. 그래서 통합이 어렵습니다. 정치지도자들부터 그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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