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국내각, 정치 용어일뿐 법적 근거도 전례도 없어

[the300][런치리포트-거국내각 동상이몽]③靑·여당, 책임총리제 vs 야당, 朴 2선후퇴론

김성휘 기자 l 2016.11.01 05:32
대통령 임기말 반복된 거국내각 요구/머니투데이 더300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정부가 최대위기에 몰리면서 우리나라 헌정사에 찾아보기 힘든 거국중립내각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여당이 앞장서 거국내각을 요구하고, 야당에도 공감대가 있다. 다만 대통령제의 특성상 엄밀한 의미의 거국내각은 실현이 매우 어렵다. 무엇이 거국내각인지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도 크다.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거국내각은 정치적 용어일 뿐 별다른 법적 근거는 없다. 대통령이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내각을 임명하고 행정부의 책임을 지는 대통령제의 구조와 상충된다. 과거 논의에 비춰보면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대통령이 당적을 버리고 여야가 함께 내각을 구성해야 거국내각으로 부를 수 있다는 정도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현재 논의엔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모든 직무를 거국내각에 맡겨야 한다는 조건도 추가된다.

여야가 거국내각 제안을 놓고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벌이는 건 이런 이유다. 여야가 각자 그리는 차기 내각과 권력구조의 형태는 해석에 따라 거국내각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야권 인사를 국무총리로 세우는 방안을 핵심으로 본다.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은 답안지에 없다. 거국내각을 표방하되 실제론 총리 권한을 강화하는 책임총리제 정도다. 국민적 비난여론을 수용하면서 국정은 어느 정도 여권이 끌고갈 수 있는 방안이다. 야당이 제안한 형태의 거국내각은 수용하지 않은 셈이다.

야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당발 거국내각을 국면전환용으로 규정했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도 자신이 앞서 제안한 거국내각에 대해 대통령의 2선 후퇴가 전제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이 새 총리를 임명하고 여전히 실권을 행사하는 거국내각은 '짝퉁'이란 것이다.

야권에서 거국내각을 줄기차게 요구한 민병두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대통령의 직무가 사실상 정지되고 내각과 그 총리가 전권을 갖는 것이 진정한 거국내각일 것"이라며 "야당에 총리 추천을 제안해 거국내각으로 포장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탈당과 여야의 내각 참여란 조건에 꼭 맞는 사례는 국내에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나마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2년이 꽤 근접했다. 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해 관권 선거 의혹 등으로 위기에 빠졌다. 여당 대선후보이던 김영삼 민주자유당 총재와 갈등도 커졌다. 노 대통령은 민자당 명예총재직을 던지고 탈당했다. 이어 정원식 국무총리가 물러나고 10월 현승종 당시 한림대 총장이 신임 총리가 됐다. 물론 실질적 거국내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이밖에 역대 대통령 임기말의 지지도 하락, 정치적 위기가 올 때마다 거국내각 논의가 반복됐다. 김대중 대통령(DJ)이 임기말 아들비리 등으로 리더십이 무너지자 거국내각이 거론됐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 등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도 임기말 대연정, 거국내각을 각각 제안하거나 검토했지만 실패했다.

앞서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7월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 조봉암을 농림부장관으로 포함했다. 1960년 4·19 혁명 후 자유당 정부가 무너지자 허정을 수반으로 한 과도내각이 들어섰다. 둘 다 거국내각으로 보긴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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