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김영란법을 기다려요"

[the300]

서정아 정치부장 l 2016.08.19 05:50
"김영란법이 저에겐 기회가 될 것 같아요”

40대 중반의 여성 기업 홍보· 마켓팅  담당자가 점심 식사 중 이런 얘길 했다. 남성 중심 조직에서 20년간 이런저런 접대문화를 해왔던 그다. 업무상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술자리, 골프 등의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접대문화가 간소화되면 본인에게는 늘그막(?)에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김영란 법’으로 통칭 되는 청탁금지법이 어느 자리에서나 화제다. 머니투데이 더300·더L도 다양한 사례에 어떻게 이 법이 적용되는지 시리즈로 내보내고 있다. 그런데 법을 들여다볼수록 어렵다. 문제투성이다. ‘입원날짜 좀 당겨달라’는 부탁을 병원 지인을 통해 했을 때, 국립병원이면 처벌, 민간병원이면 처벌받지 않는다. 또 민간병원이더라도 청탁을 들어준 의사가 교수를 겸하면 처벌받는다. 병원의 지인을 통하지 않고, 환자가 직접 부탁하면 그 환자는 문제 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가 수천 수만 가지가 될 것이다. 매번 어떤 행위를 할 때마다 헷갈린다고 하면, 이 법은 문제가 많은 것이다. 법은 누구나 알기 쉽고 지킬 수 있도록 명료해야 한다.

그런데 이 법의 내용을  뜯어 보기도 전에 “밥값 3 만원이면 격조를 지킬 수 없다” “5만원에 한우 갈비세트는 불가능하다” “고급 식당들은 다 죽는다”만 논란이 됐다. 청탁금지법의 시행령에서 규정하는 선물 가액이 경직돼 시행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 언론이 불만을 제기 할수록  국민들의 분노만 샀다. 핀트가 어긋났다. 

대다수 국민들은 평생 한우 갈비를 명절 선물로 받아보기 힘들다. 한 끼 식사의 격조를 논하기엔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는 청년들이 너무 많다.  이 같은 국민 여론에 결국 선물 가액 시행령은 원안대로 가게 됐다.

다음 달부터 청탁금지법이 시행에 들어가면 우리 사회는 한차례 혼란을 겪을 전망이다. 많은 이들이 예상하듯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검찰이 이를 표적수사에 악용할 가능성도 크다. 유통, 식당, 농축산 시장도 한동안 위축될 것이다. 

결국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 법은 일대 수정이 필요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 공공기관, 공직 유관 단체들을 구분해서 부정청탁과 금품수수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처벌의 강도를 달리 해야 한다. 즉 현재의 포괄입법에서 개별입법으로 전환돼야 한다. 

다만 이쯤에서 청탁금지법으로 유발될 각종 ‘위축현상’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고민해봐야 한다. 관행적으로 제공 받았던 서비스들, 인맥을 활용해 해왔던 민원들에 대해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 시시때때로 나오는 뉴스 속 “내가 누군지 아느냐”로 시작되는 시비들이 있다.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기자 들이 자주 등장한다. ‘당신이 누군지 알아도’ 잘못된 행위는 하지 않도록, 특혜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선진문화다. 

농축산업계나 각종 음식점들도 마찬가지다. 고급 선물과 고급 메뉴는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국민 세금이나 기업의 법인카드로만 존재할 수 있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다. 시장을 재편해야 한다. 

중국에 있을 때 일화다. 중추절이 되면 중국인들은 월병을 선물한다. 공직자나 유력자 집에는 이 월병세트 수십개가 선물로 들어온다. 그래서 포장을 뜯지도 않고 다른 집으로 다시 선물한다. 그중 선물상자 안에 현찰이 들어간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월병이 돌고 도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시진핑 주석이 집권하면서 반부패정책을 크게 내세우자 호화월병은 점차 사라지고 애초 서민들이 즐겨찾던 월병이 남았다. 2014년 중국 인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목재, 철재포장의 호화제품이 줄어든 반면 대중적인 종이포장이 늘었다. 또 이전엔 4개 월병세트가 300위안대였으나  6개들이 세트가 100위안대로 내렸다. 물론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또 다를 것이다. 음성적인 방식의 또 다른 월병이 생겨났을 수 있지만, 대놓고 자가용으로 월병을 실어나르는 꼴불견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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