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대선주자 사용설명서-손학규
[the300]종합
"국민주권개혁회의와 국민의당이 바로 새로운 정치, 국가 대개혁의 중심입니다. 국민의당과 통합해 더 나은 정권교체를 이루겠습니다. 함께 잘사는 나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지난 7일 오전 11시 국회 정론관, 차기 대선 주자로서 국민의당 합류를 선언하는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가 지난해 10월20일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에서의 칩거 생활을 마치고 정계 복귀를 선언한 후 약 석달 반 만에 굳힌 결심을 전 국민 앞에 밝히는 순간이었다. 올해로 만 70세인 그가 인생 세번째 대선 경선에 도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손학규는 정계 입문 초기부터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1993년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의 추천으로 현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만 46세에 불과했던 정치 신인 손학규는 입당 후 첫 선거인 제14대 총선 보궐선거에서 "대통령이 불렀다, 나라 개혁 위해 나왔다"는 구호를 외치며 경기 광명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로서 재야인사에 불과했던 그가 YS의 공천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정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보수 정당 소속인 그가 어떤 정치 세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개혁'을 외치자 금세 '대세'가 됐다. 그는 저서 '강진일기'에서 "사람들은 내가 YS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다…(중략)…정작 나는 청와대에 가서 공천장을 받을 때 처음으로 YS를 대면하고 악수했다"며 "사정이 이러한데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세가 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정계 입문한 해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며 문민정부가 출범하던 때였다. 손학규는 금융실명제 등 개혁적인 정책들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런 모습 덕에 15~16대 총선에서도 연달아 승리했다.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해에는 역대 최연소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2002년에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지방선거에도 도전해 민선 3기 경기도지사에도 당선되면서 승리의 길을 걸었다.
◇"개혁 세력 입지 좁아진다" 한나라당 탈당 선언
꽃길을 걷던 손학규는 제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3월19일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는 2010년 이른바 '춘천 선언문'에서 "김영삼 정부 개혁정치 이후의 한나라당은 민주세력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했다"며 "한나라당에서 더이상 제 신념과 가치를 펼 수 있는 천명이 없음을 느꼈다"고 밝혔다. 학생 운동 동지였던 고 김근태 의원은 여권 재편의 핵심 역할을 해 달라며 손학규를 향한 러브콜을 보냈다. 결국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 등 열린우리당 탈당파, 시민사회 세력 등을 주축으로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쓴잔을 마셨다. 대선 패배 이후 쇄신을 위해 2008년 2월 민주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했지만 두 달 후 치른 제18대 총선에서도 졌다. 그가 이끈 통합민주당은 전체 의석 299석 중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그는 책임을 진다며 아예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강원 춘천에서 다시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민의당과 통합을 선언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당 대표실을 방문해 박지원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7.2.10/사진=뉴스1 |
그는 2010년 정계에 복귀했다. 그해 치러진 7·28 재보궐 선거에서 당이 참패하자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그는 2011년 4월 18대 총선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경기 성남 분당)에 당선되며 재기에 성공했다. 손학규는 역사적 슬로건으로 평가받는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걸고 2012년 대선에 도전한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 패하며 꿈을 접는다. 2014년 7·30 수원 병 재보궐선거에서도 낙선한 후 전남 강진에서 토굴생활을 시작했다. 토굴에 들어간 지 2년2개월이 지난 2016년 10월, 대한민국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혼란스러운 시점, ‘7공화국’을 외치며 정계로 나와 또한번의 도전을 시작했다.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의 정치 행보엔 치열한 시대에 대한 질문과 그 나름의 대답이 담겨 있다. 24년 정치 역정 고비고비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정치 슬로건을 제시하며 한국 정치를 이끌어왔다. 운동권 출신으로 독재에 항거하며 조국의 나아갈 길을 치열하게 고민했고 영국 유학을 통해 이같은 고민을 체계화 했기에 가능한 행보였다.
그가 지난해 10월 정치복귀를 선언하며 내세운 명분은 '제7공화국'이었다. 개헌을 통한 정치와 경제 구조 대개혁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이번 대선정국의 시대정신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에 입당한 것 역시 '패권주의 청산' 즉, 정치 개혁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당제 구도를 통해 승자독식의 정치 구조를 깨고 협치의 정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5년전엔 18대 대선 도전을 선언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리겠다"고 외쳤다. 그의 대표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이다. 그는 출마 선언 직후 저서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하는 것을 포기해야하는 이분법..(중략)..이 모든 것에 반대하는 가치가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구호임에도 문학성까지 겸비해 유권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이 슬로건의 '저작권'을 놓고 이견이 있을 정도다.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에게 패배하며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될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여전히 손 의장을 대표하는 슬로건이다.
그가 선도했던 또 다른 정치 슬로건은 '보편적 복지'다. 그가 2008년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칩거에 들어갔다가 2010년 정계에 복귀하며 발표한 '춘천 선언'의 핵심 키워드다. 손 의장은 MB정권 하에서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다. 제도 정치권에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한나라당은 물론 같은 당내에서도 만만치 않은 반발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당 대표 취임 후 무상급식과 무상의료, 무상보육 등 이른바 '무상복지 시리즈'를 추진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가 결국 낙마하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이재명 성남시장의 대표공약 '기본소득'의 뿌리 역시 보편적 복지다. 7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보편적 복지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계속되고 있다.
손 의장이 신한국당 소속이었던 2000년 내놓은 '진보적 자유주의' 은 한나라당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그는 1990년대 영국 노동당이 표방했던 '제3의길' 노선에 입각해 이같은 노선을 주장하며 "민주주의와 복지라는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되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경쟁 체제를 적극 도입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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