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인지세를 폐지하면…'1000원의 전쟁' 승자는 누구

[the300][이주의 법안]①추경호 대표발의 인지세법 개정안

조현욱 보좌관(금태섭 의원실), 정리=김태은 기자 l 2017.11.16 06:03

편집자주 2016년 임기를 시작한 20대 국회는 17개월 동안 9720개의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이 중 처리한 법안은 20%도 채 안됩니다. 아직 8000여개의 법률안이 상임위에 계류된 상황에서 매일 30여개의 새로운 법률안이 발의됩니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입법은 그 하나하나가 국민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머니투데이더300(The300)은 법률을 만드는 국회를 법안발의 단계부터 조명을 하고자 합니다. 일주일간의 법안발의를 살펴보고 그 중에서 국민들이 반드시 알았으면 하는 법안을 소개하겠습니다. 매주 100~150개의 법안을 “이 법이 반드시 필요한가?”(공익성, 합목적성), “이 법은 타당한가?”(사회경제적 효율성, 법체계 정합성), “이 법은 실행 가능한가?”(수용성, 실현가능성) 세 가지 기준으로 검토합니다. 법안의 목적, 방법론, 현실성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할 것입니다. 부가적으로 법안지표는 사회적 요구를 담고 있는지와 현실성지표는 정치적 타협가능성을 포함하기도 할 것입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은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에서 비롯됐다. 영국이 종이, 유리, 차 같은 물품에 과도한 관세를 매긴 것이 미국 독립선언의 계기가 됐다. 영국의 조지3세가 오스트리아 왕위 전쟁으로 인한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설탕조례와 함께 신문과 같은 출판물, 각종 증명서, 허가증, 심지어는 트럼프 카드에까지 인지를 붙이도록 하는 인지조례(Stamp Act)를 발표했고, 이로부터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의 반발이 시작됐다. 

인지세는 대체로 소액이고 수입인지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납부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세금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역사는 오래됐다. 1950년에 만들어진 인지세는 재산에 관한 계약서나 문서를 작성할 때 납부하도록 한 세금이다. 만원짜리 상품권에 붙이는 50원부터 10억원 이상 회원권에 대한 35만원까지 12종의 문서에 인지세를 부과한다. 작년 한해 9000억원이 인지세로 걷혔는데 이는 전체 국세의 0.4% 수준이다. 

◇'이주의 법안'…신용카드 인지세 1000원을 폐하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지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신용카드 인지세 폐지법’이다. 추 의원의 논리는 명쾌하다. 신용카드 가입신청서는 예·적금과 달리 재산권에 관한 증서가 아니기 때문에 조세합리성과 형평성 측면에서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신용카드에 인지세를 부과하는 나라 역시 우리와 아일랜드뿐이는 것이다.

지난 5월에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도 같은 취지로 신용카드 인지세를 300원으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했다. 1992년에 시작된 신용카드 인지세는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2002년에 1000원으로 인상됐는데 지금은 문제가 다 해결됐으니 다시 300원으로 낮춰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법은 반드시 필요한가?”= 인지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과반수가 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전면 폐지보다는 과세대상 문서의 정비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신용카드와 휴대전화에 1000원의 인지세를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느냐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주요 국가는 부동산, 유가증권, 예·적금, 보험에만 인지세를 부과한다. 신용카드 가입이 개인의 재산권 형성이라고 판단한다면 여타의 서민생활에 밀접한 전기, 가스, 수도에도 인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어떤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 지 의문이 뒷따른다. 법의 합목적성과 조세형평성을 생각하면 반드시 한번 짚고 갈 필요가 있는 문제다.

◇“이 법은 타당한가?”= '1000원의 전쟁'이 가져다 줄 혜택에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에 따라 법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달라질 수 있다. 이 법안과 유사한 성격의 '통신서비스 인지세 1000원 폐지법'은 19대 국회 당시 결국 통과하지 못했다. 인지세 폐지가 통신비 인하로 이어져 국민이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인지세 폐지법' 역시 카드사가 일년에 200억원 이상의 부담을 지게 돼 수익 악화가 우려된다든지, 인지세 부담 완화가 신용카드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든지, 카드사 중심의 접근 방식은 그 타당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이 법은 실행 가능한가?”= 기획재정부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하다. 신용카드 인지세 규모는 지난해 기준 2249만명이 카드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225억원 정도다. 그러나 이를 완전 폐찌해 1조원에 달하는 인지세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포기해야 할 세수가 국민들에게 온전히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신용카드 인지세는 주세나 담배세와 비슷하다. 물건을 파는 기업이 국가에 내는 세금이지만 결국 가격에 전가돼 소비자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세금을 낮추거나 없애면 회사는 가격을 내려야 한다. 

이 법의 진정한 목적이 인지세목의 조정을 통해 국민들의 세금부담을 낮추겠다는 것이었으면 한다. ‘국민을 팔아 기업들 배만 불린다’라는 비판은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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