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국회 상임위원장 사용설명서

[the300]종합

김평화 정진우 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l 2017.11.07 09:36

'DJ의 남자' 설훈, 투쟁→타협 '역사의 전환'




'영원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자' 설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64). 그가 DJ를 처음 만난 곳은 모순적이게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법정이었다. 설 위원장은 고려대 재학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전념했다. 그 연속선 위 법정에서 DJ와 조우한 것이다.

50~60대를 거치며 4선 의원의 카리스마를 갖게 된 설 위원장은 '타협의 길'을 걷고 있다. 위원장으로서 여야 의견을 조율하고 민생을 위한 정책을 짜는 데 여념이 없다.

◇'힘든 길' 걸어온 설훈, 젊음과 맞바꾼 민주화=설훈의 20~30대는 '투쟁의 역사'였다. '힘든 길'을 스스로 선택했고, 걸었다.




삼수 끝에 입학한 고려대 사학과에선 제적을 당했다. 유신반대 시위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군대에 끌려갔다.

20대 때만 세차례나 투옥됐다. 1977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1979년 27살 청년 설훈은 법정 최후진술로 "국민에게 총을 겨눈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말을 남겼다.

1981년 8월 아버지의 임종소식도 감옥에서 들어야 했다. 숱한 고문으로 반실신상태에 이른 적도 수차례다. 한창일 나이에 5년여 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인 1998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보상금으로 1억2000여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전액 기탁했다. 집을 사라는 주변의 권유도 듣지 않았다. 쓰일 곳이 있는 돈이라고 생각해서다.

설 위원장은 2000년에야 마침내 고려대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재판정에서 시작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군사재판정에서 DJ와 처음 만난 설 위원장. DJ를 다시 만난 건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다.

설 위원장은 출소 후 은사로부터 미국 유학을 권유받았다. 그를 위한 장학금은 다 모였고, 유학할 학교까지 정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설 위원장은 이를 마다했다. 미국 대신 그가 택한 곳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신민당 총재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것이다. 민주화를 이룰 돌파구를 정치권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경남 창원 출신인 설 위원장은 지역감정까지 해소하겠다는 포부로 '동교동계'의 막내가 됐다. 그에게 김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자신을 다듬고, 주위 사람들을 가르친 분'으로 아직까지 가슴 속에 남아있다.




◇'노무현 지킴이' 투쟁의 역사는 이어진다='투쟁의 역사'는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이어졌다. 설 위원장은 민주당 부대변인과 수석부대변인 등을 거쳐 1996년 서울 도봉을에서 당선돼 15대 국회에 입성한다. 16대까지 재선에 성공했지만 17대 총선에는 불출마했다.

설 위원장은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저격수'로 나섰다. 이 후보가 로비스트 최규선씨로부터 20만달러를 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한 것이다.

대선에선 이겼지만, 이후 검찰 수사에서 이 폭로가 거짓으로 밝혀졌다. 설 위원장은 허위사실 유포죄로 처벌됐다.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2007년 사면복권될 때까지 재야 생활을 했던 이유다.

2004년 설 위원장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논란에 반대하며 머리를 밀고 단식농성에 나서기도 했다.

◇돌아온 민주당의 '믿을맨', '타협의 길' 걷는다=설 위원장은 2012년 19대 총선 때 경기 부천원미을에서 당선되며 8년 만에 국회로 돌아왔다. 20대 국회에서도 무난히 당선되며 4선 의원 반열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중심을 잡는 역할을 맡고 있다. 19대 국회에선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역임했고, 최근 농해수위원장을 맡았다.

전 농해수위원장이었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장관에 임명되면서 공석이 됐던 농해수위원장을 맡은 것도 당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당은 무게감 있는 중진 의원이 농해수위를 맡아주기 원했다. 설 위원장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내년 6월까지로 임기가 제한적인 자리지만 설 위원장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농해수위를 맡은 후 국정감사까지 무난히 치른 설 위원장은 "우리 농해수위"라며 애착을 드러냈다.

여야 의원들의 의결을 조율하고 타협하는 게 요즘 그가 맡은 역할이다. 지난 국감에서도 적재적소에서 그의 중재력이 빛났다.

설 위원장은 "농어업이 점점 쇠퇴하는 구조가 됐다"며 "여야 간 힘을 합쳐 정책적으로 농어업인들 위한 일을 하기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설 위원장은 민주당이 국민의당과 통합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여소야대 구조상 정국 운영이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색이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 같이 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또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설훈 "내년 개헌안에 농·어업 조항 넣을 것"




설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이 “내년에 헌법개정(개헌)을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헌법에 농·어촌 재정 지원 내용을 담은 농·어업 조항이 담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국민 기본권 보호 차원에서 추진하기 때문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설 위원장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농해수위원장실에서 가진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인터뷰에서 “재정적으로 농·어촌에 사는 분들이 절대 빈곤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설 위원장은 “농·어업 문제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농민과 어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농·어업이 쇠퇴해 가는 경제 구조에선 우리나라 미래도 불투명하다”며 “이 문제는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설 위원장은 새 헌법에 담을 구체적인 내용도 생각해놨다. 그는 “농가소득이 지난해 3700만원으로 집계됐는데 해마다 소득이 줄고 있어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농가소득을 5000만원까지 올릴 수 있도록 정부 정책과 재정 지원 등 다양한 방법을 새로운 헌법에 담으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귀농·귀촌 인구가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귀농·귀촌 인구가 33만명이었는데 이들을 교육시키고 제대로 정착시킨다면 한국 농·어촌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귀농·귀촌 인구를 국가에서 잘 활용하면 새로운 농·어촌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일례로 젊은 사람들이 농업이나 어업과 관련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토대를 만들어주면 이들의 소득도 오르고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 위원장은 또 문재인 정부가 쌀값 안정 등 농·어촌 분야에 좀 더 신경써야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발표한 100대 과제 중 농·어업 분야가 많지 않은데, 핵심 문제에 집중해서라도 현안을 해결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 위원장은 “지난해 쌀값이 계속 떨어져 80kg 한가마에 12만원선까지 추락했다”며 “지금은 15만원선까지 올라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또 언제 가격이 하락할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도시민들은 쌀값이 오르더라도 물가가 크게 올랐다고 생각 안한다”며 “정부의 직불금 지원 제도 등을 통해 쌀값이 15만원선은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방한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관련된 얘기도 꺼냈다. FTA(자유무역협정) 등 민감한 사안이 한미 정상회담때 다뤄질 것을 우려해서다. 설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문인지 한미FTA 재협상 이슈가 불거졌는데, 농산물이나 농업 부문은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 문제는 우리 위원회 차원에서도 적극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 위원장은 앞서 얘기한 현안들이 해결되면 새로운 농·어촌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농·어촌의 미래는 FTA나 쌀값 문제가 정리되고 귀농·귀촌을 통해 인구가 많이 유입되면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다"며 "여야가 힘을 합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면 새로운 비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설 위원장은 끝으로 이번 국정감사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농해수위는 여야가 정책으로 무장하는 등 전통적으로 모범 상임위로 꼽히는데, 올해 야당의 준비가 미흡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여야가 갑자기 뒤바뀐 이번 국감은 정돈이 덜 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면서도 “국감 중반에 야당이 보이콧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국감이 야당 없이 여당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인상을 주다보니 김이 좀 샜다”며 “여야가 경쟁 관계에서 서로 비판하고 견제하지 않으면,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약해진다"고 덧붙였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