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새 대통령의 100일…'메시지=인사'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7.05.10 04:18
1948년 5월10일. ‘보통‧평등‧직접‧비밀’의 원칙에 따른 최초의 민주적 선거가 치러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의원 총선거다. 이 선거로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문화한다. 헌법상 선거권은 기본권으로 규정된다. 민주주의 꽃인 선거가 이 땅에서 시작된 날이자 민주공화국의 씨앗인 헌법의 토대가 마련된 날이다.

공교롭게도 69년이 지난 2017년 5월 10일, 새 정부가 출범한다. 민주주의, 선거, 헌법 등 키워드는 비슷하다. 다만 흐름은 다르다. 1948년 선거와 민주주의는 주어진 것이었다. 기본권의 소중함과 헌법의 가치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반면 2017년엔 ‘촛불’이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켜냈다. 민주주의가 헌법을 재해석했고 탄핵을 만들었다. 새 대통령과 새 정부는 그 결과다.

그렇다고 ‘촛불’이 하나를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지킨 민주주의는 획일성을 거부한다. 다양한 요구가 촛불의 요체다. 새 대통령을 만든 선거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대한민국에서 더불어 사는 국민의 자유와 민주, 그리고 정의’다. 국민은 지난해 총선 때 5당 체제를 만들었고 이번 대선에서도 한번더 각인시켰다. 정치 세력의 계몽은 먹히지 않았다. 세력의 힘 불리기나 연대도 용납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정치와 정치권을 견인했다. 성숙한 촛불, 진보한 민주주의의 힘이다.

국민의 요구, 시대정신은 분명하다. ‘정의(촛불)‧통합‧미래’다. 힘을 합쳐 개혁하며 미래로 가자는 거다. 하지만 우린 경험적으로 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훌쩍 큰 ‘직접’ 민주주의의 그늘도 있기 마련이다. 새 정부, 새 대통령은 온갖 과제를 짊어진다. 청소와 설거지, 빨래는 기본이다. 이것도 쉽지 않다. 청소부터 할 지, 빨래부터 할 지 요구가 다르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를 쓸 지, 고무장갑을 낄 지부터 논란이 될 거다. 이웃을 만나 안면을 트고 좋은 관계도 맺어야 한다. 옆집, 앞집, 뒷집과 만남을 두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밥도 먹어야 하는데 무엇을 먹을 지 시끄러울 거다.

그래서 필요한 게 시간이다. 흔히 ‘새 정부 100일’을 말한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선 취임 후 100일 내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취임 초 새 정부에 대한 기대, 이에따른 지지율을 토대로 몰아 붙여야 한다는 조언도 따라붙는다. 과거 정부의 실패 사례를 근거로 대기도 한다. 하지만 ‘100일’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선거와 동시에 취임하는 새 대통령에게 오히려 ‘100일’은 개혁을 추진하는 시간이기보다 준비하는 기간이어야 한다. 1800일 후 성공을 위해 100일 동안 몸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 100일은 개혁 과제를 정리하고 협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국민이 주면 된다.

지난해 10월부터 반년 넘게 달려온 촛불과 태극기, 모든 국민이 차분히 지켜볼 시간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단순히 ‘허니문’ 기간을 주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 기간 새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이 아닌 국정 운영의 ‘과정’을 보여줘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국민들은 진정성을 느낀다. 100일 동안 일자리 몇 개, 성장률 몇 %, 몇 개의 법안 처리 등의 성적표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협치와 통합의 과정, 과정에서의 태도와 자세를 본다.

그 과정의 알파와 오메가는 결국 인사다. 새 대통령의 장밋빛 취임사, 새 정부의 포부는 단어의 나열에 불과하다. 국민은 새 대통령의 인사에서 그의 메시지를 읽는다. ‘인사가 만사’라는 격언도 있지만 결국 ‘인사=메시지’다. ‘100일’은 새 대통령이 이 메시지를 준비하고 국민과 공유하는 과정이다. 자칫 삐끗하는 순간 ‘정의(촛불)‧통합‧미래’의 메시지는 사라진다. 5월10일 유권자의 날에 19대 문재인 대통령에게 취임 축하 인사와 함께 드리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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