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지배구조 손보자”상법 개정안

[the300]종합

김성휘 배소진 우경희 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l 2017.01.05 09:30
“지배구조 손보자”상법 개정안



기업 최대주주의 지배력 행사를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경영참여를 상대적으로 확대하려는 법 개정안이 재계는 물론 정치권 뜨거운 감자가 됐다. 4일 현재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감사위원을 일반 이사와 분리선출하고 이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며,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에 대한 소송제기를 해당 자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시비, 롯데그룹 '형제의 난' 등을 지배구조가 후진적이어서 생기는 일로 보고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취지다. 건전한 지배구조를 만들자는 방안이지만 일정 지분을 확보한 투기자본이 경영참여나 경영권 장악을 시도할 때 최대주주가 이를 방어할 수 없어진다는 우려도 높다. 20대국회 들어 법개정을 지지하는 야권에 힘이 쏠리면서 국회를 바라보는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감사위원 선임때 대주주 '의결권' 제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 등 야권 '경제통'들이 지난 8월 상법 개정안을 각각 제출했다. 핵심은 5가지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대표소송제도 개선 △일반이사-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강화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이다.

다중대표소송을 국내에 도입하고, 대표소송의 경우 제기 요건을 낮춰 보다 쉽게 주주가 이사의 경영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데, 일괄 선출한 이사 가운데 감사위원을 정하는 현재 방식과 달리 감사위원과 일반 이사를 각각 선출하는 것이다. 집중투표, 전자투표 실시를 활성화하는 내용도 있다.

대표소송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사 등에게 회사가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 주주가 그 이사 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대표소송을 내면 다중대표소송이다. 집중투표제는 복수의 이사 선출시 주주가 보유한 주식수보다 많은 의결권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주총에서 이사를 3명 뽑을 때 100주를 가진 주주라면 그 3배인 300표를 투표할 수 있고, 특정 후보에게 300표를 몰아줄 수 있다. 전자투표는 주주가 주총에 가지 않고 전자적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게 한다. 집중투표, 전자투표는 현행법에도 근거가 있지만 기업의 정관을 통해 이를 배제할 수 있다.

두 개정안은 세부내용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모두 소액, 소수주주의 의결권을 상대적으로 키워준다. 대주주 오너 일가에 대해 다른 주주들이 견제할 힘도 지금보다는 커진다. 자회사의 경영에 대해 자회사 주주들이 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모회사 주주들이 소송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모회사 자회사가 별개법인이라도 소유-지배구조로 끈끈하게 엮여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대주주 역차별에 헤지펀드 침투 우려

재계는 모든 개정내용이 지배구조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든다고 본다. 특히 감사위원 분리선출안을 가장 무겁게 받아들이는 기류다. 김종인안은 사내이사 감사위원을 뽑을 때 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출시엔 모든 주주에게 3%룰을 적용토록 했다.

이에 최대주주 역차별을 낳을 거란 우려가 크다. 사내이사 감사위원의 경우 최대주주가 아니라 2대·3대 주주의 선택대로 뽑힐 수 있다. 삼성이라면 엘리엣과 같은 헤지펀드가 감사위원을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종인안과 달리 채이배안은 사내·사외 감사위원 구분 없이 모든 주주가 3%를 제한받게 했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최대주주가 아니면 특수관계인 지분 상황을 공시할 의무가 없다. 예컨대 헤지펀드가 지분을 분산시켜놓은 사실상의 특수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

다중대표소송도 자회사-모회사 주주간 제기 자격의 형평성이 도마에 오른다. A사 주주가 그 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내려면 A사 주식 1%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B사가 A사 지분 60%를 가진 모회사라면 B사 지분 1%를 가진 주주는 1%×60%, 즉 자회사인 A사 주식 0.06%를 갖고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셈이다.

상장회사 단체인 상장사협의회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외국인·해외 펀드는 지분 쪼개기를 통해 3% 의결권 제한규정을 피해갈 수 있으므로 결론적으로 국내 대주주의 의결권만 제한된다"며 "지금도 감사위원 독립성 확보를 위한 법제도가 선진국 대비 부족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대규모 상장사를 거느린 지주회사라면 천문학적 액수의 피해가 발생한다고도 덧붙였다. 지주회사는 상장사 주식 20% 이상 보유가 강제되는데 최저한도인 20%만 보유해도 감사위원 의결 때 3% 외 17%의 주식은 효력이 없어진다. 유리처럼 깨끗한 지배구조로 개선하려다 자칫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지배구조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인안은 19대국회 당시 우윤근 의원(현 국회사무총장) 안과 유사하다. 당시 투기자본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우려가 개정론을 막아서면서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초중반, 집권여당 새누리당이 과반 1당으로 원내 주도권을 쥐었다. 20대국회엔 사정이 다르다. 정치적 주도권은 급속히 야권으로 쏠리고 있다. 각 정당이 대선국면에 경제민주화와 같은 진보적 가치를 강조하고 보수라도 '따뜻한 보수'를 내세운다. 4개 교섭단체 협상에 따라 법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4당구도·조기대선…1월 임시국회 '재벌 개혁' 최적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전 비대위대표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토론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재벌 지배구조 개선' 관련 법안은 기존 야권에서 공조기조가 가장 탄탄한 내용 중 하나다.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에서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가 120명의 공동서명으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당 역시 채이배 의원의 대표발의로 동명의 법안을 내놓은 상태.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에서는 '여소야대'가 된 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일찌감치 상법 개정안을 중점 추진과제로 꼽아왔다.

20대 국회 '여소야대' 지형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상법 개정안 논의가 재촉발된 것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러온 연쇄효과다. 정경유착과 특혜지원 등 논란이 불거지며 어느 때보다 재벌기업에 대한 개혁여론이 거센 상황.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행을 위해 지난 2013년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을 때처럼 재계가 강하게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당시 반대에 앞장섰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최순실 사태 여파로 해체 위기에까지 몰려있다.

'집권여당'이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운 형국이 됐다는 점도 야권에 호재다. 개혁보수신당이 창당하면서 여당은 불과 99석으로 쪼그라들었다. 만일 새누리당이 상법 개정안에 '당론'으로 반대한다해도 개혁보수신당의 공조만 있으면 야당은 국회선진화법을 손쉽게 넘어설 수 있다. 재적의원 5분의3(180석)을 훌쩍 넘겨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신당 내 의견이 갈려 자우투표 방침으로 정한다 해도 유승민, 김세연, 이혜훈, 김성태, 하태경 의원 등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 출신 의원들의 '찬성표'는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다.

특히 원내1당으로 올라선데다 정당지지율도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용어 자체를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선점당하며 주도권을 잃었던 것을 반면교사 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마련했다는 '상징성' 있는 김 전 대표가 민주당에 몸담고 있다는 점도 힘을 더한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경제민주화에 방점을 찍을 공산이 크다. 국민의당, 개혁보수신당 등 대선주자들을 보유한 정당에서도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 '시즌2'를 공약으로 내걸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기업 우산뺏기 테스트?' 해외서도 드문 상법 개정안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의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2016.6.2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집중투표제, 다중 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야당이 상법을 개정해 도입하려는 제도들을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집중투표제와 다중 대표소송제는 일부 국가에서만 특수한 수요에 맞추기 위해 제한적으로 도입돼 있고,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를 도입한 나라는 아직 없다.

 4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러시아와 멕시코, 칠레 등 3개국이다. 미국과 일본, 러시아, 필리핀, 대만, 이탈리아, 중국은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법상 의무화 대상은 아니다. 기업이 임의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의 경우 일본만 법제화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권 침해와 자회사 주주의 권리 침해 소지가 있다며 소송 대상을 100% 자회사로 한정하고 있다. 미국은 판례로 인정한 사례가 있지만 역시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한 경우에 한한다.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등도 인정은 하지만 법원 제소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기준이 엄격하다. 독일과 프랑스, 중국 등은 판례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전자투표제도 전폭적으로 도입한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은 이사회 재량으로 원격통신에 의한 주총 참석을 허용하지만 전자투표를 의무화하지는 않고 있다. 일본은 서면투표제와 전자투표제가 의무화돼있긴 하지만 제한적이다. 서면투표제는 의결권을 가진 주주의 수가 1000명 이상인 회사에 대해서만 강제하고 있다. 전자투표는 회사가 허용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도록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해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는 아직 도입된 사례가 없다. 일본의 경우 감사위원회를 세 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해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채우도록 하고 있지만 의결권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도입되지 않은 제도를 한국에 먼저 도입하자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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