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거대책 설계하는 4선 조정식의 '걸레론'

[the300][런치리포트- 국회 상임위원장 사용설명서]①조정식 국토위원장의 정치인생

구경민 조철희 기자 l 2017.08.23 05:32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학생운동 출신. 손학규계 핵심인사. 빈민 운동가의 대부이자 정치가인 고(故) 제정구 의원의 분신.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20대 국회 들어서는 그는 이런 수식어를 뒤로하고 '꽃 중의 꽃'으로 통하는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으로 빛을 발한다. 그가 국회의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임위인 국토위원회 위원장이 된 것은 진보, 보수를 아우르는 그의 포용력에서 비롯됐다. 국토위는 국토의 개발·주거·교통·물류·건설 등 우리나라 실물경제의 가장 중요한 분야를 담당하는 상임위인 만큼 엄청난 책임감을 요한다. 

조 의원은 지난해 4.13 총선에서 시흥시 최초로 4선 국회의원의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중진 의원으로서 당내 구심점 역할을 해야하는 막중한 책임감도 함께 짊어졌다. 이제 정치권에서 누구의 분신, 누구의 계파가 아닌 '4선 국회의원이자 국토위원장 조정식' 본인의 존재감이 두각을 나타낸다.

그가 지난 2004년 17대 국회부터 20대까지 내리 4선에 성공, 정치권에서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로 '걸레론'을 들 수있다. 걸레론은 그의 정치적 스승인 고 제정구 의원의 정치 철학에서 비롯된다. 우주과학자를 꿈꾼 수줍고 조용한 아이였던 조 의원이 정치에 뛰어들게 한 인물도 제정구 의원이다. 

재수를 해 연세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조 의원은 국회의원이 안됐다면 건축가가 됐을 것이라고 털어 놨다. 하지만 '인간연구회'라는 서클에 들어가면서 학생운동을 경험하게 됐다. 졸업 후 그는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박봉의 프레스공으로 일을 하면서 노동현장의 열악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됐다. 수차례 손가락이 절단될 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자의 삶을 더 깊이 느끼게 된 계기였다. 그는 선반공장에서 목격한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보고 정치의 중요성을 알았다고 회상했다. 

조 의원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건 우연한 계기였다. 14대 총선이 끝난 후 당시 민주당 당무기획실 전문위원으로 일하던 선배로부터 정계입문을 권유받았다. 그 후 당무기획실장으로 부임해온 제정구 의원을 만나 그와의 인연을 시작하게 됐다. 조 의원은 1993년 3월 제 의원을 처음 만나 1999년 타계하기까지 6년간 동고동락했다. 

"걸레가 돼 깨끗한 정치를 이뤄내겠다"던 신념을 실천한 제 의원을 보면서 조 의원은 "앞으로 정치를 한다면 제 의원님을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제 의원과 함께 일하는 동안 조 의원은 '정치란 무엇인가, 그리고 정치란 과연 누구를 위해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막막한 일에 부딪히거나 난관에 처할때면 제정구 의원을 떠올리면서 해법을 찾는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너를 죽여 내가 사는 상극의 문화였다면 새로 시작되는 천년의 역사는 더불어 함께 사는 상생의 시대가 돼야 한다'던 제 의원의 가르침대로 화합하고 상생하는 세상을 가꾸는 것이 정치인 조정식의 소명이다.

그가 민주당의 중진 의원으로 성장하기 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장 힘든 시기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대 대선과 15대 총선의 연이은 패배 후 정치를 그만두고 유학길에 오를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포기하기엔 이르다면서 그의 맘을 잡아 준 사람이 역시 제정구 의원이다. 하지만 딸이 소아암 진단을 받으면서 조 의원은 유학을 포기하게 된다. 그 시기에 공교롭게도 제정구 의원도 병을 얻어 딸 아이의 맞은편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 1999년 2월 정치적 스승인 제 의원이 세상을 떠나고 그해 12월에는 네 살밖에 안된 딸을 가슴 속에 묻었다. 제 의원이 타계한 후 조 의원은 그의 정치적 유지를 받들기 위해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시흥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고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경험한 이력 때문인지 조 의원은 청년층과 저소득층 주거안정에 관심이 많다. 그는 20대 들어 청년들에게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위한 근거규정을 마련한 '공공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청년 1인 가구에 공공주택을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가 이러한 법안을 발의하고 넘기 힘든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긴데엔 건축학을 전공한 덕도 톡톡히 한다. 정치권에서 드물게 건축학을 전공한 것이 국토위에서는 가장 큰 무기가 되고 있다. 그는 국토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대학 입학했을때 교수님이 건축을 '사람들이 편하게 살고 쉴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가르침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조 의원은 중도·온건적 성향으로 평이 나있다. 그는 온건하면서 합리적인 소통을 중요시한다. 계파색이 옅고 민주당 사무총장 시절 보여준 공정함으로 당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를 달리 해석해보면 4선 의원이지만 특별한 당직을 갖은 경험이 없다. 대중적 인지도나 영향력도 크지 않은 것으로도 비춰진다. 이는 앞으로 남은 20대 국회에서 돌파해야할 숙제기도 하다. 


조 의원의 20대 국회 임기 내 목표는 정권교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정권교체를 이뤘다. 때문에 문재인정권의 성공을 위한 뒷받침을 해나가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가 됐다. 그는 "국토위원장으로서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입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그에게는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민주당 승리와 지역구인 시흥의 시민들께 약속한 공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남은 목표다. 조 의원은 "시흥시가 42만 도시에서 70만 중견 도시로 성장을 거듭해가고 있다"며 "'시흥발전 5대 비전'을 성공적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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