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이주의 법안, 신용카드 인지세 폐지

[the300]종합

조현욱 보좌관(금태섭 의원실), 김태은 안재용 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l 2017.11.16 09:18
신용카드 인지세를 폐지하면…'1000원의 전쟁' 승자는 누구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은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에서 비롯됐다. 영국이 종이, 유리, 차 같은 물품에 과도한 관세를 매긴 것이 미국 독립선언의 계기가 됐다. 영국의 조지3세가 오스트리아 왕위 전쟁으로 인한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설탕조례와 함께 신문과 같은 출판물, 각종 증명서, 허가증, 심지어는 트럼프 카드에까지 인지를 붙이도록 하는 인지조례(Stamp Act)를 발표했고, 이로부터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의 반발이 시작됐다.

인지세는 대체로 소액이고 수입인지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납부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세금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역사는 오래됐다. 1950년에 만들어진 인지세는 재산에 관한 계약서나 문서를 작성할 때 납부하도록 한 세금이다. 만원짜리 상품권에 붙이는 50원부터 10억원 이상 회원권에 대한 35만원까지 12종의 문서에 인지세를 부과한다. 작년 한해 9000억원이 인지세로 걷혔는데 이는 전체 국세의 0.4% 수준이다.

◇'이주의 법안'…신용카드 인지세 1000원을 폐하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지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신용카드 인지세 폐지법’이다. 추 의원의 논리는 명쾌하다. 신용카드 가입신청서는 예·적금과 달리 재산권에 관한 증서가 아니기 때문에 조세합리성과 형평성 측면에서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신용카드에 인지세를 부과하는 나라 역시 우리와 아일랜드뿐이는 것이다.

지난 5월에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도 같은 취지로 신용카드 인지세를 300원으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했다. 1992년에 시작된 신용카드 인지세는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2002년에 1000원으로 인상됐는데 지금은 문제가 다 해결됐으니 다시 300원으로 낮춰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법은 반드시 필요한가?”= 인지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과반수가 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전면 폐지보다는 과세대상 문서의 정비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신용카드와 휴대전화에 1000원의 인지세를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느냐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주요 국가는 부동산, 유가증권, 예·적금, 보험에만 인지세를 부과한다. 신용카드 가입이 개인의 재산권 형성이라고 판단한다면 여타의 서민생활에 밀접한 전기, 가스, 수도에도 인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어떤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 지 의문이 뒷따른다. 법의 합목적성과 조세형평성을 생각하면 반드시 한번 짚고 갈 필요가 있는 문제다.


◇“이 법은 타당한가?”= '1000원의 전쟁'이 가져다 줄 혜택에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에 따라 법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달라질 수 있다. 이 법안과 유사한 성격의 '통신서비스 인지세 1000원 폐지법'은 19대 국회 당시 결국 통과하지 못했다. 인지세 폐지가 통신비 인하로 이어져 국민이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인지세 폐지법' 역시 카드사가 일년에 200억원 이상의 부담을 지게 돼 수익 악화가 우려된다든지, 인지세 부담 완화가 신용카드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든지, 카드사 중심의 접근 방식은 그 타당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이 법은 실행 가능한가?”= 기획재정부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하다. 신용카드 인지세 규모는 지난해 기준 2249만명이 카드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225억원 정도다. 그러나 이를 완전 폐찌해 1조원에 달하는 인지세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포기해야 할 세수가 국민들에게 온전히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신용카드 인지세는 주세나 담배세와 비슷하다. 물건을 파는 기업이 국가에 내는 세금이지만 결국 가격에 전가돼 소비자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세금을 낮추거나 없애면 회사는 가격을 내려야 한다.

이 법의 진정한 목적이 인지세목의 조정을 통해 국민들의 세금부담을 낮추겠다는 것이었으면 한다. ‘국민을 팔아 기업들 배만 불린다’라는 비판은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감세 기조에 신용카드 인지세 폐지?…"조세 형평성·합리성 약해"



"인지세는 재산에 관한 권리를 증명하는 증서에 부과하는 세금인데 이를 신용카드에 부과하는 것은 조세 부과원리상 맞지 않죠. 직불카드는 계좌개설시 이미 인지세를 부과하는 만큼 이중과세 우려도 있습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15일 "조세합리화 차원에서라도 인지세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이기도 한 그는 지난 9일 신용카드와 직불카드에 부과되는 1000원의 인지세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인지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추 의원이 신용카드와 직불카드에 부과되는 인지세에 주목한 것은 해당 세금의 부과가 실제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신용카드 발급을 막기 위해 강화됐던 규제가 경제환경이 변한 지금까지 큰 고민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

실제로 정부는 지난 2007년 규제개혁 관계차관회의에서 다른 금융권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신용카드회원 가입신청서의 인지세를 하향조정하기로 했음에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추 의원은 "신용카드·직불카드의 경우 카드가입 신청서가 예·적금 증서 등과 달리 재산권에 관한 증서로 보기 어렵고 직불카드는 이미 통장 개설시 인지세를 납부하고 있어 이중과세의 소지도 있다"며 "조세 형평성과 조세제도 합리화를 위해서라도 신용카드와 직불카드에 부과되는 인지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전세계적으로 봐도 신용·직불카드에 인지세를 부과하는 경우는 아일랜드와 한국을 제외하면 전무한 실정이라고 그는 밝혔다. 한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인지세를 부과하고 있는 아일랜드에서도 신용·직불카드에 대한 인지세 폐지를 고려 중이라는 설명이다.

추 의원은 "세계적으로 신용·직불카드에 인지세를 부과하는 경우는 아일랜드를 제외하면 한국이 유일하다"며 "아일랜드에서도 수년간 신용·직불카드에 인지세를 부과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일랜드에서는 현금과 수표에 비해 비교적 적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카드에 인지세를 부과하는 것이 비효율적 세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세계 추세가 지폐나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 '현금없는 사회'로 가는 데 방해물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신용·직불카드 인지세 폐지가 한국당의 감세기조와 관련이 있냐는 질문에는 "감세를 위해 추진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추 의원은 "신용·직불카드에 대한 인지세 폐지는 법적 타당성과 조세 형평성, 조세제도 바로세우기 취지에서 발의한 것으로 당의 감세기조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했다.

 
카드社에겐 만점·소비자에겐 몇점?…너무 다른 '천원 가치'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신용카드 인지세 폐지법'(인지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누가 가장 환호할까. 법안 발의 의도와 관계없이 신용카드 회사들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신용카드사에 부과되는 인지세 1000원이 올해 국회 예산안 논의에 등장하게 된 것은 카드사의 요구에서 비롯됐다. 2019년부터 시작되는 카드사들의 부가가치세 대리납부를 계기로 카드사들이 인지세 인하를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정부가 발표한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카드사들의 부가가치세 대리납부제를 2019년부터 3년간 시행하는 내용이 담겼다. 부가가치세 탈루를 막기 위해 카드사들이 가맹점 대신 부가가치세를 원천적으로 징수도록 하는 이 방침에 대해 카드사들은 반대급부로 인지세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엄용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미 인지세를 300원으로 낮추는 인지세 개정안을 발의했고 추경호 의원이 인지세를 아예 폐지하는 법안으로 카드사들의 요구에 부응한 셈이 됐다. 이에 올해 세법개정안 심사에서는 카드사의 부가가치세 대리납부와 인지세 인하 혹은 폐지가 연계돼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일단 현행 1000원 유지를 기본 입장으로 삼고 있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의 협의 과정에서 인지세 일부 인하로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

조세 형평성이나 합리성 측면에서 분명 의미가 있는 법안이기는 하나 일반 소비자의 관점은 빠진 채 카드사와 정치권 간 타협의 산물이 될 여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법안에 대해 선뜻 높은 점수를 주기엔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부과 근거가 다소 부족한 세금이라는 점을 일견 이해는 하면서도 나의 이익이 아닌 카드사의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에 공감 버튼을 누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법안에 대한 주된 반응은 "세금 깎아준다고 카드 가입비 깎아주는 것도 아니고…"였다.

또 카드사들에겐 200억원의 적지 않은 액수지만 개인에겐 1000원 안팎의 비용과 효용이라는 비대칭성 역시 이 법안에 대한 관심과 평가의 대상이 제한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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