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별' 새누리 친박-비박, '이혼도장' 못찍는 이유

[the300]보수정당 정통성·300만 당원·565억 재산…양 계파 '농성전' 길어질 듯

배소진 기자 l 2016.12.13 16:43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과 통합 보수 연합'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혁신과 통합 보수 연합' 공동대표는 정갑윤 의원과 이인제 전 의원,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맡았다. 이날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은 창립 선언문을 통해 "위기 앞에 국민과 당을 분열시키는 배신의 정치, 분열의 행태를 타파하고 새누리당의 변화와 혁신을 통해 재창당 수준의 완전히 새로운 보수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사진=뉴스1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새누리당이 '심리적' 분당을 훌쩍 뛰어넘어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탄핵 찬반을 놓고 진작부터 '한 지붕 두 가족'이었던 주류 친박(친박근혜)계와 비주류(비박·비박근혜)계는 탄핵 이후 당 주도권 싸움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분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친박과 비박 양 계파 모두 탈당은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당장 분당보다는 당내 갈등만 장기화되며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해석이 다수다. 

13일 새누리당은 극명하게 두동강이 났다. 주류 친박계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구당(救黨)모임'으로 정의한 '혁신과통합보수연합' 발족식을 개최했다. 당내 비주류 세력의 '비상시국위원회' 조직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다. 비주류는 이보다 앞서 오전 '비상시국위원회'를 해체하고 외연을 확장한 새 모임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새누리당'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상대편의 핵심 인물들을 '주적'으로 공언, 서로 당을 떠나라고 등을 떼밀 뿐이다.

가장 큰 이유는 보수정당의 계승이라는 '정통성' 문제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새누리당은 그간 야당을 향해 '분열의 역사'라며 단일 보수정당임을 자랑해왔다. 지난 11일 비상시국위원회 대변인격인 황영철 의원이 친박의 모임을 '구당파'로, 비주류를 '탈당파'로 명명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친박이 '당을 구한다'는 개념을 선점하고 나선 상황에서 비주류가 마치 당을 버리고 떠나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주게 된 것을 우려한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여당 의원들은 탈당이라는 개념 자체에 익숙치 않다"고 말했다. 이날 비주류 좌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가 탈당 및 신당 창당을 언급했지만 그의 경우 과거 탈당 후 '친박무소속연대'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란 해석이다. 대다수 의원들은 선뜻 따라나서는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302만명(지난해 기준)에 달하는 당원이 가진 힘과 조직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중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도 38만명(12.5%)에 육박한다. 한 비주류 의원실 관계자는 "나가면 얼어죽는단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며 "전통적으로 여당세가 강한 지역은 되려 의원이 당원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돈도 조직도 없이 광야로 나갈 수는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탄핵을 둘러싸고도 '촛불민심'은 탄핵을 요구했지만 체감하는 '당원민심'은 또 달랐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저 4%까지 떨어져도 탄핵에 찬성하는 의견은 78% 수준에 머물렀다는 데에서도 '온도차'를 찾는다.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공개적으로 탄핵에 찬성하고 싶어도 당장 피부로 와닿는 지지층에서 '탄핵까지는 아니다'고 거부감을 보이면 의원들도 의기소침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선도탈당을 한 김용태 의원을 두고 "지역구 자체가 '야당 텃밭'인 특수한 경우"라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서울 수도권 의원들 상당수가 고민이 깊을 것이다. 하지만 탈당해서 지지율이 오르겠나. 어차피 촛불민심은 우리 지지층이 아니지 않나"고 주장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새누리 탈당·신당 창당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며 “여론수렴 중”이라고 밝혔다. 또 “친박계는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가 아닌 정치적 노예들”이라고 규정하고 현 새누리당은 ‘박근혜 사당’이라고 봤다. 이어 “신 보수와 중도가 손잡고 좌파 집권을 막고 국가 재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12.1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실상 '결별'을 한 양 계파가 '이혼 도장'을 찍지 못하는 이유를 재산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새누리당을 떠나는 쪽은 당원과 조직은 물론 재산도 없이 '맨 땅'에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새누리당이 신고한 재산은 565억4700여만원이다. 중앙당과 시도당, 정책연구소의 재산총액으로, 토지 165억6300만원, 건물 78억6300만원, 현금 및 예금 155억원 가량 등이다. 여기에 올해만 160억원에 달하는 국고보조금도 새누리당에 남는 쪽의 몫이다.

이같은 재산다툼 논란을 의식한 비주류계는 13일 "탈당·분당을 결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당 재산 싸움이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데 비상시국회의는 현재 새누리 당 재산의 단 1원도 가질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병국 의원은 지난 12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당 재산의 국고귀속을) 전제하지 않고 어떻게 청산이 되겠냐. 만약 청산을 하자고 한다면 당의 자산은 다 포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무성 전 대표 역시 "재벌 등쳐서 형성한 돈"이라며 국고환수를 촉구했다. 이같은 주장은 비주류가 당권을 잡았을 경우 정당 해산절차와 신당 창당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비례대표 초선의원들의 거취 문제도 '분당'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탈당이 곧 의원직 상실로 연결되는 비례대표 의원들 입장에서는 좋든 싫든 당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초선의원 46명 중 비례대표는 17명이다. 지역구 의원들 대부분이 '친박'으로 분류되고 비례대표 의원들 역시 친박의 지원을 등에 업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현아·김종석 의원 등 일부가 '탈박' 대열에 동참했으나 비주류계 지역구 의원들보다는 행보가 자유롭지 못하다. 만일 비주류계 신당이 창당될 경우 이들이 당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은 지도부에서 '출당'을 시켜주는 것 뿐이다. 

한 당직자는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비주류에서조차 '재창당에 준하는 조치'라는 애매한 말이 나오는 것도 이를 잘 알기 때문"이라며 '분당' 논란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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